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돈농장으로 온 역사학자, 김동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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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팜텍에서 양돈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는 김동욱 수의사의 이력은 조금 특이합니다.

문과생으로서 사학과에 진학해 조선 전기 성리학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던 김동욱 수의사는 군(軍)사관후보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다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데일리벳이 김동욱 수의사를 만나 양돈수의사가 된 사연부터 양돈산업의 동물복지, 질병관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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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팜텍 김동욱 수의사

 
Q.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을 정도면 역사학자로서 뜻이 있었을 것 같은데,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

1994년 고려대 한국사학과에 입학해 2000년 조선 전기 성리학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과정을 앞두고 입대해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국사를 강의했다.

진로를 바꾸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결혼’이었다. 인문학의 위기, 아시지 않나. 역사학자로서는 교수가 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길이 없다. 그 길마저 점점 좁아지는 추세다. 현실적인 측면이 컸다.

사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한 후 대학, 대학원을 거쳐 문과 인생을 살다 보니 과학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이과 전공 강사들을 통해 과학을 접해보니 참 재미가 있더라.

그렇게 적성에도 맞으면서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 보니 ‘수의사’가 있었다. 당시 수의사 출신 학사장교 동료가 ‘소 임상수의사가 딱 맞다’고 추천해주기도 했다. 스스로도 안에 갇혀 있기 보다는 돌아다니는 일이 좋았다.

제대 후 얼마간 박사과정을 이어가다가 결심을 굳혔다. 수능을 다시 봐서 2007년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에 합격했다.

Q. 소 수의사를 꿈꾸며 입학했는데 대학에서 진로가 또 바뀌었다

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수의사 진로특강을 들었는데, 양돈수의사이면서 양돈농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선배 한 분이 연자로 오셨다. 양돈수의사가 하는 일이나 양돈농장을 소개하는 강의가 무척 재미있었다.

본과에 진학한 후 그 선배에게 연락해 방학실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물병원 양돈수의사를 쫓아다녔는데, 양돈산업 자체를 모르니 봐도 별 소득이 없었다. ‘양돈장의 기본적인 운영이나 용어를 알아야 배울 게 있겠다’ 싶어서 아예 농장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로 방학마다 그 농장에 나갔다. 방학때만 잠깐 보는 것으론 양돈산업의 흐름을 체감하기 어려워, 졸업하자마자 그 농장에서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그 후 제주양돈농협과 엑스피바이오를 거쳐 한별팜텍에서 일하고 있다. 2013년에 졸업했으니 5년차 양돈수의사다.

Q. 사실 다른 진로에서 수의사로 변경하신 분들이 종종 있지만 ‘동물이 좋아서 왔다’며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를 꿈꾸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처음부터 양돈수의사를 바라보신 점도 특이하다

그냥 돼지가 좋더라. 산업동물 중에서 보면 소는 출하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닭은 너무 짧다. 6개월을 주기로 돌아가는 돼지는 지루하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그 과정이 매력이다.


Q.
지난 2월 양돈수의사회에서 ‘동물복지’를 주제로 강연하신 내용이 흥미로웠다. 국내에서 이슈화된 지는 얼마 안됐는데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예과 시절 발표과제로 처음 동물복지를 접했다. 당시만해도 국내에서는 먼 나라 얘기였지만 유럽에서는 모돈스톨금지가 코앞에 닥친 문제였다. 올해 3월 덴마크를 방문해 실제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다.

수의대생 시절 나갔던 그 농장은 2사이트로 전환하면서 동물복지형 군사 사육을 시도했다. 운 좋게 당시에도 드물었던 동물복지형 사육형태를 볼 수 있어 기대가 컸다.

스톨이 없어지면 동물복지 측면에서 마냥 좋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장단점이 있는 문제였다.

Q. 스톨에서 벗어나게 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스톨 없이 모돈 여러 마리를 한 돈방에서 함께 키우면(군사) 모돈끼리 서열다툼을 벌인다. 힘있고 성격 나쁜 모돈이 허약한 놈을 해코지한다. 힘없는 모돈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차라리 야생이면 안 쫓아올 때까지 도망갈 수 있지만 농장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돈 각각을 분리된 돈방에서 키우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덴마크에서 양돈농장 2곳을 찾아갔다. 첫 농장은 EU 동물복지기준을 적용 받는다. 종부해서 임신진단이 될 때까지 4주 정도는 스톨에 있지만, 나머지 기간은 군사 형태로 사육한다.

또다른 농장은 더 높은 수준의 영국왕립동물보호협회(RSPCA) 기준을 획득한 곳이었다. 단 하루도 스톨을 사용할 수 없다. 깔짚도 돼지 무릎 높이까지 깔아줘야 한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끝내준다’는 내 칭찬에 돌아온 그 농장 직원의 대답은 ‘People like it, but Pigs don’t like it’이었다. 아무리 환경을 좋게 해줘도 군사 하면 싸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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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PCA 동물복지기준에 따라 운용되는 덴마크 양돈농장

 
Q.
그렇다 해도 스톨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

어쨌든 동물을 농장이라는 틀 안에서 경제적인 목적으로 키우는 한, 이상적인 동물복지 환경은 구현되기 어렵다.

