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제대로 봐주신 거 맞아요?!”
진료실 문이 열리고 보호자가 들어오자마자 쏟아내는 말. 목소리엔 분노가 실려 있고 눈빛엔 불신이 담겨 있다. 환자의 호전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거나, 입원 기간이 길어지거나, 진료비가 예상을 넘었을 때. 이유는 다양하지만 감정이 격해진 보호자 앞에 서는 순간은 어떤 수의사에게나 무겁다.
1부(바로가기)에서 이야기했듯, 보호자가 진짜 원하는 건 치료 결과만이 아니다. 신뢰와 안심이다. 그런데 그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보호자의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오늘은 그 순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화난 보호자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
보호자가 목소리를 높일 때 수의사의 본능적인 반응은 방어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같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 방어 본능은 자연스럽게 설명과 해명으로 이어진다. “이 케이스는 원래 예후가…”, “사전에 말씀드렸듯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다.
감정이 폭발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논리적 설명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은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기저에는 무엇보다 자신의 아픈 몸을 아무것도 아닌 듯이 가볍게 여기지 않길 바라는 속마음이 있다. 자신의 고통을 진지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했다.
진료실도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치료 경과가 기대만큼 좋지 않을 때, 보호자에게 그 동물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다. 가족이다. 가족이 아픈데 마음이 급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 그 급한 마음이 분노로 표출될 때 보호자가 진짜 요청하는 건, “내 마음이 이만큼 다급하다는 걸 알아달라”는 것이다.
수의사가 흔히 하는 실수, 충조평판
정혜신은 공감을 가로막는 네 가지 반응을 ‘충조평판’이라고 이름 붙였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이 네 가지만 안 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라고 했다.
수의사가 보호자의 격한 감정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꺼내는 말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이 네 가지 안에 들어간다.
“다른 병원에서 봤으면 더 나빴을 수 있어요” (평가)
“감정적으로 반응하시면 대화가 어렵습니다” (판단)
“이렇게 하시는 게 좋겠어요” (조언)
“다음부터는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오세요” (충고)
객관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보호자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은 자기 존재가 주목받고 인정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합리적 사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아무리 옳은 말도 벽에 부딪힌다.
그러면 뭘 해야 하는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먼저 듣는 것이다. 보호자가 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긴 감정을 듣는 것이다.
“많이 걱정되셨겠어요”,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졸이셨을까요.” 이 한마디가 논리적 설명 열 마디보다 강하다. 보호자의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 먼저 이루어져야, 그다음의 의학적 설명이 비로소 귀에 들어간다.
수피의 가르침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세 개의 문을 통과하게 하라. 첫째, 그 말이 사실인가. 둘째, 그 말이 필요한가. 셋째, 그 말이 따뜻한가.” 진료실에서 보호자에게 건네는 모든 말에 이 세 개의 문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사실이어도 필요하지 않은 말, 필요해도 따뜻하지 않은 말은 지금 이 순간엔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세 개의 문을 모두 통과하는 말 한마디가 남을 때, 그 말이 비로소 보호자의 마음에 가닿는다.
갈등 뒤가 진짜다
갈등이 생긴 뒤가 진짜다. 화가 난 보호자가 돌아간 뒤 “이상한 보호자”로 치부하고 넘기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뒤 전화 한 통을 넣어 환자의 경과를 물으며 보호자의 마음을 다시 한번 살핀다면, 그 관계는 오히려 갈등 이전보다 단단해질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못했다. 개원 시절 화난 보호자 앞에서 방어적으로 반응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억울하고 마음이 급해 해명부터 하려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 적도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 순간 보호자에게 필요했던 건 내 해명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알겠다”는 확인이었다는 것을.
양희은은 에세이 《그럴 수 있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되지!’를 ‘그럴 수 있어!’로 바꾸면 상황은 미워해도 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지는 않게 되더라.” 당장 머리로는 납득되지 않더라도, 일단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 판단하지 마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화난 보호자의 신발을 잠시 신어보면 그 감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수의사와 보호자는 한 팀
수의사도 힘들고 보호자도 힘들다. 수의사는 매일 생사의 결정 앞에 서고, 보호자는 아픈 가족 앞에서 무력하다. 양쪽 다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다.
수의사와 보호자는 적이 아니다, 한 팀이다. 반려동물의 건강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사람들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 사실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면, 이기려는 마음 대신 다른 선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료실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보호자가 격해질 때 수의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잠시 멈추는 것이다. 설명과 해명을 잠시 멈추고 보호자의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주는 것. 그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이기려 하지 말자. 이기면 논쟁에서는 승리하지만 관계에서는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