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송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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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로 인하여 온 나라가 초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동물병원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빨리 해소되기를 기원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에도 그랬지만 코로나19 사태도 바이러스가 어디서 전파되었는지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당장 문제가 되는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에 총력을 다해야겠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무엇이 근원적인 문제인지도 고민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생명은 관계입니다. 생명은 35억년 생명의 역사를 통하여 복층적인 유기적 관계망 속에서 적응을 해왔고 진화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의 온전한 이해는 그러한 복층적인 관계망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유기체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상존하는 환경에서 적응하고 진화해왔습니다. 그 세월의 깊이를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수억 년에 걸친 적응의 결과 유기체와 미생물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형태로 진화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러한 균형을 깨뜨린 인간의 행위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과 관련된 많은 문제가 산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은 모두 인간이 저지른 행위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수의사는 동물을, 더 나아가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하여 매달 생명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고 나누고 있습니다. 그 나눔을 동료 수의사분들과도 함께 하고자 데일리벳의 협조를 얻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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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 이블린 폭스 켈러

‘이 책은 도대체 왜 선정 한 거지?’ 이 책을 읽으며 든 솔직한 생각이다.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모임의 2월 선정 책은 이블린 폭스 켈러의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였다. 책 제목이 뭔가 의미심장하며 호기심을 자극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나니 다소 딱딱하고 난해한 내용으로 인해 책을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책의 선정 이유조차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역자 또한 이 책이 짧은 지면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전문용어로 인해 어려울 수 있다고 얘기했으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애써 위안을 삼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모임에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책을 곱씹어 읽다 보니 어느새 무릎을 치며 감탄할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전자란 무엇인가?’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생명활동에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전 물질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유전자가 의미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유전자라는 용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시대에 따라 그 개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물학의 역사를 통해 비판적 시각에서 논의하고 있다.

사실 유전자라는 용어의 개념은 생물학의 발전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왔다. 세대 간 형질의 전달이 화두가 됐을 때는 유전자의 안정적인 측면이, 진화가 화두가 됐을 때는 유전자의 변화의 측면이, 발생이 화두가 되었을 때는 유전자의 역동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유전자의 모습일까? 저자는 유전자의 역할, 기능, 유전 프로그램, 유전자 분석의 한계를 통해 기존의 유전자 중심 개념에 큰 문제가 있음을 말한다.

유전자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형질을 안정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진화의 기반이 되는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과거에 DNA는 안정적인 물질이며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돌연변이에 의해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믿어졌지만, 연구결과 DNA에서의 오류는 자주 일어나며 심지어 유전자 자체 기전에 의해서도 오류가 유도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DNA의 안정성은 출발점이 아닌 여러 복제-수선 메커니즘의 결과로 봐야 하며 이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관점에서도 진화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한다.

결국 세포는 유전자의 안정성과 변이성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 있으며 이는 세포와 세포가 처한 환경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는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 주체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전자의 전달과 발현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는 ‘DNA는 RNA를 거쳐 단백질로 번역되며 단백질이 생명 활동의 기반이 된다는 것’ 이었다. 따라서 특정 염기 서열은 특정 단백질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1유전자-1효소설).

그러나 연구 결과, 하나의 유전자에서 여러 단백질(효소)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일차 전사체(mRNA)가 생물의 상황에 따라 이어 붙이기라는 편집 과정을 통해 다양한 단백질 주형을 만들기도 하고, 그 이후 단백질이 합성되고 기능하는 단계에서의 여러 조절 메커니즘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언제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질지는 유전자가 아닌, 세포 전체의 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달라지며, 이것은 단적으로 유전자 서열과 일치 하지 않는 단백질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유전자 자체보다는 세포의 통합적인 조절 기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동물계 전체에는 유사유전자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침팬지와 인간은 DNA를 98.5퍼센트까지 공유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서로 다른1.5퍼센트의 DNA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유전자가 본질적으로 같다면 그 답은 유전자 네트워크 구조, 즉 상호 작용 속에서 특정한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발현될 것인지를 연결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유전체 구조와 세포 기구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상호 작용하는 복합체이며 이것은 유전자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여러 연구에서 발생 단계의 특정 유전자를 제거(knock out)했음에도 그로 인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어떤 유전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의 발생과 성장 과정에서 내외부적 환경으로 인해 분자적 오류가 일어난다면 이러한 중복 기전이 있으므로 해서 생물체의 안정성은 확보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진화의 선택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중복 현상은 유전학 전체 프레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유전자에 대한 전통적 인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것은 생명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모든 문제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생명을 위한 수의사포럼에서 항상 논의되고 있는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유전자를 단순한 물질이 아닌 생명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결국 유전자가 역동적이며 환원 불가능한 창발적 특성을 가지는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초에 결정된 것이 아닌 오랜 시간을 거쳐서 환경에 적응한 결과물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그렇게 바라보지 못하기에 생명을 오인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 때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대중 매체에 끊임없이 소개되었고 그 관심 또한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시점에 더 많은 얘기가 들리지는 않는 것은 왜일까?

이 프로젝트의 전제는 인간 전체 유전자의 서열을 알게 된다면 인간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2000년대 초반 1차 서열 분석이 끝났을 때의 그 결과는 기대와 너무 달랐다. 유전자에만 너무 치중된 나머지 훨씬 복잡한 다차원적인 생명 시스템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최근에도 특정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많이 알려지고 있다. 비록 특정 유전자와 특정 질병이 서로 개연성이 있다고 해도 그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 유전자가 발현될 수 있는 요소· 환경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선절제술을 받은 유명 여배우의 사례에서처럼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러한 의료 행위가 바람직한 것이었을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며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고귀한 존재다. 이는 다른 생명체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생명은 관계라고 한다. 하나의 생명체, 더 나아가 범지구적 생태계 또한 무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인류는 지속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먼저 기계적, 환원론적 시각을 벗어나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에 대한 신비로움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그때의 생명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마치 김춘수님의 시 ‘꽃’처럼…

송인재 원장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송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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