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투더퓨처:외과수의사② OB] 건국대 윤헌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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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t to the Future』

여기 두 명의 수의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길을 꽤 걸어왔습니다.

먼저 길을 걸어온 수의사는 뒤를 돌아보며 말합니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풍경을 보았다고.

이제 출발하는 수의사는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만의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Vet to the Future』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먼저 걸어간 수의사에게서는 길 위에서 얻은 지혜를, 이제 길을 나서는 수의사에게서는 앞으로의 미래를 듣습니다.

경험과 가능성이 교차하는 그 길 위의 이야기를, 13기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전합니다.

수의외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진단조차 어려웠던 척추 질환이나 복잡한 관절 손상도 이제는 첨단 장비와 발전된 수술법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등 뒤에서 소의 난산 수술, 전위 수술을 봤던 수의사는 이제 대학 동물병원을 이끄는 대표 외과 수의사가 됐습니다. 건국대 윤헌영 교수(OB)입니다.

다른 대학을 졸업한 후 수의대로 편입까지 하면서 진로를 고민했던 수의사는 졸업 후 외과수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산 24시온동물의료센터 김도이 수의사(YB)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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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바이오필리아 해외 봉사에서, 윤헌영 교수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외과를 담당하고 있는 윤헌영입니다. 2018년부터 건국대학교 동물병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수의학의 길을 처음 선택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경기도에서 오랫동안 산업동물 수의사로 진료를 하셨어요. 어릴 적 오토바이를 타고, 차를 타고 왕진을 다니시던 아버지를 따라다녔습니다. 밤중에 난산 진료를 가는 현장에도 따라갔던 기억이 있어요.

이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수의학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랐는데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힘든 환경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수의사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진로를 고민하면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던 수의학이 가장 익숙하고 의미 있는 선택지라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수의학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산업동물에서 외과 진료를 자연스럽게 접했어요. 머리가 두 개인 송아지를 꺼내는 장면, 난산 수술, 고창증이나 제4위 전위 수술과 같은 장면을 일상적으로 봤습니다. 외과 수술에 대한 심리적인 허들이 거의 없었어요.

제 성향도 외과와 잘 맞았습니다. 손으로 뭔가를 하고 몸으로 해내는 것을 잘 해내는 스타일이거든요. 외과 수의사가 되는 것이 적성에 맞았죠.

제가 스스로 기억하는 학창 시절과 주변 동료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저는 사회 참여를 중요히 여겼던 학생이었습니다. 중앙동아리 활동도 하고, 성수동 공부방에서는 야학으로 초·중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다른 동료들에게는 ‘수업만 끝나면 어디론가 바쁘게 가는 친구’로 보였겠죠.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큰 습관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그 순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경험이 군 제대 이후였습니다. 군대를 26개월 현역으로 다녀왔는데요, 다들 제대하자마자 복학하던 편이었지만, 저는 친척이 살고 있던 캐나다에 1년 정도 있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난생 처음 10개월여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게 됐죠.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2005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반려동물 임상을 더 배우고 싶다는 갈급함이 생겼습니다. ‘더 배울 수 있는 곳은 미국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찾아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죠. 추천이나 조언을 받을 만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식하게 부딪혀 봤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약 150명의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중 두 분에게 답장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제가 잘못 알고 이메일을 보낸 것 같다며 미국 임상에는 포닥(Postdoctoral Fellow)이라는 포지션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그때서야 처음 임상은 전문의 과정이고, 포닥은 research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미국에 임상 포닥이라는 포지션은 없지만 만들어 볼 수는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3개월 동안 무급으로 일을 해보고, 급여를 줄 수 있는 위치가 되면 계속 함께하고 그렇지 않으면 3개월 후에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하셨죠.

저는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고, 이후에는 급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티칭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고, 진료에 스크럽 인 해서 임상을 배울 기회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정말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나중에 초청해 주셨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2년 반 동안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은 원래 휴가를 안 가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휴가를 안 간 것이 아니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세 식구가 살아가는 것도 빠듯했고, 200만 원짜리 중고차를 타고 다닐 정도였거든요.

