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되거나 버려진 야생동물의 보루 국립생태원, 진료 인력 수요도 늘어난다

유기·방치 야생동물 보호시설, 생추어리 잇따라 건립


12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2011년생 수컷 노랑뺨볏긴팔원숭이 보리는 반려동물이었다. 원숭이를 키워보고 싶었던 개인이 밀거래로 들여왔다. 멸종위기종을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것은 적합하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랬다.

하지만 주인은 5살이 되던 해 보리를 포기했다고 한다. 어릴 때와 달리 덩치도 커지고 개인가정에서 키우기 까다로워졌다. 그렇게 유기동물이 됐다. 유기동물이 된 보리는 금강환경유역청을 거쳐 국립생태원으로 왔다. 이제는 동물원 동물로서 지내고 있다.

긴 팔을 펴고 나무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긴팔원숭이가 가정집에서만 살다 보니 팔이 곧게 자라지 못했다. 보리의 상완골은 휘어 있다.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선임연구원 이혜림 수의사는 13일 전주 글로스터호텔에서 열린 2024 야생동물 질병 전문인력 양성 워크숍에서 국립생태원 동물병원과 수의사의 역할을 소개했다.

보리처럼 불법적으로 밀수·밀반입되다가 적발되어 압수된 멸종위기종이나 버려진 야생동물들을 보호하는 것이 국립생태원의 주된 활동 중 하나다.

국립생태원 이혜림 선임연구원

이혜림 선임연구원은 “국내에도 다양한 멸종위기종 동물이 밀반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밀반입되다 적발돼 생태원으로 온 동물들만 40종으로 넘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국내외 브로커를 통해 불법적으로 들여오는 방식이다 보니 동물에게도 위험하다. 단순 학대를 넘어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꽁꽁 싸매어 숨긴다. 밀반입 과정에서 죽을 수 있으니 10마리를 주문하면 20마리를 보내는 식이다.

그러다 적발된 멸종위기종은 국립생태원이나 동물원으로 간다. 수용 공간이나 질병 검역 등을 고려해 받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국립생태원은 CITES동물 보호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설카타육지거북, 샴악어, 비단원숭이, 에메랄드나무보아 등 국가간 거래가 금지된 멸종위기종이 여럿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특히 소형이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 상대적으로 숨기기 용이한 파충류의 밀수가 많고, 그만큼 생태원으로 오는 개체도 많다고 전했다.

CITES 대상은 아니지만 버려지는 야생동물도 있다. 체험형 카페로 유행을 탔던 라쿤이 대표적이다.

이혜림 선임연구원은 “동물원수족관법이 강화되면서 영세하고 열악한 동물원에서 동물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그중 일부가 생태원에 온다”고 전했다.

이로 인한 보호 수요가 커지면서 유기·방치 야생동물 보호시설을 새롭게 마련했다. 야외방사장을 포함해 포유류 140개체, 조류 200개체, 양서·파충류 60개체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현재 30여마리의 유기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야생동물 생추어리 건립도 현재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야생생물법이 개정되면서 사육곰 산업은 2026년부터 법적으로 금지된다. 지난달까지 18개 농장에 280여마리의 사육곰이 남아 있는데 이들을 데려와 여생을 보내게 할 시설이 생추어리다.

생추어리는 구례와 함께 생태원이 위치한 서천에도 지어진다. 곰 동물사 4곳과 중소형 포유류사, 검역센터, 야외방사장을 갖출 예정이다.

야생동물 검역이 강화되고, 동물원수족관 허가제가 확대되면서 국립생태원이 담당해야 할 야생동물 보호 기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에 따라 전문인력 수요도 커진다. 현재 생태원에는 수의사 6명과 동물보건사 1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선임연구원은 국립생태원이 내년에는 유기·방치 야생동물 보호시설에 근무할 수의사를, 내후년에는 야생동물 생추어리에서 일할 수의사를 추가로 채용할 계획임을 전했다.

학생들을 위한 실습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한 달 간 서천 국립생태원 동물병원에서 실습하며 응급 진료와 정기 검진, 검역 활동 등에 참여하는 형태다.

이혜림 선임연구원은 “국립생태원에서 일할 수의사, 동물보건사가 더 많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채용 규모도 점점 늘어날 예정”이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밀수되거나 버려진 야생동물의 보루 국립생태원, 진료 인력 수요도 늘어난다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