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급으로 20년’ 극심한 승진 적체에 국가직 수의사 공무원 부글부글..“망조가 들었다”
6급→5급은 극심한 승진 적체, 7급→6급은 오히려 승진 회피..“말로만 처우개선, 외딴 섬에 찬밥 신세”

‘가축방역관이 부족하다, 뽑으려 해도 지원자가 적다’는 소식은 별반 새로울 것도 없다. 이들 지적은 주로 시도, 시군구 등 지자체 수의직 공무원 위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국가직에도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자체보다 일은 힘들어도 승진이 빠르고 처우가 좋다는 건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수당도 더 적고, 승진 적체는 훨씬 심하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5급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는 6급 수의직들은 6급으로 승진한 지 20년이나 됐다. 광역지자체의 수의직도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기까지 통상 13년 안팎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심한 적체에 시달리는 셈이다.
이 같은 적체는 하방에서 오히려 승진을 기피하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6급으로 승진하면 삶의 질 측면에서 나쁜 점이 많은 반면 5급으로의 지속적인 승진을 기대하긴 어렵다 보니 아예 적극적으로 7급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극심한 승진 적체와 승진 기피가 뒤섞인 국가직 수의직렬은 뒤틀릴 대로 뒤틀렸다. 격무가 돈으로도, 승진으로도 보상받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각자가 합리적 선택을 내린 결과다. 국가직 수의직 공무원 A 씨는 “기업으로 치면 미래를 내다본 인재 육성이 전혀 없는 셈”이라며 “이미 망조가 들었다”고 자조했다.
지자체보다 처우 낮은 국가직 수의사 공무원
수당 더 적고, 승진 적체도 더 극심
6급→5급 광역지자체는 13년 안팎 걸리는데..검역본부는 ‘20년’
“11월 이후로 집을 못 갔어요. 주말마다 신고가 들어오니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검역본부에서 악성 가축전염병 관련 핵심업무를 담당하는 한 수의직 공무원은 이렇게 전했다. 가족들은 연고지에 있고, 본인만 김천 본원에 내려와 있는데 주말에도 본가에 복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다발하면서 업무강도가 크게 증가하면서다.
농식품부나 검역본부에서 이들 악성 가축전염병에 대한 방역정책이나 역학조사 등을 담당하는 핵심 인력은 격무부서 중에서도 격무인원으로 꼽힌다. 겨울철 특별방역대책기간에는 새벽 퇴근과 주말 출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들에게마저 처우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젊은 수의사들이 수의직 공무원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처우가 꼽힌다.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안정성을 고려하더라도, 임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처우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봉에 편차를 두기 어려운 공무원에게 처우를 좌우하는 요소는 주로 ‘승진’과 ‘수당’이다. 국가직 수의사 공무원에게는 이 두 요소 모두 문제다.
수의사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특수업무수당은 지방직이 월 35~60만원인데 비해 국가직은 월 25만원으로 더 낮다. 그나마 2024년 10만원씩 인상됐지만, 둘다 임상에서의 급여에 비교하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승진 적체도 국가직에서 특히 심각하다.
국가직 공무원은 매년 승진 심사를 앞두고 직렬별로 우선 순위를 정하는데, 올해 검역본부의 우선 순위자(승진 후보자)들의 6급 임용기간은 20여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는 데에도 6~7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용된 지 25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6급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같은 국가직인 농식품부는 6급 임용 후 통상 10년 이내에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고, 광역지자체도 해당 소요기간이 13년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체가 심각하다.
6급에서 5급으로 7~8년 만에 승진하는 행정직렬과는 애초에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국가직 수의직 공무원 B 씨는 “(5급 승진을 위한) 승진 소요기간의 격차가 너무 심각하게 벌어져 인위적으로라도 줄일 필요가 있다”며 “발생한 결원분에 대한 충원이라도 잘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승진 적체가 아래로는 승진 기피 유발
어차피 안 될 텐데..非연고지·격무 피한다
이처럼 5급 승진 적체가 심각하다 보니 수의직렬은 아래에서도 흔들리고 있다. 6급으로 승진해봤자 5급 승진까지 기대하긴 너무 힘들어진 신규 임용자들은 아예 승진을 회피한다. 타지에서 열심히 일할 동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 공항만에서 검역을 담당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배치 희망지를 선택하여 지원할 수 있다. 신규 임용자들은 통상 2~4년간 희망지 배치를 보장받는다. 수도권에 살던 수의사들이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식이다.
이후 6급으로 승진하게 되면 김천 본원이나 다른 공항만 등 타지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의 7급 수의직에게는 피하고만 싶은 일이 됐다.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해도 급여상의 큰 개선은 없고, 비(非)연고지로 가면 주거비 등 소요 비용은 오히려 높아지는데, 20년씩 묵혀야 5급 승진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밖에 없다.
국가직 수의직 공무원 C 씨는 “승진에 필요한 교육시간을 일부러 채우지 않거나, 심지어 퇴사 후 다시 입사하기도 한다”면서 “그나마 교육시간을 채운 사람을 승진시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어렵고 고된 자리에서 일하고, 해당 성과를 바탕으로 우선 승진하는 것이 공직사회의 문법이지만, 국가직 수의직렬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임상에 비해 기대소득도 낮은데 승진도 기대하기 어렵다면, 남는 것은 ‘삶의 질’이다.
수의미래연구소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만 36.1세였던 검역본부 수의7급 신규 임용자 평균 연령은 2025년 만 43.4세로 크게 높아졌다. 현재의 적체 수준이라면 5급 승진도 못한 채 정년을 맞이할 판이다.
“수의직은 외딴 섬..고생한다 말만 하지 찬밥 신세”
국가직 수의직 공무원 D 씨는 극심한 승진 적체를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수의직은 검역본부나 농식품부의 방역·위생 부서 밖에서 자리를 찾기 어려운데, 다른 직렬은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구조라는 것이다.
과거 수의직 공무원이 배치됐던 5급·4급 자리는 갈수록 줄고, 검본이나 방역·위생 부서 바깥에서의 자리는 찾을 수 없으니 안으로만 승진대기자가 쌓인다는 얘기다.
방역 부서의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타 부서, 타 직렬과의 인사 교류가 애초에 쉽지 않다는 점도 요인으로 덧붙였다.
D 씨는 “수의직은 방역국, 검역본부라는 외딴 섬에 가둬져 있다. 승진 TO는 정해져 있고 뺏기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라며 “‘가축전염병으로 고생한다’ 말은 하지만 실질적인 처우는 찬밥 신세”라고 토로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수의직 공무원 부족 문제를 지적한 이병진 의원에게 “저희도 가축방역관 처우도 개선하고, 업무를 줄이기 위해 민간하고 협업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었다”며 올해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김선교 의원에게는 지자체의 수의6급 채용 아이디어를 잘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농식품부는 검역본부를 포함해 그들 스스로의 수의직 공무원 문제부터 점검해야 한다.
이미 장기간 누적된 승진 적체에 대한 불만은 수의직렬의 토대를 이루는 7급, 6급부터 곪게 만들었다. 개선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되겠냐’는 식의 자조 섞인 회의만 돌아오는 실정이다. 오히려 공직 수의사 업무에 대한 복수직렬화, 검역사 신설 등 ‘수의사가 안 오니 대체한다’는 식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비관적 분석도 나온다.
A 씨는 “공직은 (처우개선 대신) 수의사와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당장의 충원에 급급한 비수의사 인력 확대가 공직 수의사의 발판을 좁히고 젊은 수의사들에게 더욱 외면 받는 악순환에 이를 것이라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