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⑬] 서지영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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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열세 번째 주인공은 서지영 수의사입니다.

당시 ‘수의사에 대한 궁금증 21문 21답- 수의사, 아는 만큼 보인다’ 편을 통해 수의사에 대한 궁금증을 명쾌하게 해결했던 서지영 수의사님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임상 수의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편집자주)

seojiyoung
Q.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작은 로컬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 서지영입니다.

Q.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책 10년 후 인터뷰를 하는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그간 많은 분들을 통해서 이 책이 널리 읽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양한 수의학 분야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 수의사 선생님들의 소중한 경험담을 나눌 수 있었던 책이었지요. 수의사를 꿈꾸는 많은 후학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던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10년이 지난 지금도 임상분야에 종사하고 계신데, 집필 당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간 결혼도 했고, 딸도 하나 낳았고, 병원 새 단장도 했고, 대체의학 관련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적다보니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 뿌듯하네요 ^^

Q. 학부생 시절에 생각했던 미래와 현재를 비교해본다면 어떤가요?

꼬마 때부터 수의사가 꿈이었던 저는 꿈을 이루고 그것으로 밥벌이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의대 시절의 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 철없었다.’ 입니다. 그저 막연히 수의사가 되어 동물의 건강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며 살아가는 삶을 그려보곤 했었지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정말 너무나 똑똑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임상환경은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고 지금 이순간도 진화하고 있지요. 똑똑하고 현명한 후학들이 만들어 갈 이 땅의 수의사의 미래가 얼마나 밝을지 기대됩니다. 

Q. 여성 수의사로서의 장점이나, 혹은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임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수의사가 보호자로부터 ‘아저씨’ 라는 호칭을 심심치 않게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허니, 여자 수의사는 더 했겠지요. 풋내기 수의사 시절에는 ‘아가씨’ ‘언니’ 라는 소리를 ‘선생님’ 이라는 호칭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종종 ‘여자도 수의사를 해요?’ 라는 질문도 받았었고요.

사회적인 인식이 그러할 때였고 그래서 나름 보다 전문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진료복도 깔끔하게 입었고, 언어도 좀 더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였고 목소리 톤도 낮추고 천천히 말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지요. 세월이 흘러 수의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성장하면서 이제는 진료실에 들어와 ‘언니, 아가씨’ 라고 호칭하는 보호자는 한명도 없네요.

사회적으로 수의사의 입지가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것을 작은 진료실에 앉아서 몸소 느끼고 있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 사회에 수의사로써 기여하는 일들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존경받는 전문인이 될 수 있겠지요. 

Q. 임상수의사로서 힘든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고, 또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알려주세요. 

수술이 잘 못되어 소송이 걸렸던 적이 있습니다. 많이 괴로웠었지요. 보다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려던 고민과 노력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보호자와 반려동물을 더 힘들게 만들었으니까요. 의료사고나 과실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요, 수의사로써 의료적 판단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죄책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의료과실에 있어서 의료인이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여러모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기계가 아닌 생명이기에 예기치 않았던 문제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니, 잘잘못을 가리기도 어렵지요. ‘어느 선 까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보호자나 수의사가 그 접점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는 케이스입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식과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케이스였지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욱 신중하게 환자를 진찰할 수 있도록 지금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 동물병원을 운영하다보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운데 본인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는 언제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것, 그와 공존하는 못난 것까지 다 품어줄 수 있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그래서 남은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할 진정한 동반자로서 스스로가 준비되었을 때. 그때가 결혼 적령기겠지요. 그때가 40살이던 60살이던 중요치 않아요. 삶은 단순히 숫자로,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로 평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지요. 다만, 출산 적령기는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우린 동물이잖아요, 생물학적으로 적정한 시기는 분명 있어요. 결혼=출산 이라는 공식을 고수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리 중요치 않겠지요.^^

Q. 수의대 학생들이 이 인터뷰를 많이 읽습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를 잠시 한 적이 있는데, 열 명 남짓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더니 꿈이 있는 친구가 단 한명 뿐이었어요. 가슴이 아팠어요. 대체 저 어린 나이에서 조차도 꿈을 꿀 수 없다면, 있던 꿈마저 내던져 버려야 할 때를 수없이 겪어야 하는 어른이 된 그들의 삶이 어떨까 싶었지요.

저는 어떤 일을 하던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은 절대 못 따라 간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가? 이걸 찾는데 20대를 불태워 보셨으면 좋겠어요. 절대 아깝지 않을 거예요. 아직 저도 젊은 나이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 했던 고민들은 지금의 고민에 비하면 진짜 별거 아니에요. 그러니 있는 힘껏, 마음껏 치열하게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Q. 현재 본인의 자리에 있기까지 도움이 된 가장 큰 자산은?

