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9] 특수동물 진료 선구자 `한성동물병원 권태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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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억원장님

최근 우리나라 반려동물병원은 무한 경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수의사·동물병원의 폭발적 증가, 신규 개원입지 포화, 보호자 기대수준 향상, 경기불황 등이 동물병원 경영을 점차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 경영 여건 악화는 비단 수의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계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비슷한 문제를 겪으며 병원 경영의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료과목의 전문화’가 급속도로 이뤄졌습니다.

이미 내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신경과 등 전문의 제도가 도입되어있는 인의 쪽에서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의료서비스를 점차 더 전문화하고 있습니다. 성형외과의 경우 지방흡입전문, 모발이식전문, 얼굴뼈 전문에 이어 다크서클 전문 성형외과까지 등장 할 정도입니다.

특정 전문 진료 과목에 초점을 맞춘 전문병원이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종합병원보다 경영 효율성 개선에 훨씬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임상 수의계를 돌아보면, 아직 전문의제도는 없지만 임상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수의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사실상 특정 진료 분야 전문 수의사(전공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의계도 이제 모든 진료과목을 다루는 동물병원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있는 분야에 집중하여 그 진료 과목을 특화시킨 ‘전문진료 동물병원’ 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에 따라 데일리벳에서 특정 진료과목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전문진료 동물병원’을 탐방하고, 원장님의 생각을 들어보는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를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그 아홉번째 주인공은 특수동물 특화 ‘한성동물병원’ 입니다. 한성동물병원의 권태억 원장님께서는 우리나라 특수동물 진료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1994년부터 63CITY 수족관의 특수 전시 생물 진료 전담수의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병원 전체 케이스의 약 60%정도가 특수동물이라고 합니다.

“전문이라는 표현은 수의사법에 없는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전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기가 노력해서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지 ‘전문’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한성동물병원의 권태억 원장님을 데일리벳에서 만나 특수동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특수동물 분야의 가능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수의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나는 경북 안동에서도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출신이다. 그래서 어릴 때 부터 학교 다녀오면 소를 데리고 나가서 풀 먹이는 게 일과였다. 집에 소도 있었고, 개, 돼지, 닭도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동물 수의사를 많이 보게 됐고, 그러면서 소를 고치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Q. 졸업 후의 진로는 어땠나.

87년 2월에 졸업했다. 학교 다닐 때 부터 대동물 수의사 준비를 많이 했다. 도축장 근처에 방을 얻어서 새벽 4시 30분에 나가서 경험을 쌓는 등 노력하다보니 소의 임신진단 정도는 잘할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됐다.

그런데 막상 졸업하니 소 값 파동 여파로 인해 대동물 임상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주저하다가 외국계 동물용의약품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회사에 입사한 것은 사회경험을 쌓고, 사회성도 키우자는 목적이었다. 당시에는 나름 소극적인 성격이었다(웃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공부도 하고 영업력, 대인관계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양계/양돈 전문 수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 소속 수의사들이 농장에 다니면서 많은 역할을 했다. 그 때 양계, 양돈, 양어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부검도 상당히 많이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동물을 접해봤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경험을 쌓은 뒤 90년에 소동물 병원을 오픈했다. 소동물은 88년 올림픽 이후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Q. 특수동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93년도에 63수족관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 생활을 할 때 어류를 비롯해서 여러 동물을 담당했던 경험이 알려져 연락을 받게 됐다. 그래서 그 뒤로 지금까지 63CITY 수족관의 특수 전시 생물 진료 전담수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63수족관에는 어류, 해양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 다양한 동물이 있다. 당시에는 해달을 수입할 때였는데 해달을 수입할 때 미국에서 수의사를 관리자로 함께 파견했다. 그 관리자가 와서 수의사는 있는지, 조명은 어떤지 파악하고, 수질검사, 여과 필터 능력, 자외선 살균 능력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더라.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해달을 사육할 수 있었는데, 수의사가 있어야 하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63수족관의 전담수의사가 됐다.

수족관의 악어, 이구아나를 비롯한 파충류부터 다양한 동물을 진료하다보니 병원에서도 자연스레 특수동물 진료를 보게 됐다.

권태억_63city
63CITY 수족관 특수 전시 생물 진료 전담 수의사로 활동중인 권태억 원장.

Q. 63수족관에서는 수의사로서 어떤 역할을 하나.

1주일에 한 번씩 가서 진료한다. 사육사들이 1주일 동안 관찰한 소견을 이야기 해주면 사육사와 같이 문제되는 부분을 해결하는 형식이다. 검사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병원으로 데리고와서 검사하고 치료·수술하기도 한다.

