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서울대 신임 교수 “수의영양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정화 수의영양학 신임 교수를 만나다
동물의 건강에 영양학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의학 교육과 연구 현장에서도 영양학적 접근이 한층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은 올해 이정화 교수를 신임 수의영양학 교수로 임용했습니다. 서울대가 수의영양학 전임교원을 채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정화 교수(사진)를 학생기자단이 만나 수의영양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임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정화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수의내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임상 수의사와 연구자로 지내왔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더 발전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최근 몇 년간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후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종양 면역 연구를 하면서 대사 면역학을 접하여 영양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어 제가 겪어온 경험을 교육과 진로에 연결할 수 있게 된 점이 뜻깊습니다.
모교에 교수로 부임하시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학부 시절에는 영양학 수업이 없어 임상 현장에서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교수로서 후배들이 임상 현장에 나가기 전 필요한 지식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수의내과학을 전공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입학할 때부터 연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공부를 하면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을 거쳐 임상과 직접 연결되는 내과학에 매료되었고, 무엇보다 생체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대학원 시절 반려동물 영양학 아틀라스 출판에도 참여하셨는데, 그때부터 영양학의 필요성을 느끼셨나요?
진료하다 보면 보호자분들이 영양에 대해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당뇨로 내원한 환자 보호자분이 사료 대신 직접 식재료를 준비해 급여하고 계셨던 경우였어요. 정성은 크셨지만 정확한 칼로리인지를 알기 어려워 고민하시더라고요. 그때 밤새 찾아보면서 어떻게 급여하면 좋을지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영양학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국내에서 시작해 해외로까지 연구를 이어가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해외에 가게 된 건 결국 제가 연구하고 싶은 테마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장기간 생활한 건 처음이라 언어나 문화 차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죠. 그래도 좋은 랩 동료들이 있었고, 스스로도 조언을 많이 구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오클라호마대학교 보건과학센터는 연구 환경이 잘 갖춰져 있고 협업 분위기도 활발해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한인 커뮤니티나 포닥 그룹 활동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서울대 수의대 출신 선배님들이 계셔서 든든했고, ‘좋은 선배’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수의 길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임상과 비임상을 모두 경험하신 점이 학생 교육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20대 때는 사실 저 자신을 갖추는 데 더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대학원 시절에 로테이션을 도는 후배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아는 걸 나눴을 때 그게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또 나누려면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쌓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렇게 제 성장을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게 서로에게 윈윈이 된다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교수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임상과 연구를 모두 경험했던 과정도 지금의 교육관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임상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면서 느낀 고민, 그리고 연구실에서 새로운 지식을 쌓으면서 배운 태도는 성격이 다르지만 서로 보완적이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고민과 진로 선택에 대한 시각까지 함께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이 앞으로 제가 교육자로서 줄 수 있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양학 공부 자료가 있을까요?
무료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책이 있는데, Mark Morris의 Small Animal Clinical Nutrition handbook이 대표적입니다. 또 WSAVA Global Nutrition Toolkit에는 BCS 평가나 사료 선택 관련 기초 자료가 잘 정리돼 있습니다. 아울러 National Academies의 Nutrient Requirements of Dogs and Cats도 동물별로 필요한 영양소 권장량을 과학적으로 정리한 지침서라 참고할 만합니다.
현재 연구하고 계신 분야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지금은 연구실을 새로 꾸리고 있어서 차근차근 기반을 만드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하나는 항암 면역과 정밀영양(precision nutrition)입니다. 암 환자에서 면역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고 그 과정에서 영양 대사나 영양 공급이 어떤 영향을 하는지 집중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오가노이드 모델을 활용해 실제 종양 환경을 재현하고, 대사체 분석(metabolomics)을 통해 어떤 영양소와 대사 경로가 면역 세포 기능에 관여하는지 규명하려 합니다.
또 다른 축은 내과학적 질환과 영양학의 연결입니다. 비만이나 당 조절 같은 대사 질환은 임상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문제인데, 영양학적 개입이 질환 관리와 치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임상과 연구를 연결하면서 수의영양학이 실제 진료에서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연구나 학업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힘들었던 순간은 정말 많았지만(웃음), 대학원 시절 몇 달 동안 결과가 나오지 않아 한 실험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때는 왜 안 되는지 몰라서 더 답답했던 것 같아요. 당시엔 정말 힘들었지만, 나중에 포닥 생활을 하면서 연구라는 게 원래 그런 과정을 포함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괜히 붙잡고 있기보다 원인을 차분하게 파악하고 방향을 바꾸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많이 배웠습니다.
학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학부 때 아주 치열하게 살았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간을 조금 더 잘 활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활동은 유기견 보호소 봉사 동아리(서울대학교 나눔회) 활동과 도쿄대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병원과 실험실을 직접 경험했던 거예요. 후배들에게는 학교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다양한 현장과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의사도 사회의 일원이니까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수의영양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수의영양전문의·인증의 제도 도입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양학 분야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진료가 점점 전문화되고 체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영양학적인 수요가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아요. 보호자분들도 이제는 반려동물을 어떻게 먹이는 게 좋은지, 또 아플 때 어떤 영양 관리가 필요한지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에 바탕해서 알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래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진료 시스템과 수의사들 간의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영양학이 임상과 연구에서 점점 더 중요한 축으로 발전해 나갈 거라 믿습니다.
앞으로 서울대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수의영양학 교육 커리큘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테마는 내가 학부생 때 듣고 싶었던 강의입니다. 임상 현장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의사들이 영양학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동물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는 수의대에서만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에게도 큰 기회라고 봅니다. 앞으로 종양·대사 면역학과 수의영양학을 잘 융합해서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싶습니다.
아울러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서 영양학 진료도 새로 시작합니다. 내과 안에 영양학 진료가 생길 예정이고 환자랑 보호자를 직접 만나면서 임상에서 어떤 부분을 필요로 하는지 직접 느껴볼 예정입니다.
선배 수의사이자 교수님으로서,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저도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 “이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임상과 연구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만큼, 지금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을 학생들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후회 없는 선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여건이 되는 한 직접 부딪혀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박나린 기자 022182@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