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선의 인문수의학④] Mostly Harm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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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 한 그룹이 학교로 찾아왔다. 대기업 후원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길고양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주택가에 고양이들이 살지 못하도록 다양한 장치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길고양이는 해로운 동물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해롭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이롭지 아니하거나 손상을 입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해롭다는 개념은 철학에서라면, 밀의 ‘해악의 원리(Harm Principle)’에서 보듯 도덕적으로 그릇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본다(물론, 모든 그릇된 행동이 반드시 타인에게 해악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오병선, 2006). 어떤 사람이 특정 행위를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음으로 해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존재(먹고 살아가고 자손을 퍼뜨리는 ‘정상적인 본성’을 나타내는)의 생존 자체가 해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존재를 ‘해로운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인간에 의해 어떤 동물들은 그렇게 규정된다. 그리고 그 해로움에 대한 판단은 매우 상대적이며 극단적으로 논쟁거리가 되며, 기준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어떤 동물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일까? 인간을 물거나 죽이는 동물, 인간의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동물, 그리고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동물이 쉽게 떠오른다.

우리가 ‘해수(해로운 동물)’라고 분류하는 대개의 동물은 야생동물이다. 야생동물과의 접촉은 인간이 생태계의 한 부분인 만큼 활동범위가 겹친다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피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화전촌에서는 산짐승들이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동제를 지낼 때 축문에 이들을 쫒는 기원을 넣었다. 이를 테면, “범과 표범이 멀리 달아나고 멧돼지와 노루가 자취를 감추도록” 또는 “호표가 자취를 멀리하고 뱀과 도룡뇽은 숨어버리도록” 해달다는 내용이 들어간다(김화미, 2010). 조선시대 농지개간과 더불어 시행된 포호정책 정책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김동진, 2005).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옛날 얘기만은 아니어서 지금도 각국에는 유해야생동물, 위험한 야생동물에 대한 법규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서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에는 유해야생동물 즉,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로서 환경부령이 정하는 종” 이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동물들을 엽총이나 공기총, 그물, 올무 혹은 생포용 덫을 이용해 포획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위생사업, 해수구제사업은 일제가 상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펼친 사업이다. 당시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고 사람과 가축을 보호했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 내내 대대적인 “害獸討伐이 警察獵師合力(동아일보, 1925년 12월 15일 4면)”으로 펼쳐졌다.

물론, 100년도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 멧돼지를 제외한 모든 ‘해수’가 사라지는 성과를 이루었으니 대대적인 성공이 아닐 수 없지만, 사실 이 해수구제정책은 우리의 빈약한 생태계의 주범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 동물들을 바로 그 자리에 복원하고자 우리의 지식과 자원을 기꺼이 투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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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害獸를 驅除하라˝ 1936.07.25 동아일보 5면 칼럼/논단

야생동물을 ‘해수’로 규정하고 이들을 구제하는 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우리의 책임 하에 있던 어떤 동물들이 해수로 돌변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동물(가축)을 인위적으로(원래 있지 않은 장소에서) 키우다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 동물들 대개 ‘해수(생태계교란종)’가 된다. 호주로 간 유럽 토끼의 비극적인 역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뉴트리아가 그렇다.

     

사람의 경제적 이익과 상관이 없는 동물들도 ‘해수’가 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주거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사람들과 동물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해당되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은 인간의 폭력이나 분노의 대상으로서 희생양이 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동물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어떤 문제들의 표면에 동물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현재 길고양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그 예이다.

어느 시점부터 우리나라에서 길고양이(또는 들고양이)의 수가 이슈가 될 정도로 증가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이 도망 나가 산과 들, 그리고 인가 부근에서 천적도 없이 급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인간과 관계를 맺어온 전통적인 방식을 생각할 때 이 설명은 충분하지는 않다. 만 년도 넘게 인간은 생활주변에 고양이를 두고 살아왔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새삼스럽게 대두되는 것일까?