사람입니다. 제가 인복이 많아요.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분도 계시고, 바보 같은 짓을 할 때 따끔하게 혼을 내주는 분도 계시지요. 언제나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제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 일처럼 기뻐해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그 사람에 의해 훼손되며, 아이러니 하게도 다시 사람에 의해서 회복되곤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 마시고, 나부터가 누군가에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인맥을 만드는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치원 가는 제 딸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요 ‘오늘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렴~’ 라고 말해 줍니다. 근데 사실 그게 참 어려워요 ^^;

Q. 수의사로서의 자신의 사명감과 신념은 무엇입니까?

크리스천 의사 10계명이라는 것이 있어요. 10가지 계명 모두가 참 감동이고, 가슴에 꼭 새겨두어야 하는 글귀들인데요, 그중에서도 ‘항상 원칙을 지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살리는 의사가 되어라.’ 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담고 진료에 임하려고 노력합니다.

Q. 개인적으로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이나 계획이 있으신지?

수의사가 천직인 줄 알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번 사는 인생 굳이 한 가지 직업으로만 살 필요는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5년간 공부를 했고 작년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땄지요. 55세 정도에 수의사를 은퇴하면 나를 존재하게 해준 이 사회를 위해서 남은 삶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Q. 선생님과 같은 임상 수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그냥 현시대를 살아가는 그저 그런 기성세대에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만큼 훌륭한 수의사도 아니고요. 그런 제가 젊은이들에게 감히 하고 싶은 말은 그저 ‘무엇을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에 좀 더 집중하면 어떨까 싶어요. 아는 분께서 ‘노브레인’ 이라는 록밴드와 일을 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대중가요도 아니니 배고픈 일이잖아요. 그래서 걱정 섞인 이야기를 건넸더니 ‘우리는 그냥 노래만 할 수 있으면 돼요. 그러면 행복해요’ 라고 답했답니다. 그 말에 제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전 제 딸이 진정 원하고 행복해 하는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일이 위험할 수도, 밥벌이가 시원치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걱정은 오롯이 부모로써 내 몫일뿐, 내 걱정이 두려워 아이의 행복을 뺏는 것은 사실 걱정을 가장한 나의 욕심이겠지요. ‘잠 못 들며 걱정하는 밤은 엄마가 지새울게, 그건 너를 세상에 내놓은 어미로써의 내 몫이니까. 너는 그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불태우며 행복해지렴.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이기도 하니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여러분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Q. 끝으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의 21문 21답의 질문 몇 개를 추려서 다시 질문해보겠습니다.

-진료 과목을 결정할 때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 좋을까요?

뭐가 재밌는지 잘 들여다보세요. 어떤 과를 공부하고 경험할 때 제일 재밌고, 더 파고들어 보고 싶어지는지요. 저는 내과를 전공했는데요.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끝이 없이 연결되는 생명의 메커니즘을 알아가는 일이 재미났었어요.

-수의사로서 어떨 때 가장 힘이 듭니까?

식상한 소리겠지만, 환자가 뜻대로 회복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거기에 보호자의 컴플레인이 더해진다면 더욱 힘들어지지요.

-수의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예전에는 환자가 잘 회복되어 보호자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생의 마지막을 치열하게 버텨주던 나의 환자들의 마지막을 주치의로서 끝까지 케어하고 보내줬을 때, 그때가 많이 슬프지만 제일 보람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수의사가 아닌, 오롯이 동물을 위한 진정한 수의사가 된 것 같거든요. 거기에 자신의 반려동물의 생을 끝까지 보살펴준 노고에 대하여 보호자들의 감사의 마음을 받을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벅차올라요.

-직업으로서 수의사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반려동물 산업 시장은 경제지표로만 봐도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단 한국의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러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회현상이 나타나는 그 이면을 살펴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받고 위로 받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좋게 보지만은 않아요. 동물은 같은 종 내에서 의지하고 위로 받으며 사랑하고 또 회복해야 해요. 우리는 지금 그게 안 되니까 인간 이외의 종에서 안락과 위로를 추구하려 하지요. 지금 반려동물 산업의 급격한 성장은 이러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반려동물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흔히 말하는 ‘진상들’을 병원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어 곤욕을 치르곤 하지요.

우리는 이러한 생태계적 변화 속에서 수의사로서 명확한 사회적 자각을 해야 할 시점에 와있습니다. 네, 자본주의 사회가 녹록치 않지요, 그렇기에 수의사의 경제적인 입지도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구요. 그러나 단순한 경제논리를 넘어서서 동물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수의사로서 진화할 수 있어야 후대에 이르러서도 존경받는 전문인으로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직업으로써 수의사의 전망에 대한 사족을 좀 달아볼까요?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의료전문직이 바로 수의사라고 말합니다. 로봇이 동물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100% 믿는 수의사는 아마 없을 거예요, 적어도 임상을 해보신 선생님들이라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동물의 건강을 다루어 온 그 경험치 말입니다. 절대로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값진 것들이지요. 그렇기에 이 강력한 무기를 우리는 잘 활용하여 보다 전 인류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변화는 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 이외의 모든 동물의 건강을 책임지는 수의사의 소명 안에서 우리가 진정 깨어 있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더욱 존경받는 수의사로서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지후 기자 seezchlos@dailyvet.co.kr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⑬] 서지영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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