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교육학회와 함께하는 추천도서⑪] 철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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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이야기 1,2 (지은이 상수탕 / 출판사 돌베개)

추천도서 서평을 부탁받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책보다는 각종 미디어에 익숙한 터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한참을 미루던 때 친한 동료 교수가 책장에서 책 두 권을 뽑아 주셨다. “한교수는 좋아할 것 같은데..그런데 만화책이야.” 금방 읽기는 하겠다 싶어 반신반의, 호기심에 시작했다.

*   *   *   *

철수이야기. 소년과 리트리버의 우정. 뻔한 이야기 일 것 같았다.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다가 리트리버가 죽겠지. 눈물 한바탕 쏟겠구만.

이런 냉소적인 마음으로 한장씩 읽어내려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년과 리트리버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걱정반 기대반이었던 신파는 없었다. 책은 어린 소년 해수와 유년기의 단짝 친구였던 리트리버 철수의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하게, 하지만 따뜻하게 그리고 있었다.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시골 할머니집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된 해수. 조부모의 사랑은 듬뿍 받았지만, 한편으로 외롭고 허전할 수밖에 없는 빈자리를 철수가 넘치게 채워 주었다.

남의 인삼밭까지 다 파헤쳐 먹는 먹보지만, 해수가 좋아하는 딸기를 다람쥐가 훔쳐먹지 못하게 밤새 지켜주고. 리트리버답지 않게 물을 싫어하지만, 해수가 물에 빠진 것 같이 장난칠때마다 혼비백산해서 물에 뛰어들어오고.

동네에서 유명한 사나운 개 독구를 볼때마다 눈도 못 마주치다가도, 실제로 독구가 해수를 공격하려 했을때는 세상 무서운 투견으로 돌변해서 독구를 몰아내고.

책은 소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철수와 해수가 어떻게 이별했는지. 철수는 어떻게 죽은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심심하게, 어른이 된 해수가 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러 고향으로 돌아와서.. 딸의 손을 잡고 철수와 매일 다니던 길을 돌아보며 책은 끝난다.

 

책을 덮고 그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도 없고, 눈물을 쥐어짜는 장면도 없는데, 계속 먹먹했다. 뭔가 마음을 돌로 누르는 것 같이.

내 어린 시절 나에게도 있었던 철수와 해수의 이야기. 해수와 철수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 것처럼, 나와 내 어린시절 반려견의 시간도 다르게 흘러갔다. 나보다 5배씩 빠르게 지나가는 그들의 시간. 내가 세상의 중심으로 나갈 때 내 반려견도 철수처럼 늙어버린 몸으로 나만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세상의 재미에 빠져서 그 외로움을 외면한 것 같아서 새삼 마음이 저려왔다.

계속 해수의 시선으로 그려지던 만화는 마지막에 한번 철수의 시선으로 말한다. 아기 리트리버가 처음 꼬맹이를 만났을 때의 냄새. 그 아이 곁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소홀해진 아이를 기다리면서도 놓지 않는 유대감. 책은 반려견들이 우리 곁에서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지를 전하며 맺는다.

필자는 수의응급중환자의학과의 교수다. 매일같이 응급환자가 오고, 사경을 헤매는 많은 반려동물들과 만난다.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일같이 공부하고,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그것 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반려동물들과 가족들이 만들어 온 관계.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그들의 사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들. 그를 외면하고 단순히 최고의 지식과 의술만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 감정에 끌려 다녀서도 안 되지만 그들의 세월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좋은 수의사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또는 그들이 행복하게 이별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아닐까.

한현정 교수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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