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VP 참관기] “개가 병을 치료해 준다” 일본 수의계가 HAB를 이야기하는 방식
제28회 일본수의임상포럼 특별 세션 ‘HAB가 세상을 건강하게 바꾼다’를 다녀와서

제28회 일본수의임상포럼(JBVP 2026) 특별 세션 ‘HAB가 세상을 건강하게 바꾼다’를 다녀와서 : 김현욱 한국수의임상포럼(KBVP) 회장·수의내과학 박사
지난 9월 26~27일 이틀간 도쿄 호텔 뉴오타니에서 2026년 제28회 일본수의임상포럼(JBVP) 연차대회가 열렸다. 올해 대회 주제는 ‘마음을 울리는 만남과 배움을’이었다. 첫날에는 일왕 가족이 행사장을 찾았을 정도로 JBVP 연차대회가 일본 사회에서 갖는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재개된 한일 임상수의학 교류의 첫걸음으로 KBVP 참관단과 함께 현장을 찾은 필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둘째 날 열린 특별 프로그램 ‘HAB(Human-Animal Bond)가 세상을 건강하게 바꾼다 – 반려동물과의 유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한국 수의계와 나누고자 한다.
수의사, 연예인, 그리고 보호자가 한 무대에
이 세션은 구성부터 신선했다. 진행은 JBVP 명예회장 이시다 타쿠오(石田卓夫) 박사(FASAVA 회장)가 맡았고, 패널로는 아카사카동물병원 시바나이 아키코(柴内晶子) 원장, 특별 게스트로 일본의 인기 방송인 미야존(みやぞん) 씨가 함께했다. 수의사만의 학술 세션이 아니라, 유명 연예인과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견 이야기를 들고 나와 수의사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무대였다.
시작부터 장내가 술렁였다. 미야존 씨와 시바나이 원장이 미야존 씨의 반려견 ‘러브’(13.5세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의 주치의와 보호자 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미야존 씨는 러브가 세상을 떠날 때 시바나이 원장이 친절하게 상담해 준 일화를 전하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
반려동물의 생애 마지막을 함께한 수의사와 보호자가 수년 뒤 공개 무대에서 다시 만나 그 시간을 회고하는 장면은 HAB라는 개념을 어떤 논문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데이터로 말하는 HAB, “개가 병을 치료해 준다”
세션의 중심은 반려동물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데이터였다. 소개된 내용 중 몇 가지만 옮겨 본다.
● 심장질환 환자의 생존율: 심근경색 등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의 1년 생존율은 개를 키우는 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시다 박사는 개와 함께 있으면 심박수와 혈압이 낮아진다는 점을 근거로 덧붙였다.
● 암 발병률: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림프종 발병률이 낮다.
● 알츠하이머병 환자: 개와 교감이 없는 경우, 주 3시간 개와 교감하는 경우, 매일 함께 하는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개와 동거하면서 매일 함께 하는 알츠하이머 환자군에서 ‘미소 짓기’, ‘스킨십’, ‘대화하기’ 등의 행동이 가장 크게 개선됐다. 이시다 박사는 이 대목에서 “개가 병을 치료해 준다”며 의료적 효과의 크기를 강조했다.
고령자 관련 데이터는 더 구체적이었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개와 함께 사는 고령자가 늘어나면 4년간 5,920억 엔의 공적 의료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개와 함께 살며 산책을 하는 고령자는 요돌봄·치매 발병 위험이 40분의 1로, 간병보험 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국내 데이터도 소개됐다.
국립환경연구소 다니구치 유(谷口優) 박사의 ‘70세부터 강아지·아기고양이와 살기’ 연구도 스크린에 공유됐다. 프레일(노쇠) 발생 위험 20% 감소, 자립상실 위험 45% 감소, 요개호 치매 위험 40% 경감…반려동물과 사는 것이 고령자에게 처방에 가까운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어린이에 대한 데이터도 흥미로웠다. 5~8세 아동의 경우 반려동물 양육 가정의 아이가 학교를 결석하는 날이 연간 3주가량 적었다. 이시다 박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함양하는 데 동물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60세 이상은 반려동물 입양 거절?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토론
이 세션이 단순한 ‘HAB 예찬’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고령자의 반려동물 양육이 가진 현실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뤘다.
