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력이 부족한 수의사 탓인가, 동료의식이 없는 수의사 잘못인가?

등록 : 2022.05.13 08:18:48   수정 : 2022.05.13 12:26:59 데일리벳 관리자

얼마 전 제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6년제 출신 후배 수의사들이 실력이 뛰어나고 똑똑하다고 인정하시면서 최근 겪은 일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 원장의 실력을 높게 평가해 간혹 환자를 보내왔는데, 해당 병원 원장이 “수의사가 이런 걸 모를 수는 없는데”라는 식으로 자신을 평가절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진단이 완전히 잘못됐거나 엉터리였다면 그래도 납득할 수 있지만, 진단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환자를 보냈는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비슷한 일들이 동물병원 업계에서 종종 확인됩니다. 다른 수의사의 진단, 수술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일이죠.

심지어 “다른 동물병원에서 1년 내내 심장사상충 예방을 하라고 했어요”라는 보호자의 말에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여름철에만 예방하면 돼요. 내가 20년 경력이 있는데, 여름에만 하면 돼. 그 수의사가 돈 벌려고 했네”라고 잘못된 정보를 당당히 얘기하는 수의사도 있었습니다.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 양심적인 수의사로 포지셔닝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은 쉽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실력은 자연스레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진정으로 실력이 있다면 말이죠.

어쨌든 원장님과의 통화를 끝내고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력이 부족한 수의사가 잘못한 걸까, 동료의식 없이 다른 수의사를 평가절하한 수의사가 잘못한 것일까?’

굳이 잘잘못을 따져보자면, 실력이 부족한 수의사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실력이 뛰어났다면 그런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개인의 부족함만 탓하기에는 급격하게 발전한 수의학과 높아진 수의대 커트라인, 4년제와 6년제의 차이, 의료전달체계의 법적 기준이 없는 수의계 등 여러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해볼 만한 자료가 있습니다.

수의윤리학, Veterinary Medical Ethics 등 수의윤리 관련 책에는 수의사가 임상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딜레마가 소개됩니다. 그중 하나가 같이 일하는 동료나 다른 병원에서 의뢰된 케이스에서 ‘수의사의 오진·실수’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입니다.

보호자에게 있는 그대로 다른 수의사의 실수를 말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이 사안을 묻어두는 것이 옳을까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보호자와 다른 수의사의 갈등(의료소송)을 방지할 수 있고, 좁디좁은 수의계에서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자를 속이고 기만했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추가로 거짓말을 해야 할 수도 있고, 특히 보호자가 진실을 알게 되면 나까지 신뢰를 잃을 수 있죠.

Veterinary Medical Ethics의 저자 버나드 롤링(Bernard E. Rollin)은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진실성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수의사는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 수의사들은 동료 수의사를 교육할 의무가 있으며,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실수한 수의사에게 직접 말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보호자에게 다른 수의사의 잘못을 직접 언급하기보다, 다른 수의사에게 연락해서 실수한 수의사가 직접 보호자에게 사과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배려하라는 것이죠.

해당 수의사도 보호자에게 사과하고 보상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게 버나드 롤링의 판단입니다.

물론, 고의적,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수의사에게는 이런 배려를 해서는 안 됩니다. 수의사회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조처해야죠.

대한수의사회 ‘수의사의 신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동료 수의사를 비방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 윤리도덕관이 부족함을 사회에 알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수의사 동업자간의 비방은 엄격히 삼가야 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정답은 없을 겁니다. 수의사 신조가 구시대적인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딜레마 상황에서 수의사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는 것은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수의사 개개인의 행동과 말 하나가 수의사 전체에 대한 사회의 신임 또는 불신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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