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⑪-1] KOPRI,수의사가 남극에 간 이유:최성준 교수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 최성준 교수 인터뷰 1탄

등록 : 2021.02.17 13:09:34   수정 : 2021.02.17 13:20:38 윤서현 기자 dbstjgus981218@gmail.com

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열한 번째 키워드 알파벳 K는 KOPRI(극지연구소)입니다.

극지연구소(KOPRI, Korea Polar Research Institute)는 극지의 정치∙경제적 중요성 증대에 따른 국가 극지 활동의 확대와 국제 수준의 극지 연구 전문기관으로써의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2004년 한국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부설 기관으로 설립된 극지연구 전문기관이죠. 남극 세종과학기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북극 다산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모두 극지연구소의 인프라입니다.

출처: 극지연구소(kopri.re.kr)

수의사의 진로를 흔히 임상과 비임상으로 분류하지만, 최근 비임상 분야에서도 일반적인 연구활동 이외에 다양한 분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수의사의 극지 방문 및 연구는 그중에서도 다소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수의사가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일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번 주제를 위해 KOPRI와 함께 일하고자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를 다녀온 수의사를 만났습니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최성준 교수님(충북대학교 수의과대학 05학번)이 그 주인공입니다.

인터뷰는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1편 – 수의사가 남극에 간 이유, 2편 – 기생충학자로서의 삶).

Q1. 2020년도 2학기부터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에 교수님으로 부임하셨습니다.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축하드립니다.

A: 보통 박사 후 연수로 인한 기간이 가장 고달프고 힘든 기간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거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정말 수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가게 되어 조금 아쉽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이동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으로서는 다시 수의대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의대만의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웃음)

Q2. 간단한 소개와 현재 하시는 일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수의대를 졸업한 수의사로서 수의학과 의학 양쪽에서, 그리고 기생충학자로서 기생충을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주된 분야는 야생동물의 기생충입니다. 야생동물의 기생충과 기생충이 사람과 다른 동물들에게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One-health라는 개념에 아주 적합한 주제 중의 하나가 기생충인데 딱 제 위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의대에 있으면서 동물이 사람에게 문제를 끼칠 수 있는 연구를 하다 보니 결국에는 동물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하고 사람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하고 그 중간을 잇는 기생충이라는 매개체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Q3. KOPRI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남극에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KOPRI는 말 그대로 극지연구소, 우리나라 극지연구를 주로 주관하는 기관이고, 협약 등을 포함해 극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전담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흔히 ‘남극’하면 펭귄, ‘북극’하면 북극곰처럼 각 극지를 대표하는 동물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극지를 구성하는 생태계인 무척추동물부터 미생물, 물이나 염기, 돌, 바람 등 거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총괄해서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극지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한국이 극지 연구를 하기 위한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죠. 크게 연구와 인프라 운영, 이 두 가지 기능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장 주된 업무라고 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제가 남극에 가게 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하고 있는 팀이 있었는데 2011~12년쯤에 그곳에 있던 연구원이 펭귄으로부터 배출된 기생충을 발견합니다. 쓰일 곳이 있을까 싶어 일단 확보 후 보관해 놓았고, 마침 세종기지를 방문했던 인하대학교의 한 교수님이 발견하시고는 당시 기생충 일을 하고 계셨던 제 지도교수님께 연락을 해 왔어요. 처음에는 “남극에도 기생충이 있는데 한 번 볼래요?” 정도로 시료 의뢰를 먼저 받고 기생충 확인을 해준 것뿐이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극지연구소에서 기생충도 연구 테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후에 파견요청이 왔습니다. 그렇게 남극을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Q4. 남극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셨나요?

우선 2013~2014년도에 세종기지에 기생충 연구를 하러 갔었고, 2014년 10월에 2주 정도 장보고 기지에 펭귄과 물범 연구를 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2018년 2월에는 기생충 연구 겸 식생조사 연구 보조를 위해 방문하는 등 총 3차례 남극에 갔었습니다.

주로 했던 일은 기생충 연구였지만, 남극이라는 공간 자체가 굉장히 협소하고 소수의 정해진 사람들 밖에 갈 수 없는 곳이라 가서 딱 내 일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연계를 해서 같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죠. 가장 주된 일은 부검 또는 기생충을 확보해서 어떤 기생충들이 감염되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일이었고, 그 외에는 다른 연구원들이 연구 시료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펭귄 보정, 마릿수 측정 등 펭귄 연구의 보조적인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Q5. 지금까지 남극에 갔었던 수의사가 또 있을까요?

A: 해외는 여러 명이 있고 국내에는 단 3명 만 남극에 방문한 사례가 있습니다. 처음으로 남극에 가셨던 분은 2012~2013년 서울대학교 실험동물학교실 박재학 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이 수의사로서 처음으로 왔다 가시고 그다음 해에 제가 세종기지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 뒤로 2번에 걸쳐 장보고 기지를 방문하였지요. 그 사이인 2017~2018년에 펭귄의 행동 분석 연구를 위해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님이 다녀가시기도 했습니다.

외국 수의사들은 연구하는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미국 쪽에서 기각류 연구하는 분들이 좀 있었습니다. 남극 시료를 연구한다고 해서 전부 방문하는 것은 아니기에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지만, 아르헨티나와 칠레 같은 경우 지리상 가까이 있어서인지 비교적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6. 혹시 북극에도 수의사 업무가 있을까요?