원래는 학위 과정까지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원했을 때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독성이 있는 약을 너무 가볍게 사용했다가 부작용이 크게 일어났죠.

그 일을 겪으면서 ‘수의사가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박사 과정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항상 제가 진료하는 환자는 누군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마음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에서는 실수할 수도 있지만, 진료만큼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공부합니다. 질병은 언제나 다양한 변수와 상황이 있기 때문에 계속 배우지 않으면 좋은 진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도 다른 부분보다 진료를 소홀히 하는 것만큼은 엄하게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환자 앞에서는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병원장이라는 역할에서 조금 자유로워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새로운 수술 테크닉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입니다.

건국대 바이오필리아 해외 봉사 현장에서

사실은 환자 자체보다 보호자와 함께했던 경험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어려웠던 경험이 더욱 그렇죠.

한 명절 연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구토·설사로 내원했던 환자가 있었어요. 정말 죽기 직전에, 이쑤시개가 장을 관통하면서 복강을 손상시킨 장 천공(intestinal puncture)을 확인했습니다. 응급 수술로 환자도 살려냈죠. 그런데 수술 과정에서 저온화상이 발생하면서 수개월 동안 보호자의 컴플레인에 시달렸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애정을 갖고, 제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배려하며 치료했다고 생각했는데..그럼에도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애정을 갖고 진료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수술 결과뿐만 아니라 보호자와의 소통과 신뢰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죠.

좋은 결과를 얻었던 환자들도 많이 기억에 남지만, 수의사로서 가장 많은 고민과 배움을 준 것은 오히려 이러한 경험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수술이란 보호자의 마음을 잘 낫게 하기 위한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수술이 있는 날은 아침에 기도를 합니다. 환자가 무사히 회복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치료 과정을 함께 견뎌야 하는 보호자의 마음도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있습니다. 종교적인 영향도 있는데,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성경 구절에 많이 공감하거든요.

제가 지금 밥을 먹고 살고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하는 것은 제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고, 학교라는 큰 울타리가 있었으며,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에 환원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봉사를 아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만큼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수의사는 사회적으로 많은 기회를 가진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력이 된다면 내가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달라진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세대인 것 같아요. 우리가 학생 때는 옛날 스타일로 배웠고 지금은 그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수의학은 산업동물을 건강하게 치료해 우리의 먹거리와 축산 경제를 지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개념은 지금보다 훨씬 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동물의 중요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식하고, 함께 정서를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가 매우 커졌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크게 달라진 점은 학생들입니다. 우리 때 수의학을 했던 분들이 저평가되어서는 안 되지만, 지금 학생들은 수의학을 접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고, 그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 환경과 학문적 지원을 만들어 주기 위한 노력도 훨씬 커졌습니다. 학생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학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투자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또 하나의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수의학이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거시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제가 부족하지만, 수의학을 꿈꾸는 학생들과 수의학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제 수의학은 단순히 반려동물이나 산업동물을 치료하는 학문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의학이 생명과학(Bio)과 의학(Medicine)을 모두 아우르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인 전염병이나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병, 먹거리와 식품 안전 등 동물과 연결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의학은 사회 전반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AI가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정서를 함께 나누는 반려동물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들어와서 ‘진료만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에만 몰두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단순히 많이 버는 직업이나 미래를 위한 투자에만 몰두하기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수의학의 가치를 바라보는 수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내가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길벗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도 ‘임상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항상 한 번 더 넓게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임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수의학에는 임상 외에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건국대학교 동물병원을 수의학도들에게 걸맞은, 수의학의 학문적 기반이 될 수 있는 병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분야의 진료를 높은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는 병원, 더 나은 치료법과 새로운 약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는 병원, 그리고 임상과 연구, 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병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조금 더 잘 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건강도 돌보고 삶의 여유도 함께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저에게는 “정말 수고했고,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도 많았지만, 잘 이겨냈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옳다고 믿었던 가치들을 끝까지 지켜온 것에 대해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반대로 미래의 저에게는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건강도 챙기고 삶의 여유도 누리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무리하다가는 정말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요.

‘YB’ 김도이 수의사와 만나는 2부(보러가기)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심현정 기자 shj5387@naver.com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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