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도 못 쓰는 노령 대동물수의사에게 갑자기 전자처방전을 내라니

수의사처방제 전자처방전 의무화 앞두고 현장선..홍보부족+실효성 없는 불편함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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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처방제 전자처방전 의무화가 심각한 홍보 부족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지만, 불법 처방을 차단하기는 어려우면서 원장들의 불편함만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VET의 전자처방전(왼쪽)과 사용내역 보고(오른쪽)은 거의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EVET의 전자처방전(왼쪽)과 사용내역 보고(오른쪽)은 거의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입력할 것 많은데..스마트폰은 커녕 PC도 생소한 노령 원장들 많아

수의사처방제 전자처방전은 개정 수의사법이 발효되는 2월 28일부터 의무화된다.

처방대상약의 처방전 발행은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을 통한 전자처방전 형태로만 가능해진다. 또한 수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처방대상약을 직접 투약하거나 판매할 경우에도 해당 사용내역을 EVET에 전산보고해야 한다.

특히 처방대상약 사용내역 전산보고는 대동물수의사들 모두에게 직결되는 변경사항이다. 위반할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이 심각한데다 현장 반응도 좋지 않다.

일선 대동물수의사 A원장은 “진료에서 자주 쓰는 항생제, 호르몬제 등 대다수의 동물약품이 이미 처방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면서도 “해당 사용내역을 일일이 전산보고하기에는 불편함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처방전을 발행하거나 사용내역을 보고하는 것은 애초에 어렵다는 것이 A원장의 지적이다. 축주-동물-증상-진단-약품-처치에 걸쳐 입력할 것이 너무 많고, 스마트폰으로 하기는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다.

EVET을 운영하는 대한수의사회에 따르면 의무화 전에 발행되던 전자처방전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이 아닌 PC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A원장은 “사용한 약품과 용량만 입력하면 충분할 텐데 투약경로 등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점도 불편하다. 축주의 생년월일을 요청하는데도 거부감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대동물수의사의 노령화 정도가 심각하다는 점도 고비다. 또다른 대동물수의사 B원장은 “카카오톡조차 사용하지 않는 원장들이 많은데 스마트폰으로 EVET를 사용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PC도 생소한 원장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자처방전 의무화돼도 도매상·처방전전문수의사는 빠져나갈 수 있다?

일선 대동물수의사에게 홍보 부족도 심각 ‘내가 쓴 내역을 전산보고하라니..들어보지도 못 했다’

전자처방전 의무화는 불법 처방전 발급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동약판매업소의 배송판매를 단속할 기반을 만들기 위해 도입됐다.

처방대상약의 처방전 발행 및 사용내역이 모두 전산화되면, 동물약품판매업소와 결탁한 처방전전문수의사 의심사례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A원장은 “이미 도매상과 결탁한 수의사들은 일부러 GPS 기록을 남기면서 처방전을 만들고 약품을 배달해준다”며 “(처방전 발행건수가 많아서 의심받을 것 같으면) 군별처방을 악용해 처방전 발행 농가수를 줄이면 된다. 어차피 잡아내는 것도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처럼 약품 생산단계부터 공급, 사용, 폐기에 이르기까지 입·출고량을 모두 관리하는 형태가 아니면, 수의사 처방만 잡아서는 오남용이나 불법 배달판매를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A원장은 “결국 처방제의 실효성을 달성하기 어려우면서 일선에서 진료하는 원장들에게 불편함만 가중되는데 그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홍보 부족에 대한 문제점도 거듭 제기됐다.

대동물수의사 C원장은 “EVET에 가입도 안되어 있고, 처방제 도입 이후로 처방전을 끊어본 일도 없다”며 “처방전을 발행해봤다는 젊은 수의사들도 ‘어차피 도매상이나 축협에서 다 발행해주다 보니 연간 몇 건 안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C원장은 “수의사가 처방대상약을 직접 사용한 내역을 전산보고해야 한다는 소식도 들어본 일이 없다. 지역 원장들 모두 마찬가지다. 정부나 지자체, 임상수의사 단체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오늘 처음 들었는데 당장 과태료가 나올 수 있다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B원장도 “어차피 농장에 왕진을 간 수의사에게 처방전 발행을 요구하는 농장주는 거의 없고, 수의사로서도 약을 직접 쓰거나 판매하는게 더 자연스럽다”면서 “사용내역 전산보고가 문제인데, 노령화된 1인 원장들이 대부분인 대동물 임상에서 당분간은 제대로 실행될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열린 전북수의사회 총회에서도 지부장 선거에는 많은 회원이 참여했지만, 선거 후 이어진 처방제 교육에는 20명 미만의 회원만 남았다.
지난달 열린 전북수의사회 총회에서도 지부장 선거에는 많은 회원이 참여했지만,
선거 후 이어진 처방제 교육에는 20명 미만의 회원만 남았다.

항생제 오남용 줄일 처방제 강화는 피할 수 없다..일선 수의사 참여 요구돼

시스템 보완, 광범위한 홍보·교육 선행돼야

이처럼 전자처방전 의무화가 시행을 앞두고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처방제에 기반한 관리강화는 필수적이다.

물론 GPS 찍기, 군별처방 악용 등으로 피해갈 구멍이 작지 않지만, 수기처방전을 허용한 지금보다는 심각한 불법사례를 잡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료기록을 제대로 남기는 것은 수의사에게 법적으로 요구되는 의무이며, 단지 그 형태가 처방대상약에 한해 전산기록으로 정해진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PC·스마트폰에 익숙치 않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진료기록을 남기고 동물용의약품 오남용을 줄이는데 기여할 의무를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대동물수의사들이 보다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지속 보완하고, 당장의 단속보다 광범위한 홍보·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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