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물원 동물의 복지와 환경 개선을 위해 힘쓰는 수의사 `양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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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원 등 전시 동물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법포획 돌고래(제돌이 등) 방류, 서울대공원 사육사 사망 사건, 바다 코끼리 학대 사건 등을 통해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으며, 동물원의 설립과 운영, 사육관리 등을 규정한 동물원법 제정안도 역대 최초로 발의됐습니다(장하나 의원 대표발의).

서울동물원의 경우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해 10년 이상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사육환경 개선, 긍정강화 훈련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의사 출신으로 서울동물원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양효진 수의사님도 동물원 동물의 동물행동풍부화와 사육환경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효진 수의사님을 만나 동물원 동물의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수의사가 됐는지 궁금하다. 또 수의대 시절부터 야생동물에 관심이 많았나?

개를 좋아해서 동물병원만 생각하고 수의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수의학을 공부하면서 수의학이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자연스레 동물복지에도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수의대 학생 시절부터 철원야동센터에 수활 활동을 다니고 서울동물원 동물행동풍부화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하는 등 관심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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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행동풍부화 자원봉사 활동

Q. 동물원 수의사를 꿈꾸는 수의대 학생들이 꽤 많다. 그런데 실제 그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어떻게 서울동물원에 근무하게 됐나?

졸업하고 진로고민을 하다가, 철원야생동물센터에서 몇 개월 근무했다. 그 뒤 현재 일하는 자리가 생겨서 오게 됐다.

야생동물 보전에 관해 공부하고 싶어서 부모님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택했다. 본과 4학년 때부터 졸업 후 어느 정도까지 기초과목 실험실에 나가 일을 했는데, 그 때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님도 찾아뵙고, 현재 국립생태원에 계시는 김영준 수의사님도 따라다니면서 배우고 그랬다.

노력하다 보니 동물들이 좋아지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 그러면서 동물원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됐다.

현재 근무하는 자리는 ‘큐레이터’로 나온 자리인데 내가 지원한 것이다. 나 말고 현재 큐레이터 중 수의사는 없다.

외국에는 큐레이터가 상당히 높은 직급이고 수의사인 경우도 많다. 큐레이터는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전반적인 시각도 필요하다. 전시 동물이 들어올 때는 전시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육사로 오래 일하다가 큐레이터가 되는 경우도 있다.

Q. 서울동물원에 대해 소개해 달라. 현재 동물원에 총 몇 명의 수의사가 근무하고 있나

창경원 때부터 하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 위치(과천)로 온 것은 1984년이다.

동물은 총 330종 2700여 마리가 있다. 큐레이터가 총 3명인데 동물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서울동물원에는 총 15명의 수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동물기획과에 3명, 동물복지과에 3명, 동물연구실에 2명, 나머지는 동물병원에 근무한다.

서울동물원에 근무하는 일반 수의직 분들은 서울시공무원 시험을 보고 수의직으로 들어온 분들이다. 구청, 보건환경연구원 등에도 근무할 수 있고 동물원에 있을 수도 있다. 동물원에 오래 계시는 분들도 있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분들도 있다.

Q. 큐레이터로 일하고, 동물기획과에 근무하다보니 동물치료보다는 기획이나 행정 업무를 더 하는 것 같다. 직접 맡았던 동물행동풍부화와 현재 맡고 있는 동물사 전시환경 개선 업무에 대해 소개해 달라

동물행동풍부화 업무를 3~4년 하다가 몇 개월 전부터 전시 환경 개선 업무를 하고 있다.

서울동물원의 동물행동풍부화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2005년부터는 동물행동풍부화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시작됐는데 본과 4학년 시절인 2006년에 직접 참여해 활동하기도 했다.

동물 진료보다는 이 분야가 더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동물 진료는 문제가 생긴 이후에 그것을 교정하는 일인데, 정형행동은 한 번 생기면 교정하기가 어렵다. 동물행동풍부화와 전시환경 개선, 긍정강화 훈련 등은 전시 동물에게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라 더 관심이 갔다. 원래 행동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분야 일은 사육사 분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동물사의 면적이나 환경 등에 대해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조경과 출신 분들도 함께 한다. 이 분들과 함께 노력하고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책도 찾아보고, AZA(미국수족관동물원협회) 기준 등도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해외 동물원과의 교류가 꽤 많다보니 영어가 빠르게 늘고 있다(웃음).

개선해야 할 문제들을 놓고, 동물원 내 전시환경 개선 협의체인 ‘Zoo Planner’에서 시급한 순서를 정해 순차적으로 개선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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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물원은 지난 2013년 12월, 동물행동풍부화 10년의 기록을 모아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Q. 실제 그런 노력들을 통해 동물원 환경이 개선되고 동물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내나?

내가 여기 들어올 때 꿈 중에 하나가 소동물관과 야행관 환경이 꼭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현재 소동물관은 ‘우리 숲, 우리 동물’ 관으로 개선됐다.