 

Q. 최근 수족관에 수의사를 정규직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을 중심으로 수의사를 채용하고 있다. 원래 일산 아쿠아플라넷도 나에게 1주일에 한 번씩 촉탁수의사 형태로 와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수의사를 채용하는 쪽으로 조언했다. 현재는 정규직 수의사가 채용된 상태다. 수족관에 들어가는 수의사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 수의사들이 잘해야 제2, 제3의 수의사 자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족관에서 수의사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동물의 진단·치료는 물론이며 연구적으로 중요한 역할도 한다. 일부러 수족관에 갈 때 검역원에 있던 수의사를 함께 동행하여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검역원과의 협력을 통해 해달에서 세계 최초로 플레시오모나스 시겔로이데스(plesiomonas shigelloides)균을 분리·배양한 적도 있다. 이런식으로 수의학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강조했고, 새로 수족관이 생기는 곳에는 반드시 수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Q. 특수동물 공부는 어떻게 했나.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 국내에는 관련 책이 없었다. disease of exotic animal, wild animal medicine 등의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으니 독학할 수 밖에 없었다. 컴퓨터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직접 html언어를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내가 공부한 특수동물 관련 정보를 홈페이지에 올리기도했다.

국내 수의사들은 관심이 부족하니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외국 자료를 찾고 번역하고,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스스로 공부했다. 또 아마존이 나오면서 부터는 아마존을 통해 책을 구입해 공부했다.

 

Q. 병원 전체 진료 중 특수동물 진료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 또 특수동물 진료만으로 동물병원 운영이 가능할까.

전체 케이스 중 약 60%가 특수동물인 것 같다. 그런데 케이스는 60%지만 전체 매출 중 특수동물 진료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5~50%수준이다. 특수동물의 경우 토끼와 페럿 외에는 정기 예방접종하는 동물이 없기 때문에 개·고양이에 비해 재내원율이 떨어진다.  또 특수동물 진료의 경우 멀리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재내원율이 낮다. 따라서 특수동물 진료만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을 것 같다.

진료 보는 동물은 토끼가 제일 많고, 고슴도치, 햄스터, 이구아나도 많다. 조류도 진료 보는데, 이 중에서 조류가 일반 동물병원에서 다루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조류는 대사가 크기 때문에 조금만 심한 처치가 이뤄지면 죽을 수도 있다. X-ray 촬영중에 죽는 경우도 있다. 진료 접근 자체가 개와 다른 측면이 있다.

권태억2

 

Q. 기억에 남는 케이스가 있다면?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책에도 기고한 내용인데, 63수족관에 아나콘다가 있다. 아나콘다는 뱀 중에서 포악한 쪽에 속하기는 하지만 독은 없다. 그런데 그 아나콘다에게 물린적이 있다. 독이 없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은 아무 생각도 안나고 걱정되더라.

이 외에도 악어 진료를 하다가 거의 물릴 뻔 한 적도 있다. 사육방법을 잘 몰라서 악어가 아팠던 케이스다. 사육조건을 바꾸라고 조언해주고 재진을 봤는데, 물릴 뻔 했다. 처음 진료를 볼 때는 사육조건이 나빠 악어의 움직임이 적었는데, 그것만 생각하고 편하게 접근하다가 큰 일을 당할 뻔 한 것이다.

또 움직임이 떨어진 독사를 산에서 발견하고 불쌍하다고 데리고 온 경우, 쥐약을 먹고 비틀거리는 쥐를 아픈것 같다고 데리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Q. 특수동물 임상과 관련하여 바라는 점이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우선 모든 동물병원에서 쉽게 특수동물을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특수동물 보호자들이 ‘동물병원에서 왜 진료를 안해주느냐’고 불만이 많다. 일반 수의사들에게 특수동물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독려해서 보호자들의 불만이 줄어들길 바란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그런 기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수의과대학에서도 특수동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특수동물 분야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학생들을 돕는 거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돕고 싶다.

컨퍼런스에서도 특수동물 강의가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다. 모든 수의사가 이 분야를 다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관심있는 수의사들은 어느정도특수동물 강의를 들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특수동물 역시 업데이트 되는 부분을 계속 공부해야 한다. 따라서 의도적으로라도 특수동물 분야 강좌는 꼭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임상을 오래하고 싶다. 일본에 가보면 70대 수의사들도 열심히 동물병원을 운영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성숙한 시장이 되면 오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래 임상을 하면서 후배 수의사들을 위해 남길 것이 있다면 전해주고 싶은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권태억_한성동물병원

Q. 선배 수의사로서 후배 수의사나 수의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특수동물 분야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은 직접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 타이지 지역에 연락해서 실습문의를 하는 친구도 있고, 미국 해양포유류센터(The Marine Mammal Center)에 다녀오는 후배들도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까지 시야를 넓히는 친구들이 있듯이 관심이 있다면 스스로 많이 찾고 노력해야 한다. 국내 여건은 아직 녹록지 않다.

그리고 전체 수의사 후배들에게는 열정만 있으면 뭐든 지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어릴 때 어렵게 공부했다. 공부를 하려해도 정보가 부족해서 독학할 수 밖에 없었고, 많은 경험을 하지도 못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후배들은 굉장히 공부하기 좋은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열정만 있으면 뭐든 지 할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1가지 이상 정해서 그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전문적으로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수의사는 아직 전문의 제도가 없지만, 관심분야를 전문의 이상으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

 

[전문진료 동물병원 인터뷰9] 특수동물 진료 선구자 `한성동물병원 권태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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