임신스톨이나 분만틀 같은 경우도 단순히 경제적인 목적으로만 개발된 것이 아니다. 군사 사육 시 다툼으로부터 새끼를 밴 어미를 보호하거나, 어미로부터 갓 태어난 새끼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스톨을 ‘Maternal Fence’라고 일컫는 것이다.

미국 연구진이 ‘Free Access’ 스톨 시스템을 연구한 결과도 흥미롭다.

돈방과 스톨을 연결해두고, 돼지가 스톨에 자유로이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다. 이러한 사육환경에서 약 80%의 모돈은 스톨에 머무는 쪽을 선호한다. 소수의 힘 센 모돈들이 돈방을 독차지하고, 해코지를 피하려는 나머지 돼지들은 스톨을 ‘선택’하는 것이다.

Q. 어떤 사육형태든 장단점이 있다는 말씀은 이해된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증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양돈업계의 대응도 필요하다고 본다

양돈업계의 시선과 바깥 사회의 시선이 많이 다르다. 서로 만나서 논의하는 장이 필요하다. 서로를 멀리하기만 하면, 결국은 바깥 사회의 힘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양돈현실을 잘 모르는 여론에 업계가 끌려가서는 안 된다.

미국양돈협회가 주도하는 ‘오퍼레이션 메인 스트릿’ 프로그램이 좋은 예다.

수의학, 축산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양돈산업에 대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교육한다. 그러면서 자체적인 사육환경 개선방안도 수립해 추진한다. 양돈산업을 바라보는 사회전반의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동물복지형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필요하다. 경제적인 이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동물복지형 사육형태가 보편화되기 어렵다. 앞서 말한 덴마크의 RSPCA 인증 농가도 출하할 때 지육당 단가를 좀더 높게 쳐주기 때문에 동물복지형 사육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Q.
다른 문제로 넘어가보자. 최근 수의사처방제 처방약 확대가 주요 이슈다. 컨설팅 수의사로서 처방제로 인한 변화가 좀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처방대상약품에 대한 처방전을 발급해본 경험은 드물다. 질병문제에 따라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 적합한 약품을 추천할 때는 있지만, 처방전 발급과 약 공급 등의 절차는 아직까지 농가와 대리점 사이에서 이뤄진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처방전 전문 수의사와 결탁한 도매상이 불법적으로 처방의무 항생제를 공급하고 있다. 이를 단속해 수의사처방제 본래 취지대로 직접 진료한 수의사의 별도 처방을 받도록 하면 어떤가

수의사의 독립성은 좀더 강화될 것이라 기대한다. 컨설팅을 받는 양돈농가라면 어차피 최소 월 1회 이상 수의사가 방문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해질 일은 없다고 본다.

사실 아직도 많은 농가에서 항생제를 비타민제 마냥 상시적으로 먹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질병문제가 생기면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어 구조적으로 해결하되, 일시적인 문제를 억누르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단기적으로 항생제를 써야 함에도 말이다.

수의사를 잘 부르지 않는 농가에서 더욱 그렇다. 농가끼리 ‘이 약 먹이니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작정 써보고, 원인이야 어찌됐든 우연찮게 증상이 나아지면 그 약만 맹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Q. 외국인 노동자와 질병관리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현재 국내 양돈산업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규모가 작은 농가는 사장을 제외하면 외국인만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같은 나라 출신끼리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다. 가령 카카오톡으로 ‘우리 농장 설사 심해’ ‘이 약 좋던데’ ‘농장 냉장고에 찾아보니 그 약이 있네’ 라며 그냥 투약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조언해준 그 농가는 수의사에게 조언을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농가의 문제원인이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같은 지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휴일에 만나거나, 본국에서 보내온 음식과 물건들을 나누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질병전파의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 교육이 중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면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면서 ‘알겠다’고만 대답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합법적인 체류기간이 몇 년 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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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전에서 열린 히프라 유니버시티에서 통역에 나선 김동욱 수의사


Q.
마지막으로 양돈수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양돈수의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농장경험을 쌓기를 권한다. 질병과 약물의 이론만 알아서는 농가와 이야기할 때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현장경험을 갖춘 수의사가 중간에서 조정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농장에서 최소 9개월 정도는 연속적으로 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돈 임신부터 분만, 이유, 비육, 출하로 이어지는 한 사이클을 경험하는 것이다. 1년 4계절을 겪어 본다면 더 좋다. 본인도 수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양돈장에서 일했다.

사실 양돈장 일이 쉽지는 않다. ‘수의사’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고 양돈장의 A부터 Z까지를 경험해본다는 생각으로 임하는게 좋겠다.

꼭 양돈수의사가 아니더라도 수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소, 닭 등 여러 축종 현장을 조금씩 접해본 후 진로를 정하길 권하고 싶다. 

[인터뷰] 양돈농장으로 온 역사학자, 김동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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