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물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 유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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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개 번식장 사태 해결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 방배한강동물병원 유경근

번식장의 개들은 이미 동물이 아니었다

지난 5월15일 SBS 동물농장에서 개 번식장 실태에 대해 방송된 바 있다. 방송을 보거나 관련 보도를 접한 모든 이들이 충격적인 번식장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반려견을 키우고 있던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키우고 있는 개들도 그런 열악하고 참혹한 현장에서 태어나서 왔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동물복지의 기본 원칙은커녕 아주 기본적인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는 번식장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개들은 이미 동물이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개를 생산해 내는 설비일 뿐이다. 말 그대로 ‘강아지 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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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장에서 구조된 어미개.
이 개는 열악한 번식장에서 다수의 출산과 제왕절개를 겪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등의 각종 질병으로 앓고 있어 수술을 받고 지금은 잘 회복하여 살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한 나라의 위대성과 도덕성을 판단할 것까지도 없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란 기본 인성만 가졌다면 동물이 고통 받는 것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흉악범들이 실제 범행 이전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동물을 학대해 왔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왜 중요한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동물은 소중한 생명이고 그 동물이 나와 직접적 관련이 없든 있든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사회의 기본이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성숙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동물이 소중한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데 보장해줘야 할 조건이 있다. 부적절한 영양관리로부터의 자유, 불쾌한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신체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자연스러운 본능을 발현하며 살 수 있는 자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동물복지의 원칙이라 부른다. 번식장내에서 학대받고 있는 어미 개들은 이 중 어떠한 조건도 충족되고 있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번식장은 반려견 행동 문제의 출발점이다

이 문제는 어미 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모든 반려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태어난 모든 강아지들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선 면역력 문제이다. 모든 강아지는 태어나 처음 먹는 초유를 통해 어미로부터 질병을 이겨낼 항체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어미 개들이 제대로 예방접종되었을리 만무다. 그러다보니 어미로부터 항체를 물려받지 못한 어린 강아지들은 파보장염이나 홍역 같은 전염병에 노출되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번식장 출신 강아지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행동학적 문제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어릴 때 어미나 형제 개들과 충분히 지내지 못한 강아지는 우선 여러 상황에서 쉽게 흥분하고 불안해진다. 흥분과 불안은 모든 문제행동의 출발점이 된다. 쉽게 흥분하고 불안해하는 개들은 같은 자극에도 쉽게 각성되어 공격성, 분리불안증, 강박 장애 같은 각종 행동문제를 보일 수 있다.

또 어릴 때 다른 개들과 충분히 함께 지내지 못하면 개에 대한 사회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개들이 자신도 개이면서 다른 개들을 무서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특히 사회화 과정은 생후 3개월령 미만이라는 매우 어린 나이에 형성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아무리 애견카페나 공원 등에서 다른 개들과 잘 지내보게 하려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다. 어릴 때 형제 개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개들간 소통 기술 그리고 놀이 방법 등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 이런 개들은 보호자들과의 놀이과정에서 대부분 깨무는 것이 쉽게 습관화되어 커서도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개들을 만나도 어떻게 개를 대해야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거칠게 개에게 덤벼들어 싸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관련법이 문제해결을 막고 있다

다행히 방송 후 이런 개 번식장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번식장이 그렇게 열악하게 운영되고 심지어 제왕절개수술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음에도 딱히 처벌할 법이 없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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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공장 철폐 촉구 동물보호단체/수의사단체 합동기자회견.
지난 5월 19일 강아지 공장 문제해결 촉구 공동기자회견이 19일 오후 1시 광화문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수의사법 자가진료 조항 철폐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우선 선언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물보호법으로는 개 번식장을 어떤 행태로 운영해도 딱히 처벌할 수가 없다. 동물복지 조항이 관련법 제3조에 명시되어 있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도 없고 처벌조항도 없다.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동물 학대에 대해서도 벌칙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수준이고 그나마도 징역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또 자가진료를 허용한 수의사법 시행령으로 인해 수의사가 아니라도 자신의 동물이란 이유만으로 함부로 진료를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조항은 동물을 단지 개인 소유 물건처럼 여기도록 만들고 버렸다. 내 동물이니 함부로 항생제를 먹이든 예방접종을 하든 심지어 위의 경우처럼 제왕절개 수술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이개 꼬리를 자르는 수술을 했다고 버젓이 인터넷에 올리며 자랑하는 글까지 올리기에 이르렀다.

문제가 또 있다. 현행법에서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동물관련 약품을 쉽게 구해 얼마든지 자신의 동물에게 투약할 수 있다. 그나마 몇몇 항생제, 예방백신 같은 동물 약품은 수의사처방전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게 해 놨으나 그마저도 약사법에 예외조항을 둬 약국을 개설한 약사라면 수의사처방전 없어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았다. 앞문을 닫고 뒷문을 크게 열어 놓은 셈이다. 실제 이렇게 구입한 항생제를 함부로 먹이거나 예방접종 등을 실시하다 심각한 부작용으로 고생해 동물병원에 내원하는 동물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실정이다. 이 예외조항은 동불보호자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목 하에 무분별한 자가 진료를 부추기고 있다.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접근해야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이런 관련 법률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 한 번식장 문제를 아무리 도덕적으로 비난한다 해도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오늘도 허술한 관련 법 안에서 편하게 보호받으며 개 번식장은 성행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미 우리의 의식수준이나 사회적 성숙도는 동물을 단순한 소유물로 판단하는 않는 수준에 이르러 있다. 하지만 우리의 법과 제도는 아직도 동물을 물건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이 기본 인식부터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기고] 동물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 유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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