[수의교육학회와 함께하는 추천도서⑥]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등록 : 2021.07.07 14:58:01   수정 : 2021.08.06 11:10:08 데일리벳 관리자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지은이 김현지 / 다산북스)

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 의사

이 책의 저자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센터 진료교수를 처음 접한 것은 2019년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19) 행사장에서 였다.

KIMES 전시회에서 의사전문포털 메디게이트가 주최한 ‘딴짓하는 의사들’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당시 윤일규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던 저자가 ‘진료실 대신 국회에 입성한 이유’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것이다.

입법·정책에 수의사 현장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갈증을 항상 느끼던 차에, 의사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는 젊은 의사의 이야기는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신기했다. 정치력이 없다며 푸념만 하지 않고 직접 뛰어든 사람도 있구나.

저자는 전공의 시절 잠도 못 자고 격무에 시달리며 얻은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까’, ‘나에게 진료받는 환자는 안전할까’라는 궁금증이 자신을 정책하는 의사로, 국회로 이끌었다고 했다.

전공의의 최대근무시간을 주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특별법이 통과된 직후,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활동하며 세부 규칙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날 국회에서 의료현장을 바라보며 건넨 조언은 의사도 아닌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지난 4월 내놓은 책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도 반갑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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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와 법이 없어 죽어간 환자들이 있다. 보건의료정책을 만드는 의사가 되어 환자 너머의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저자는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에서 내과 전공의 시절, 요양병원 근무시절 등에 만난 환자들의 다양한 사연을 소개한다.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며 느낀 바를 적은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복잡하지만 모순된 의료제도의 실상을 담아냈다.

‘잘 죽기 위한’ 연명의료의향서, 간병, 소아 필수의료,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사회적 입원 등 문제는 여럿이다.

수의대생과 수의사에게 추천하는 도서로서 이러한 의료 문제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방점을 둘 필요는 없겠지만, 수의사와 동물에게도 시사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당뇨병을 앓는 두 김영호, 심장병을 앓는 두 별이

‘두 김영호’ 이야기가 그렇다(p143). 당뇨병을 앓는, 이름이 같은 두 환자의 사연이다. 일용직으로 혼자 먹고 사는 ‘김영호1’은 삶의 무게에 치여 몸을 챙기지 못했다. 약도 제대로 먹지 않고, 의사의 조언도 따르지 않았다. 술도 끊지 못했다. 협심증이 진행돼 결국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발가락은 썩어 떨어져 나갔다.

반면 화목한 가정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김영호2’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약을 먹으며 의사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 똑같이 협심증도 왔지만 조기에 시술했고 합병증도 없었다.

저자는 ‘의사는 환자 곁에서 건강 불평등을 가장 적나라하게 목격한다’고 전했다. 수의사라고 다를까. 같은 나이, 비슷한 시점에 심잡음이 들리기 시작한 말티즈 ‘두 별이’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당연한 거라며, 어쩔 수 없다고만 여겨야 할까.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처음으로 맞이한 환자의 죽음, 그것도 아기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 내렸던 저자의 사연에도 눈길이 멈춘다.

저자는 의사로서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여 노출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해야 하는지 의과대학에서는 배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의료인의 스트레스가 환자 진료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사연을 소개한 챕터의 제목이 ‘의과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다(p214). 수의과대학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수의사의 자살률이 일반인에 비해 두 배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는 해외 연구들을 접하지만, 여전히 그냥 내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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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법이 통과되었을 때 나는 남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중략)…내게 전공의법이 그토록 특별한 이유는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책하는 의사, 정책하는 수의사

전공의특별법 제정 전 전공의였던 저자는 주100시간을 넘게 일하며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할까’, ‘내게 진료받는 환자는 안전할까’를 고민했다.

여기에 전공의법이 해답을 주었다. 누구도 그렇게까지 일할 필요가 없으며, 환자의 안전에 해악을 미친다. 법과 제도를 통해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저자는 대한전공의협회에 합류해 전공의법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과정에 참여했다. 법과 제도를 통해 더 건강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고 정책의 길에 뛰어들었다.

수의사가 동물을 진료하는 환경도 법과 제도, 정책을 통해 만들어진다. 구조적인 문제가 산재한 것은 수의계도 마찬가지다.

고병원성 AI,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터지면 수의사의 농장 출입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이 내려온다. 그런데도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은 버젓이 쓰인다. 수의사 진료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 단속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제도가 빚어내는 현상이다.

관납백신 문제도 최근 지적되고 있다. 농가를 위한다며 각종 백신을 공짜나 할인된 가격으로 준다. 정부가 나서서 의약품을 퍼주는 환경에서 동물병원이 진료를 하고 돈을 버는 건전한 구조가 형성될 수 있을까.

최근 반려동물 진료비를 공개하라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이를 따지기 앞서 ‘반려동물의 건강’이 정부가 정책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인지도 불분명하다. 진료비를 공개하면 반려동물이 더 잘 진료를 받게 되는가? 건강관리 수준이 나아지는가? 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가?

수의사 공무원은 많다. 하지만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책하는 수의사’가 많은 지는 의문이다.

정책하는 의사로 나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정책하는 수의사’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윤상준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

– 2월 천개의 파랑 (천선란) : 서평 보러가기

– 3월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 서평 보러가기

– 4월 티마이오스 (플라톤, 옮긴이 천병희) : 서평 보러가기

– 5월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옮긴이 지현) : 서평 보러가기

– 6월 그림이 야옹야옹 고양이 미술사 (이동섭) : 서평 보러가기

– 7월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