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③] Case Study:안락사

등록 : 2019.01.18 07:17:32   수정 : 2019.01.18 15:34:19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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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에서 안락사는 ‘동물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며, 최소한의 고통으로 유도하는 죽음’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안락사는 수의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고, 많은 수의사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동물의 안락사와 마주하게 된다.

윤리 케이스 스터디에서는, 안락사의 방법론적 고찰이 아닌 안락사를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각 케이스에 대한 해설에서 필자 혹은 수의윤리학자들의 견해를 언급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리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견해를 참고하여 본인의 도덕적 가치관을 마련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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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상황

이 환자의 경우, 질병이 당장 동물의 생명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며 단지 지속적인 보호자의 관심과 관리를 필요로 한다. 꼭 질병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으로는 이사를 한다든지, 임신했다든지 하는 보호자의 편의에 의한 안락사(convenience euthanasia) 요구를 임상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진료환경에서 보호자의 요구사항은 동물의 이익과 같은 방향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케이스에서, 수의사들은 보호자의 요구가 동물의 이익에 반하는 상황에 놓이며 어느 한쪽의 이익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근원적 갈등에서 야기되는 도덕적 스트레스(moral stress)를 느낀다.

만약 그 동물이 자신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환자라면 돌봐온 동물을 자신이 직접 죽여야 하는 상황(caring-killing paradox)에서 오는 스트레스 역시 존재한다. 이는 임상뿐 아니라 실험동물을 안락사하거나, 보호소에서 유기동물을 안락사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1-2. 도덕판단

1) 동물권적(칸트주의적) 관점에서,

- 동물 역시 삶의 주체이므로, 인간은 마음대로 동물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 생명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하여야 하므로, 인간의 편의를 위한 수단으로 동물을 안락사할 수 없다.

- 살생을 하는 행위 자체가 선(善)하지 않다.

- 죽음은 불편함과 비교할 수 없는 큰 해악이므로, 인간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악화의 원리) 

이처럼, 동물권적 관점에서는 그 전제에서부터 동물의 안락사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2)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이익(interest)은 무엇인가?

- 보호자는 치료할 경우의 귀찮음보다, 안락사해서 얻는 본인의 편의를 원한다.

- 동물은 안락사로 당장의 질환으로 인한 불편함을 종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치료할 경우 건강을 되찾고 앞으로의 남은 삶(더 큰 이익)을 살아갈 수 있다.

- 수의사는 안락사를 할 경우 도덕적 스트레스를 느끼고, 치료를 할 경우 직업적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 케이스의 경우 보호자가 추구하는 것이 ‘편의’라면, 수의사는 보호자의 이익에 반할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 안락사를 하지 않는 경우에 동물과 수의사에 더 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덕 원리들을 상황에 적용하여, 이 케이스의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제 수의사에게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는 직업적 역할에 대한 프로페셔널리즘까지 더해진다면, 안락사를 하지 않기 위한 선택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1-3. 선택

A. 안락사하지 않게끔 보호자를 설득한다.

이 경우, 보호자를 설득하는 방법으로는 수의학적 지식을 이용하거나, 전문직의 권위(aesculapian authority)를 활용하거나, 감정에 호소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집으로의 입양을 권할 수도 있다.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되는데, 수의 의료에서도 유능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많은 복잡한 문제를 쉽고, 원만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수단으로서 중요하다.

만약 수의사가 최선을 다해 설득했음에도 보호자가 안락사를 끝까지 요구한다면, 비록 종국에는 안락사를 하게 되더라도 그 수의사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을 것이며 본인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스트레스를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 과정이 필요하다. 

B. 안락사하겠다고 보호자에게 말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보호자와의 약속은 계약이고, 이것을 위반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어떤 쪽이 더 큰 ‘선(善)’을 실천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데, 만약 절차를 어기는 것이 작은 잘못이고, 절차를 지킬 때 더 큰 잘못을 야기한다면 이러한 논리에 호소하여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수의사가 계약위반을 하면서까지 이러한 행동을 하여야 할 도덕적 의무는 없다. 또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향후에 그 동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C. 안락사를 무조건 거절한다.

필자가 인터뷰했던 한 수의사는 본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결코 안락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 수의윤리학자는 안락사의 무조건적인 거절은 책임의 전가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수의사에게 도덕적 스트레스를 떠넘기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안락사를 하는 행위 자체가 본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안락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여러 연구결과와 사례들이 알려져 있다.

한편, 안락사를 거절했을 경우 보호자는 동물을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인다거나, 혹은 치료를 하지 않고 질환이 악화되도록 방치할 수도 있다. 이때 본인이 안락사하는 것보다 과연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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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상황

행동의학에서는 나쁜 예후를 가지는 공격성 환자에 대한 최후의 옵션으로 안락사를 고려한다. 필자는 이 점이 흥미로운데, 일반적 질환과 달리 공격행동 자체가 개에게 신체적 고통을 유발하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동의학에서는 안락사라는 옵션의 당위성에 대해서 어떻게 도덕적 판단을 했을까?