A: 북극은 남극과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남극은 주인이 있는 땅이 아니지만 북극 지역은 대부분 일정 국가의 영역 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연구하는 다산기지는 노르웨이 땅이고, 다른 연구 지역으로는 그린란드가 있는 등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제한된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수의 업무가 필요하다면 우리나라의 수의사가 파견되기보다 해당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도 방법이겠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북극에서도 수의사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극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보면, 요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물범이나 바다사자 같은 기각류 연구인데, 기각류 연구의 관건 중의 하나가 동물의 보정입니다. 펭귄 같은 경우는 가서 잡으면 그만입니다. 가장 큰 펭귄인 황제펭귄도 일반 성인 남성이 그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런데, 기각류는 적당한 사이즈 되는 애들이 3m에 400kg이 넘어갑니다. 엄청나게 큰 움직이는 슬라임 느낌이에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계획이나 준비 없이 연구를 시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극지연구소에서 전문적인 기각류 연구자를 채용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수의 업무들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7. 남극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셨다면?

A: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이 정말 많습니다. 남극을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주위를 한번 크게 돌아주는 ‘세종 크루즈’라는 보트가 있는데, 그때 보았던 Leopard seal이 빙산 위에 올라가 있는 장면, 빙하가 멋있게 떨어지는 장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나네요. 한번은 섬 조사 중 고래가 내 바로 앞으로 굉장히 가깝게 나온 적이 있었는데, 세종기지에서 고래는 평상시에도 그냥 돌아다니는 게 보일 정도로 흔하지만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쇄빙선인 아라온호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오로라를 처음 보기도 했었습니다.

개인적인 임팩트는 남극에 있던 2월 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항공기와 연구 일정상 남극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기정사실이었어요. 남극은 고립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생존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설비, 중장비, 전기, 보트 운전, 안전요원, 요리사 등 파견 대원들 각각의 특기들이 있습니다. 당시 기계 설비하는 분이 뚝딱뚝딱 선반을 만들고 사람들이 제사상을 차려주어 남극에서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뽑아 놓고 조문객들을 받았었습니다. 자정 넘어서까지 조문객들을 받고 슬픔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처: 어린 (물고기 비늘) Daum 웹툰

재밌었던 일도 굉장히 많아요. 세종기지에 예술인들이 탐방을 온 적이 있는데 영화 <은교>의 정지우 감독, 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 밴드 ‘못’의 이이언 씨, 소설가 천운영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도 너무 좋았습니다. 요새 윤태호 작가의 남극을 주제로 한 신작 웹툰에서 함께 갔던 사람들의 모습과 제 모습이 나오는 것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또 한 번씩 눈이 정말 많이 올 때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당시 겨울왕국이 개봉했을 때였어요. 올라프를 만들어 놓고 당근이 없어서 고구마를 꽂아 놓는 등 남극에서 소소한 이벤트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Q8. 남극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들도 있었을까요?

현미경 같은 장비를 들고 갈 수 없어서 연구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선에서 연구를 해야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것만 제외하고는 다행히 시설적으로 크게 힘들었던 일은 없었습니다.

기생충 연구는 시료의 상태가 어떤가에 따라 차이가 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고기의 시료를 확보했을 때 유전자 등을 연구한다면 얼려 놓은 뒤 한국에 가져가서 연구할 수 있지만, 기생충은 그게 안 됩니다. 기생충은 죽는 순간부터 상태가 계속 안 좋아져 형태가 바뀔 수도 있고, 썩을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냉동시키는 것 또한 기생충의 형태를 파괴시키지요. 그렇기 때문에 숙주의 확보가 되면 기생충 검출이 끝날 때까지 쉴 수가 없습니다. 하룻밤에 물고기를 40마리 부검한 적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제한된 가운데 가능한 많은 것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항상 촉박해서 아쉬웠습니다.

한번은 야외에서 마취해야 할 일이 있어 주사기를 꺼내니까 영하 20도에서 얼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주사기가 안 눌려서 결국 못하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음 시간에 핫팩 등을 준비해 갔어요(웃음). 아무도 시도해본 사람이 없어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기생충 연구자들이나 수의사들만 보다가 다른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양성을 느낄 수 있었고, 생각이 트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남극은 날씨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기 때문에 들어가기부터 굉장히 어렵습니다. 첫날 칠레에 도착하면 다음 날 아침부터 매일 날씨를 보고 계속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새벽 5시쯤 남극 날씨 상황을 보고 괜찮으면 출발, 아니면 못 들어갑니다. 날씨가 괜찮으면 하루 만에도 들어갈 수 있지만 아예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보고기지는 활주로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오려면 기지 앞에 얼음이 평탄하게 얼어붙은 해빙 위에 활주로를 닦고 비행기가 그 위로 내려야 하는데 1, 2월에는 남극의 얼음이 녹아서 활주로를 못 씁니다. 그때는 배로 갔다가 배로 나오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거죠. 문제는 얼음이 녹았다가 3월 중순쯤 되면 다시 얼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쇄빙선이라고 모든 얼음을 부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음이 너무 두껍게 얼면 남극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두가 갇혀버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시기를 보고 함장이 매일 날씨, 온도, 바다 상황 등을 모니터링하며 결단을 내립니다. 아직까지 갇힌 적은 없지만 다들 언제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남극일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많이 말하고 있어요.

2편 – [수의학 A to Z⑪-2] KOPRI,기생충학자로서의 삶:최성준 교수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