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31] 경남 도립 가축병원 초대원장 `박봉조` 수의사

등록 : 2018.12.26 11:51:20   수정 : 2018.12.26 11:51:20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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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31. 박봉조(朴鳳祚, 1923~2014). 경남보건후생국 수의과·부산시 방역과 근무, 경상남도 도립 가축병원 초대원장, 동물검역소 검역계장, 부산시 가축보건소장, 부산시수의사회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1923년 5월 13일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약사리(현 울산광역시 중구 약사동)에서 출생하였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현 코죠[鴻城]중학교(1936. 4.~1938. 3.)를 졸업하고 야마구치 현립농업학교 축산과(1938. 4.~1941. 3.)와 제2부(현 수의과)를 졸업(1941. 4.~1943. 3.)하였다. 졸업 후 일본 농림성 수역조사소(1943. 4.~1945. 9.)에서 근무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공직을 부산에서 시작했으며 안양 가축위생연구소 재직 4년을 제외하면 모든 공직을 부산에서 수행하고 정년퇴임 하였으니 부산이 제2의 고향이다. 처음에는 경남보건후생국 수의과 겸 부산시 방역과(1946. 7. 15.~1947. 3. 14.) 기수로 채용됐다. 당시(미 군정) 광견병이 발생하였는데 환견으로 추정되는 방견에 대한 발포로 사람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경상남도 수의고문관 매디슨(Madison) 소령의 적극적 지원 아래 부산시 보수동1가 95번지에 경상남도 도립 가축병원을 설립하는 직제가 공포됐다.

1947년 2월에 도립 가축병원의 업무가 개시되었는데 당시 도에 근무하고 있던 그가 초대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개인이 가축병원을 개원하는 경우가 아주 드문 시절에 도립 가축병원이 설립되었으며, 방역 이외의 진료대상 동물은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말, 미국인들의 애완견, 한국의 토종견, 돼지와 재래 염소, 인근 목장의 유우였다. 검사 업무는 우유 검사가 주를 이루었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지만 해방 직후 동물검역소 역시 일본인 직원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수출입 물량도 없었다. 1951년 11월 2일 제정된 가축전염예방병 제21조의 「가축전염병검역규칙」이 1953년에는 훨씬 상세한 「가축검역규칙」으로 개정되었다. 그는 동물검역소 검역계장(1949. 7. 1.), 검역과장(1953. 12. 7.~1961. 9. 30.)에 임명되어,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기에 실무책임자로 동물검역소의 “검역 규칙”을 만들고 동물검역소를 지켰다.

동물(가축)검역소의 명칭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대한제국 시절인 1909년 수출우검역소로 출발(처음에는 부산 한 곳)하였으나 한일병합(1910)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이출우(移出牛)검역소라 개칭하였다. 해방 후 미 군정청이 부산가축검역소(당시 검역소는 농림부 산하)로 개칭하였는데 정부 수립 후에도 농림부 부산가축검역소로 불렸으나 1962년 국립동물검역소로 바뀌었고, 1998년 8월 수의과학연구소(안양 가축위생연구소의 변경된 이름)와 통합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되었다.

한편 안양 가축위생연구소는 농사원 가축위생연구소(1958. 1. 1.)로, 이어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1962. 4. 1.)로 개칭됐다. 농사원 가축위생연구소 시절 그는 세균과(1961. 9.~1962. 3., 수의관보)에 전보되어 안양에서 근무했다. 연구소가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로 개칭되면서 부산 가축위생연구소가 지소가 되고 안양 가축위생연구소는 본소로 될 무렵 그는 연구관으로 세균과(1962. 4. 1.~1962. 9. 21.), 병리과(1962. 9. 22.~1967. 2. 28.)에서 근무하였다. 당시의 부산 지소는 1963년 10월 5일 본소와 통합됨으로써 직제상 소멸되었다.

1967년 3월 1일 약 4년간의 중앙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부산시 가축보건소장 직무대리로 낙향한 그는 1979년 3월 1일까지 가축보건소장직을 수행하였다. 이 무렵 부산시 수의사회장(1968~1971)을 역임하였으며, 부산시 가축보건소가 부산시 축산물위생검사소로 명칭이 변경(1979. 3. 2.)됨에 따라 1981년 7월 29일까지 축산물 위생검사소장으로 근무하였다. 이후 부산시 보건연구소장(1981. 7. 30.~1984. 6. 29.)으로 전근되어 1984년 6월 30일 정년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보건연구소는 그가 정년퇴임한 후인 1987년 12월 28일 보건환경연구소로 개칭되었고, 1991년 5월 25에는 축산물위생검사소를 통합하여 기구가 확대되면서 보건환경연구원으로 개칭되었다.

그의 일생은 흡사 부산시 수의직 변화의 흐름을 보는 듯하다.

그는 정년 후 부산진구 초량3동에서 여생을 조용히 지내다 91세가 된 해인 2014년 1월 21일에 영면하였다. 글쓴이_김근규, 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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