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잘 모르면서 무슨 개선을..’ 동물의료 데이터 지표가 필요하다

동물의료 현황 가늠할 지표·데이터 생산체계 개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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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꿀벌집단폐사 대책토론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당국자인 정재환 축산경영과장은 “양봉정책이 어려운 점은 기초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꿀벌 대량소실의 대책을 세우려 해도, 농가를 도울 지원사업 예산을 마련하려고 해도 구체적인 숫자가 필요한데, 객관적 데이터가 부족하다 보니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해당 토론회를 주최한 이원택 국회의원도 ‘양봉산업에 대한 기초자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동물의료정책을 떠올리게 된다. 진료부 공개를 의무화할지, 특정 진료의 수가를 통일할지를 놓고 따지기 전에 그 영향을 가늠할 기초 자료는 있는가?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 동물의료개선 TF를 구성했다. 연말까지 동물의료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목표다. 표준수가제, 수의료분쟁 조정, 진료 투명성 강화, 전문의 제도, 1·2차병원 체계 도입 등이 키워드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펫보험 활성화 TF를 운영하고 있다. 맞춤형 펫보험 활성화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2022년 기준 국내 펫보험 시장은 287억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산한 2022년 반려동물병원 진료매출(1조7394억원)과 비교하면 1.6% 수준에 그친다.

구체적인 액수라도 있는 진료비나 펫보험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동물의료’ 자체가 개선됐는지 퇴보했는지를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

동물의료를 개선하겠다는 여러 정책을 개발하기에 앞서, 동물의료의 현황을 평가할 지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정책실행 전후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그 지표에는 동물의 건강이 반영되어야 한다. 동물의료를 단순히 보호자의 지갑사정 문제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병원비가 부담된다’는 설문조사 응답만 있을 뿐, 치료비를 실제로 얼마나 지출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는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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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개·고양이 1,500만여마리의 데이터로 추산한 기대수명
(자료 : 마즈펫케어)

가령 기대수명은 어떨까. 기대수명은 인구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1970년 62.3세였던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1년 83.6세로 크게 늘었다.

동물도 기대수명이 늘어난다면 동물의 건강상태가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건강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다양하겠지만 동물의료가 차지하는 부분이 클 수밖에 없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동물의료가 개선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의 기대수명을 측정할 수 있을까? 동물등록제가 의무화된 개로만 따져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기대수명을 산출하려면 연령별 사망률이 필요한데, 연령별로 몇 마리의 개가 있는지, 그 중 몇 마리가 죽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2021년 접수된 등록견 사망신고는 6만3천여건에 그친다. 이것도 보호자가 스스로 신고하는데 의존하고 있다. 개별 동물병원도 고객관리 차원에서 차트에 죽은 환축을 분류하지만, 국가 전반적인 통계작성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미국에서는 마즈펫케어가 최근 미국의 개 1329만마리와 고양이 239만마리를 분석한 기대수명 연구를 발표했다. 하나의 글로벌기업이 동물병원 1,152개를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본지 2023년 4월 20일자 ‘1569만 마리 조사해보니..반려견 기대수명 12.69살, 반려묘 11.18살’ 참고).

사람의 건강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는 여럿이다. 그 중에도 대표적인 지표는 핵심지표를 엄선한 ‘국가발전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국가발전지표의 ‘건강’ 분야에 ▲기대수명 ▲1인당 의료기관 방문횟수 ▲경상의료비비율(GDP대비) ▲비만율 ▲암생존율 ▲주관적 건강상태 ▲우울감경험률 ▲월간폭음률 ▲현재흡연율 등 9개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지표에서는 더 많다. ‘건강’ 분야만 26개 지표로 구성된다. 결핵 신환자율이나 사인별 사망률, 어린이 예방접종률 등 보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다.

이중에서는 반려동물의 동물의료현황을 가늠하는데도 주요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당장 계산해낼 수 있는 데이터도, 그러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기반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자료 : 통계청, 한국의 사회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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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려동물의 기대수명은 얼마나 되나? 알 수 없다.

가장 많이 걸리는 질병은 무엇인가? 알 수 없다.

주요 사인별 사망률은? 알 수 없다.

보호자에게 가장 큰 금액적 부담을 주는 질병은 무엇인가? 알 수 없다.

생애주기에 걸쳐 대략 어느 정도의 치료비를 지출하나? 알 수 없다.

심장병을 앓는 반려견을 치료할 때도 환축의 외형이나 보호자의 말에만 의존할 수 없다.

NT-proBNP나 Troponin I, 엑스레이 검사상 심장의 크기 등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예후를 가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터리 진료가 된다.

동물의료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할 때도 보험업계의 요구나 보호자의 말에만 의존할 수 없다.

동물의 건강과 동물의료현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무엇이 필요한지, 그 지표를 계산해내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해나갈지에 대한 청사진이 포함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참여의지를 가진 동물병원이라도 모아 실증사업을 벌이거나, 동물의 건강지표를 개발할 수 있는 연구라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먹구구식 정책이 된다.

[기자수첩] ‘잘 모르면서 무슨 개선을..’ 동물의료 데이터 지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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