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공 수의사 채용 면접 갔더니 `남자니까 도축장 수의사?`

수의사 A씨, 지역 농협 사무소 채용 과정 문제점 제기

등록 : 2020.05.11 15:19:54   수정 : 2020.05.14 17:27:38 이학범 기자 dvmlee@dailyv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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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 A씨는 최근 국민신문고, 국무총리비서실 등을 통해 채용 관련 민원을 다수 제기했다. 한 지역 농협 사업소 채용 면접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육가공 수의사 뽑는다더니, 면접에서 다른 업무 언급

A씨는 얼마 전 데일리벳 리크루트 게시판에 올라온 한 지역 농협 수의사 채용 글을 보고 지원했다. 기술관리직(정규직) 5급 수의사를 채용하는 내용이었다. 상세업무에는 ‘육가공공장 위생관리 수의사’라고 적혀있었다.

A씨는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업무에 관해 묻기도 했는데, 육가공공장 HACCP 관련 업무를 하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A씨는 서류를 접수했고, 서류 전형에 합격해 면접을 보러 해당 사무소로 갔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비행기까지 타고 참석한 면접이었다.

면접에 참석한 수의사는 A씨를 포함해 총 2명이었다. 그런데 면접에서 한 면접위원이 “남자가 1명이고, 여자가 1명이니까 남자는 도축장 수의사를 하고, 여자는 육가공사업부 수의사를 하면 되겠네”라는 식의 말을 했다는 게 A씨 측 설명이다.

분명 채용 공고에 ‘육가공공장 위생관리 수의사’라고 적혀있었고, 담당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육가공 관련 업무에 대해서만 들었는데, 면접에서 ‘도축장 수의사’라는 말을 들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채용공고에서도 그렇고, 담당자와의 통화해서도 육가공 업무에 대해서만 들었는데 실제 면접에서 도축장 수의사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업무를 면접에서 알려주는 것도 문제고, 채용에서 남녀차별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이없는 일을 겪는 A씨는 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채용 글 혼선에 사과…그러나, 도축장 수의사하라고 한 적은 없어.”

농협 측은 A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해당 농협 사무소는 최근 육가공사업부에 근무하던 여자 수의사 1명이 그만두게 되면서 이 자리에 수의사 1명을 채용하려 했다.

그런데, 농협은 내부적으로 ‘순환 근무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2년 이상 동일업무를 하지 못하고, 동일사무소에서 5년 이상 근무하지 못한다는 것이 채용 담당자의 설명이다. 사무소에는 약 20여개 사업장이 있고, 수의사가 일할 수 있는 곳이 7~8개쯤 되는데 결국, 육가공 수의사로 채용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 도축장이나 수의질병 컨설팅 업무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순환 근무 체계’가 있기 때문에, 농협 채용페이지에 공고를 낼 때는 업무를 명시하지 않고 기술관리직(정규직) 5급 수의사를 채용한다고만 공고했다. 하지만, 데일리벳 리크루트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는 ‘육가공공장 위생관리 수의사’라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채용 담당자는 “내부 수의사 직원이 데일리벳 게시판에 글을 적는 과정에서, 육가공사업부 수의사가 이직해서 수의사를 채용하는 것이니까 ‘육가공공장 수의사’라고 명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용 글을 올리는 과정에 혼선이 생겼다는 것이다.

농협 측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A씨에게, 데일리벳에 게시된 채용 글을 확인하지 못하여 안내에 혼선을 드린 점에 대하여 사과 말씀을 드리며, 향후에는 보다 충실한 채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단, 도축장 수의사를 하라고 한 적은 없다는 게 농협 측 입장이다.

농협 측은 “면접 과정에서 면접위원이 수의사 업무를 소개하면서 도축장업무, 클리닉센터업무, 농장을 방문하여 혈청 뽑는 업무도 있는데 이런 업무도 할 수 있겠냐고 질문한 것”이라며 “도축장 수의사를 하라고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면접응시자에게 여러 업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물어볼 수는 있으나, 최종합격결정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디를 특정하여 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해당 농협 사무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농협중앙회 감사팀과 고용노동부에 사건을 소명하고, 주의를 받았다.

농협 측은 A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해 “육가공사업본부 외 도축장에도 수의사 채용이 있었으나, 공고 및 안내 과정에 착오가 발생하여 고객님께 피해를 끼쳐드린 점 사과의 말씀드린다”며 사과했다.

불충분한 사과에 추가 민원 제기한 A씨

그러나 수의사 A씨는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사과와 징계가 불충분했다는 판단에서다. 

A씨는 “민원에 대한 답장은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남자니까 도축장, 여자니까 육가공’이라는 어이없는 면접 진행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며 “답장도 변명에 지나지 않고, 관련자 징계도 없어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이 될 때까지) 끝까지 민원을 넣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