‘우리 숲, 우리 동물’ 관에는 호랑이, 표범, 스라노니, 늑대, 담비, 오소리, 너구니, 여우 등 8종이 있는데, 호랑이관도 개선됐으며 현재 표범사도 리모델링 중이다. 거기에다가 스컹크, 담비 등의 동물들을 전부 밖으로 빼고 실내는 교육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공간도 더 넓어졌다.

시멘트 바닥도 흙바닥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시멘트 바닥이 청소하기는 좋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 중심의 설계에서 동물 중심으로 바뀌는 중이다.

현재 반지하에 있는 야행관도 개선하기로 결정됐다. 최근에는 조류가 더 날 수 있는 공간으로 조류사를 개선해야 한다는 회의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가짜인데 진짜 나무처럼 보이는 성분이 있는데, 그런 것도 최대한 자연적으로 바꾸고 웬만하면 진짜를 쓰려고 한다. 또 한쪽에서만 보이는 ‘몰래 관람창’을 설치하거나 최대한 나무 등으로 가려서 동물이 관람객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사람이 동물이 사는 곳에 살짝 들어가서 보는 것이지, 사람이 보기 위해서 동물들을 전시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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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집 반려견의 복지에는 많이 신경을 못 써준 것 같더라. 그래서 패트병에 구멍을 뚫어서 사료를 넣어주는 등 노력하고 있다(웃음).

그렇게 우리집 반려견을 위해 반려견 용으로 나온 동물행동풍부 장치를 알아보다가, 그것을 고안하여 야생동물에 적용하여 실제 효과를 본 적도 있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의 행동풍부화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고양이가 박스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호랑이도 종이 박스를 주면 그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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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꽃, 과일 모빌, 퍼즐 먹이통, 스크래치 기구, 얼음 속 먹이, 드럼통, 구멍 뚫린 주머니 안에 먹이 넣어주기 등이 동물행동풍부화에 이용된다.

 Q. 동물행동풍부화, 전시환경 개선 등을 보면 동물원 동물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것 같다. 전시동물 복지에서 우리나라의 현재 수준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어떠할까?

해외의 좋은 동물원에는 굉장히 넓은 공간에 동물들이 있기 때문에 동물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관람객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관람객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과거 창경원 시절에는 침팬지에게 술도 주고 담배도 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동물원에서 어떻게 관람 문화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관람객들은 따라오는 것 같다.

서울동물원은 현재 먹이주기 행사를 없애고 동물원에서는 절대 먹을 것을 동물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러자, 실제 먹이를 주는 행동이 거의 사라졌다. 동물원 동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관람객과 시민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떻게 전시 환경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관람객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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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물원 존폐여부를 두고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동물원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실제 동물원을 없앤 나라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아직 어렵다고 생각한다. 동물원은 종 보전과 교육이라는 순기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 중인) 동물원법이 먼저 생겨야 되고, 동물원 환경이 개선되는 것이 우선이다. 동물보호단체들도 동물원 폐지를 주장하기보다 이런 부분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Q. 일할 때 어려움은 없나

하이힐을 신고 빌딩 숲에서 일하는 것보다 편한 옷을 입고 자연에서 일하는 게 나와 맞는 것 같아서 좋다. 물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서 일을 해야 하는 등 힘든 점도 있지만, 동물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개인적인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예전에는 야생동물계의 실력자가 되고 싶었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해 기여할 수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요즘에도 틈틈이 지방 동물원들을 둘러보고 있고, 해외에 나가서도 동물원·수족관만 보는 것 같다. 동물원이 동물복지·보전을 위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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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 수의사님은 코끼리의 긍정강화훈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Q. 마지막으로 동료 선후배 수의사들과 수의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야생동물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현실성을 고려해 많이 포기하더라. 그런데 요즘에는 야생동물구조센터도 늘어나고 있고, 국립야생동물보건원도 건립이 추진되는 등 진출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야생동물 분야에서 활동할 게 많다.

10개 수의과대학에 야생동물 관련 교수님들도 늘어야 될 것 같고, 커리큘럼도 강화되어야 할 것 같다.

수의학과를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의 선택이다. 진로 결정전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의대 학생들 수의대를 다닐 때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나도 어릴 때는 동물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동물원과 야생동물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대학시절 다양한 경험을 하면 수의학적인 인생 뿐 아니라 자신의 전체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무 안정적인 것만 생각하지 말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 내가 30살일 때 20살을 부러워했는데, 그 당시 40세이던 수의사 선배는 오히려 나를 부러워했다. 그 선배님은 한국에서 동물병원을 오래하다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미국으로 야생동물 공부를 하러 떠났다.

뭐를 하고자 할 때 안 되는 이유부터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을 따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되는 방향으로 할 것이냐를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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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물원 동물의 복지와 환경 개선을 위해 힘쓰는 수의사 `양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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