사실, 사람들을 고양이가 사람들을 귀찮게 했던 것은 딱히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분분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익(李瀷)은 집에 들어왔던 ‘도둑고양이(偸猫)’이야기를 펼친다. 사람들이 단속을 소홀히 하면 상에 차려놓은 음식까지 노렸기 때문에 잡아죽이려고 모두 미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집으로 옮겨간 이 고양이를 그 집 식구들이 돌보고 밥을 많이 주자 굶주리지 않은 고양이가 음식을 탐하지도 않고, 쥐도 잘 잡아서 더 예쁨을 받았다. 이를 전해들은 이익은 본인이 어진 주인이 못되어 고양이의 본성을 모르고 도둑고양이로만 대했음을 한탄한다(김홍식, 2014).

길고양이라는 명칭은 2000년대 초반에서야 흔하게 쓰이게 된 이름이다. 이 이름을 얻기 전에는 ‘도둑고양이’, ‘들고양이(들고양이들이라는 밴드도 있었다!)’, ‘야생고양이’ 등으로 불렸다.

90년대 후반부터 ‘야생고양이’나 ‘들고양이’의 공포에 대한 기사가 등장한다. “서울도심 주택가 소름끼치는 무법자(경향신문, 1999)”인 야생고양이나 “작물과 가금류, 생태계를 파괴하는” 들고양이는 “불쌍해도 생태계 보호를 위해 정리해야”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른바 “들고양이의 역습”이 문제화 된 것이다(KBS, 1999).

재미있는 것은 이 들고양이들이 야생에서도 사람들의 근거지 근처에 주로 서식하여 산 속 깊숙히 살지는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먹이를 얻고(특히 겨울철) 서식밀도는 민가와 떨어진 지역에서는 1헥타아르 당 0.2-0.5마리, 식당가에서는 4.0마리, 도서지역에서는 0.17-0.43마리 정도 된다(환경부, 2001;이정일 외, 2009;황미경, 2013). 서울시 인구밀도는 주민등록된 사람만 17,165/km2으로 1헥타아르당 172명 정도가 산다(서울통계, 2013).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얼마나 많은 것이 해로울 정도로 많은 것인가? 길고양이가 유발하는 중요한 사회적인 문제가 길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과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나 폭력이라면, 그건 고양이의 위해일까 아니면 사람의 위해일까?

     

영국의 SF 작가인 더글라스 아담스의 대표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시리즈에서 지구와 지구인에 대한 설명은 매우 짧다.

‘Mostly harmless (대체로 무해함)’.

이렇게 하찮은 표현에 주인공인 아서 덴트는 분노한다. 그러나 가끔은 인간이 정말 대체로 무해하기라도 하다면 안도하겠다는 심정이 된다.

이익(李瀷)처럼 동물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경지에 오르기는 힘들겠지만, 동물을 해롭다고 정의하거나 또는 “해수를 구제”하고자 할때, 혹시 인간이 무심하고 폭력적인 것은 아닌지 단시안적인 것은 아닌지, 너무 단순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우리는 수의사로서 한번쯤 더 머리를 모아 생각해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김화미 (2010) 충주 남한강 유역 火田 지역의 7월 洞祭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동진 (2005) 조선전기 농본주의와 포호정책. 역사와 담론. 41. 71-116.

신동원 (2004)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역사비평사. 서울.

김홍식, 정종우(2014) 조선동물기. 서해문집. 90-91.

‘서울도심 주택가 소름끼치는 무법자 야생고양이의 공포’1999.09.16 경향신문 23면 기사

KBS 환경스페셜 ‘들고양이의 역습’ (1999. 12. 15)

환경부(2001) 들고양이 서식실태 및 관리방안 연구

이정일, 정철운, 김철영(2009) 경주국립원내 서식하는 들고양이(Felis catus)의 동절기 행동권 분석.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3(5). 485-491

황미경(2013) 도시와 시골에 서식하는 한국 배회고양이의 먹이자원과 서식밀도 비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서울통계(2013) http://115.84.165.91/jsp/WWS00/outer_Seoul.jsp?stc_c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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