일본에서는 행정기관이 주최하는 반려동물 입양 행사에서 60세 이상 고령자가 입양을 거절당하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시다 박사는 이에 대해 “수의사가 책임감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바나이 원장은 13년 전부터 아카사카동물병원에서 운영해 온 ‘70세부터 강아지와 올바르게 살기’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주치의(동물병원)의 지원 체계가 있다면 보호자가 고령이라도 안심하고 반려동물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바나이 원장은 91세 보호자와 16세 반려견의 사례를 들며,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병원과 제휴 단체가 평생의 삶을 팔로우하는 ‘종생사육 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바나이 원장의 89세 모친도 오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직후 새 토이푸들을 맞이해 90세인 지금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개인적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고령자의 입양을 ‘위험’으로 보고 막을 것인가, 수의사가 지원 체계를 만들어 ‘가능’하게 할 것인가 —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 수의계의 이 논의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호자와의 소통, 그리고 HAB 선언
미야존 씨가 현재 기르는 반려견 ‘메이’(들개 출신 보호견으로, DNA 검사 결과 아키타견 등 약 16가지 견종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에서는 보호자-수의사 소통이라는 실무적 주제로 다뤄졌다. 반려동물이 경련 등을 일으켰을 때 패닉에 빠지지 않고 수의사에게 증상을 전달하는 방법을 묻는 미야존 씨의 질문에 시바나이 원장은 “동영상 촬영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평소와 다른 ‘사소한 변화’를 보호자가 알아채고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수의사가 보호자에게 원하는 정보로는 ‘언제부터 증상을 보였는지’, ‘언제 알아챘는지’, ‘평소와 얼마나 다른지’, ‘어떤 증상인지” 등이 제시됐다.
이시다 박사는 문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열성적인 보호자가 지참하는 A4 20페이지 분량의 노트보다 요점을 간단히 설명해 주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덧붙여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세션의 집대성으로 「HAB 선언」이 채택됐다. 선언은 다음 5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1.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가꾼다.
2. 행복을 양방향으로 만든다.
3. 유대의 가치를 바르게 전달한다.
4. 생명과 삶 곁에 함께한다.
5. 이 유대를 미래로 이어 나간다.
미야존 씨, 이시다 박사, 시바나이 원장 3인이 선언서에 서명했다.
미야존 씨는 “선언문이 딱딱하지 않고 심플해서 이해하기 쉽다”고 평했는데, 실제로 이 다섯 문장은 수의사가 아닌 일반 시민의 언어로 쓰여 있었다. 학술의 언어를 시민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 일본 수의계가 30년 가까이 HAB를 사회에 뿌리내려 온 방식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참관을 마치며…11월, 이 논의를 한국에서 잇는다
이틀간의 참관에서 확인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수의계가 HAB를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데이터와 제도, 그리고 프로그램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 의료비 절감 추산, 고령자 입양 지원 프로그램, 종생사육 보장 체계까지 유대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논의가 결코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다.
초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반려인구 정체 등 한국은 일본과 같은 곡선 위에 있다. 2020년 한국수의임상포럼(KBVP)과 한국동물병원협회(KAHA)가 공동 개최했던 HAB 원헬스 포럼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에는 객관적인 연구와 데이터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 숙제에 답할 때가 됐다.
필자는 현재 오는 11월 중순 개최를 목표로 HAB 관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도쿄에서 확인한 질문들(반려동물은 사람의 건강에 무엇을 주는가, 수의사는 그 유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을 이번에는 한국의 데이터와 한국의 현장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한국 참관단을 따뜻하게 맞아 준 이시다 타쿠오 명예회장과 다케무라 나오유키(竹村直行) JBVP 회장께 지면을 빌려 감사드린다. 두 나라의 수의사가 서로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데 양측 모두 공감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한국 수의사들과 함께 이 자리에 서고 싶다.

※ 본 기고는 필자가 참관한 2026년 9월 27일 JBVP 특별 세션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인용된 수치와 데이터는 세션 발표 내용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