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11 ― 임동주 수의사

등록 : 2018.02.12 17:12:12   수정 : 2018.02.12 17:12:12 데일리벳 관리자

[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11. 양, 유목민의 동반자

limdongju_1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황량한 초원지대에 인간이 살 수 있게 된 것은 양을 가축으로 사육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양은 성질이 온순하며,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가축으로 키우기가 편해, 약 1만 년 전부터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축화되었다.

양은 인간에게 대단히 유용한 가축이었다. 털은 깎아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고, 젖은 짜서 마실 수 있으며, 고기는 맛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 순한 동물이다. 소, 말, 개, 돼지 그리고 고양이까지 가축들은 때로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사나운 발톱과 송곳니 혹은 엄청난 괴력의 뒷다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은 그렇지 않다. 양은 키우기 쉬우면서도, 인간에게 큰 이득을 주는 동물이다.

따라서 양은 개에 이어 두 번째로 가축화된 동물이다. 다만 양은 풀을 많이 먹기에, 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풀이 많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해야 한다. 유용한 양을 키우기 위해 인간의 생활이 양에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양을 따라 이동하면서 살게 된 것이다. 양은 인간으로 하여금 유목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양을 키울 때는 염소를 함께 키운다. 양은 무리를 지어도 양들 사이에서는 리더가 없기 때문에, 이동할 때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염소는 양들과 섞이면 무리 속의 리더가 된다. 양들은 리더를 따라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는 습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염소와 양을 함께 키우면서 리더인 염소를 조정하면, 양의 무리까지 함께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또한 양은 한곳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데, 나서기를 좋아하는 염소가 양을 이리저리 이끌고 다님으로써 초지를 보호할 수도 있다.

양고기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에 이어 인류가 소비하는 4번째 육류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는 칠면조가 4번째 육류이지만, 광범위하게 사육되지는 않는다. 칠면조는 오직 미국, 유럽연합이 전 세계 소비량의 83%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과 유럽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양고기는 사우디, 이란 등 무슬림국가들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널리 소비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도 양고기 소비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인류는 소와 말, 양과 염소 등에서 채취하는 젖을 음료로 이용하기도 하고, 가공하여 치즈, 요구르트, 버터, 크림 등 다양한 유제품을 만들어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에도 식생활을 풍족하게 즐길 수 있다. 양젖은 우유나 염소젖과 비교해 진하고 영양가가 높다. 하지만 젖소에 비해 단위당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양을 키우는 목장에서는 양젖 보다는 털과 고기 생산에 중점을 두기 마련이다. 대량 생산은 어렵지만, 유목민들에게 양젖은 무엇보다 소중한 식량이었다. 양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황량한 초원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양은 행동반경이 하루 평균 6㎞이기에, 어린 소년이나 아녀자들도 양떼를 돌볼 수가 있다. 양은 온순하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남성들이 외지에 나가도 별 탈 없이 양떼를 관리할 수 있다. 양이 없었다면, 칭기즈칸과 같은 몽골 유목민의 등장은 결코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목민이 없었다면, 동서 문명 전파와 세계적인 교역 등이 단절되었을 것이고 인류는 각자 저마다의 세상에서 오래도록 고립된 채, 교역을 통한 발전이 거의 정체된 상태에서 지내왔을 것이다.

야크가 티베트인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주었고, 순록이 에벤크족 등 툰드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모든 것을 준 것처럼, 양은 유라시아 내륙의 유목민뿐만 아니라, 정착민들에게도 많은 것을 제공해준다. 정착민들이 목장을 만들고 양을 키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양털 때문이기도 하다. 양털은 보온력이 높고 질겨 직물의 원료로 많이 이용된다. 또한 높은 흡습성을 갖고 있어, 또 많은 기공을 내포해 열전도를 차단해서 보온 효과를 높여주기 때문에 방한복을 만들 때 널리 쓰인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는 엔클로저(encloser) 운동이 일어난다. 엔클로저 운동은 양 등 목축업을 하기 위해 공유지나 황무지 등 무주지(無主地)에 울타리나 목책 등을 설치하고 임의로 사유지임을 표시해서 땅을 선점하는 행태를 말한다.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지주, 농업자본가와 농업노동자가 탄생하게 된다. 소위 대규모 농업이 시작되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가능해졌다.

이때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가 추워지는 소빙기(小氷期) 시대였다. 날씨가 추워지자, 사람들은 따뜻한 옷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모직물 산업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영국의 지주들은 곡물 생산보다 양모생산을 위해 농지를 차츰 양을 키우는 목장으로 전환시켰다. 농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와서 공장 노동자가 되어 당시 붐을 일으킨 모직물 산업에 대거 종사하게 되면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양털 수요가 계속 늘자, 영국은 새로 개척한 식민지인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양을 키울 목장들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전혀 양이 살지 않았던 호주와 뉴질랜드가 불과 일이백 년 사이에 세계적인 면양(綿羊) 생산국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동물 털 가운데는 가장 가늘고 질이 좋은 것은 남아메리카에서 사는 비쿠냐의 털이다. 하지만 비쿠냐는 성질이 급해 인간이 가축으로 키울 수 없는 동물이다. 비쿠냐 다음으로 좋은 털은 같은 라마 속(屬)에 들어가는 알파카다. 하지만 안데스 산맥과 같은 고원지대에서 서식하는 알파카는 번식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반면 양은 번식력이 뛰어나며 지나칠 정도로 습기가 많은 곳이 아니라면, 고원지대나 더운 곳에서도 잘 자란다. 또한 다른 모피동물에 비해 털이 풍부하다. 그 때문에 양은 대량으로 사육될 수 있었다.

양은 고기, 털, 젖만 인류에게 제공해준 것은 아니다. 양가죽이 인류 역사에서 기여한 것도 컸다. 대(大)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 양에 관련된 글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이집트가 현재 터키 아나톨리아반도 서부지역에 위치한 페르가몬왕국에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자, B.C. 190년경 페르가몬의 왕 에무메네스 2세에 의해 양피지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특산의 카야츠리그사 과(科)의 식물을 재료로 해서 만든 일종의 종이를 말한다. 양피지는 8세기 무렵부터는 파피루스보다 훨씬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양가죽을 석회수에 담가 털을 제거하고, 깎아 얇게 펴서 햇빛에 건조시킨 후 돌 등으로 문질러서 반질반질하게 마무리해서 양피지를 만든다. 양피지는 부드럽고 유연한 표면에 양쪽 모두 글을 쓰기에 좋았으므로, 바느질로 묶어 책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양피지는 값이 비싸고, 부피가 크며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서 시작된 종이가 14세기경 유럽에 대거 전파된 이후로 양피지의 사용량은 급속히 줄게 된다. 그렇지만 종이에 비해 품격이 뛰어나므로, 최근까지도 조약 등 중요한 문서에 계속 사용되고 있다. 양피지가 없었다면 중세 유럽의 지식은 후세에 전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양은 다방면에 걸쳐 인류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가축이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

limdongju_profile20171110

 
오피니언
화제의 신제품

`천연 와구모 구제제` 고려비엔피 와구방,동물용의약외품 정식 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