2-2. 판단과 선택

A. 치료를 시도한다.

행동의학적으로 이 환자의 공격성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유전적 소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6년 이상 오랜 기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치료의 예후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격성에 대한 치료는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치료 기간을 요하기 때문에, 치료가 이루어지는 기간에 아기나 다른 사람이 다칠 가능성도 있다.

B. 공격성 유발 조건을 제거한다. : 격리한다.

맥스의 경우 자극원이 보호자를 제외한 ‘사람’이다. 따라서 맥스를 이러한 환경으로부터 평생 격리하여 사육한다면 공격성으로 말미암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어쩌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도 어렵거니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만약 케이지나 방과 같이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격리사육 하게 된다면, ‘개’라는 동물의 특성에 따른 정상적인 행동을 표출할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 긍정적 경험을 제공해줄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은 동물복지의 철학에 맞지 않으며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그 개의 이익이 고려되지 않는 것과 같다.

C. 다른 가정으로 입양시킨다.

자극원을 명확히 제거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다른 가정으로 입양할 수 있겠지만, 이 환자는 자극원이 ‘낯선 사람’이므로 새로운 보호자에 대한 공격성이 예상되고, 현재의 보호자에 대한 분리불안도 있으므로 역시 고려하기 어렵다. 보호자는 다른 가정으로의 입양을 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한편으로는 보호자의 무책임함 혹은 책임회피일 수 있다.

D. 안락사를 제시한다.

앞의 경우들이 모두 적합하지 않을 때, 행동의학에 근거한 신중한 안락사 판단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수의윤리학자는 보호자에게 안락사를 제시하기 전에 본인의 권고 결정이 수의학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의심해 보라고 말한다. 이는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며, 자신의 판단은 틀릴 수 있고, 다른 치료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전문분야가 아닌 경우 전문가에게 치료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수의사의 중요한 능력이다. 스스로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동료 수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위의 공리주의적 도덕판단 과정에서 ‘개의 삶의 이익’과 저울질한 가치는 ‘사람의 안전’과 ‘개의 낮은 삶의 질’이다. 행동의학이 개의 삶에 대한 이익을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람의 안전에 대한 이익과 낮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불이익을 더 크게 평가하기 때문에 이것이 안락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만약 동물권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개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이 안락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면, 그 논리 안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이 경우, 현실적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제시하지 못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많은 동물과 관련된 사안들은 도덕적 정당화 과정에서 주로 공리주의적 도덕원리를 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실험동물과 관련된 윤리는 공리주의적 선(善)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동물 역시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동물권적 견해에서는 동의능력도 없는 동물을 실험에 사용하는 것부터 전제되지 않으며 안락사는 그 방법이나 논리에 상관없이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물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들을 풀어내는데 공리주의적 도덕원리가 주로 적용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공리주의적 관점이 현실적으로 더 적합하다거나, 혹은 인간에게 덜 불편하다거나, 보편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납득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공리주의에 기댄 안락사 주장은 논리가 명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이 손해 보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많은 공리주의적 판단에서, 동물의 죽음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인간의 편의나 건강 증진, 과학의 발전 같은 명분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안락사는 전적으로 동물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공리주의를 갖다 붙인 ‘쉬운 해결책’으로 오용되지 않도록 매우 경계해야 한다.
 

위의 두 케이스에서, 여러분은 윤리적 의사결정 과정에 두 개의 균형을 요구하는 줄타기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는 결과적 선(善)과 절차(과정)의 선 사이의 줄타기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이론과 현실 사이에서의 줄타기이다.

먼저 결과냐 절차냐 하는 문제에서 어느 한쪽만이 정답은 아니다. 상황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어느 하나의 도덕원리가 모든 상황에서 선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혹자는 낮은 단계의 도덕적 추론에서는 좁은 시야에서 단일 도덕원리만을 생각하다가, 단계가 높아지면 보편적 원리나 사회 규칙, 동물이나 환경과 같은 넓은 도덕적 고려의 범위를 가진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이상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앉아서 입바른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사실 위의 케이스들에서는, 오히려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 ‘비용’과 관련된 안락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비용이라는 절대적 현실이 개입할 때, 우리는 생명 앞에서도 많은 부분을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조금씩 현실에 타협하며 선을 실천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안락사와 관련하여 무거운 사건이 터졌다. 여러 사회적 현상이 정립 없이 얽혀 ‘화려한 구조와 이면의 안락사’라는 기이한 순환을 만들었고, 당사자인 개들은 어느새 후순위로 밀린 듯하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확실한 것은, 안락사는 동물과 관련된 사회적인 문제의 쉬운 해법이 아닌, 인간으로서 동물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 임상 케이스를 자문해 주신 황혜진(로얄동물메디컬센터), 김선아(UC Davis)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고자료 : An Introduction to Veterinary Medical Ethics: Theory and Cases, 2nd Edition, Bernard E. Rollin, Wiley-Blackwell,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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