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약부터, 일단 쓰고 보자?` 축우 항생제 내성 경고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에는 3차로 권장된 약물, “농장 마음대로 사서 예방적 투여한다” 지적

등록 : 2021.06.04 05:31:11   수정 : 2021.06.03 18:33:37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무려 지속성 항생제를 축협동물병원에서 엄청 판매한다. 송아지 이유나 수송 전후에 (예방적으로) 투약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축산 현장의 항생제 오남용과 내성 문제는 여전한 고질병이다. 사실상 수의사 진료를 거치지 않는 항생제 판매·사용을 근절하는 한편,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항생제 적정 사용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문진산 연구관은 2일 대전 KT인재개발원에서 열린 한국우병학회 학술대회에서 소에서의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과 내성 문제를 소개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문진산 연구관

돼지·닭보단 덜하지만..선진국보다 많이 쓰고 내성도 높아

문진산 연구관은 “수의사처방제 이후에 국내 항생제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면서 “돼지·닭보다는 덜하지만 소의 항생제 사용량, 내성률도 선진국 대비 높다”고 지적했다.

페니실린, 테트라싸이클린, 세펨, 마크로라이드 등 주요 계열 항생제의 2019년 기준 사용량은 2010년에 비해 두배 혹은 그 이상 증가했다.

소의 항생제 사용량은 축산 선진국인 덴마크의 2.4배에 달한다. 돼지(7.6배), 닭(8.2배) 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내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문진산 연구관은 “수의사처방제는 항생제 내성에 초점을 두고 도입됐지만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제3자로서는 향후 동물의 항생제 사용에 대한 책임을 모두 수의사에게 물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에서 항생제 문제가 비교적 적은 이유로는 소라는 축종의 특성이 꼽힌다.

돼지나 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개체치료 문화가 있는 편인 데다가, 1두 출하가격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다 보니 항생제를 썼다가 치료에 실패하면 잔류문제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만큼 사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란계와 마찬가지로 착유기의 젖소에서는 아예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작용한다.

@문진산 연구관

가이드라인엔 3차 사용 권장, 현장에선 축협에서 사서 예방적 투약 ‘괴리’

수의사처방제 도입과 달리 항생제 사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으로는 동물용 항생제의 처방대상 지정이 늦어졌다는 점, 수의사의 직접 진료 없이 발행되는 불법 처방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 지목된다.

수의사처방제가 2013년 도입됐지만 당초 계획처럼 모든 항생제를 당연 처방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지난해에 이르러서다. 그나마 2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해 내년부터 적용된다.

수의사 진료 없이 농가가 마음대로 항생제를 쓸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도 여전하다.

이날 학회에 참여한 한 임상수의사는 “약품업체는 송아지 이유나 수송 전후에 지속성 항생제를 ‘예방적’으로 투여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항생제를 쓰는 것”이라며 “축협동물병원에서 엄청나게 판매하고 있다. 호흡기 질병 같은 경우는 수의사가 왕진을 가서도 쓸 약이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 수의사가 남용 문제를 지적한 항생제는 마크로라이드계열 제제다. 검역본부가 지난해 발간한 [소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에서는 관련 적응증에 바로 사용하지 말고 3차에 쓰도록 권장된 약물이다.

가이드라인에는 3차 약물이지만, 농장 현장에서는 1차보다도 더 먼저 쓰이고 있는 셈이다.

수의사 진료가 전제되지 않은 것도 문제인 데다가, 세균성 질병 발생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 증체나 컨디션 개선을 위해 항생제를 쓰는 행위는 전형적인 오남용이다. 배합사료에서 항생제 첨가가 금지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학회에서 만난 또다른 수의사도 “지역 도매상은 물론 축협동물병원도 대부분 사실상 약국처럼 운영된다. (항생제를) 농가가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의사들도 점점 강한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의는 항생제 사용 저감 안전장치 있지만..수의는 인식 저변 확대부터

이처럼 실질적으로 수의사의 관리 바깥에 있는 항생제 오남용을 줄여야 한다는 과제와 함께 수의사들 사이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단일 서울대 교수는 “사람은 처음 내원하면 1세대 항생제부터 사용하는데, 소에서는 처음부터 고차원 항생제가 쓰이고 있다”면서 “수의사가 안전한 축산물 생산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려면 내부적으로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계의 항생제 사용량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전신성 항생제 의약품의 사용량은 OECD 평균보다 92%가량 높다. 그만큼 내성문제도 심각하다.

그래도 건강보험 차원에서 다양한 안전장치를 적용하고 있다. 다짜고짜 고차원 항생제를 쓰면 급여 삭감을 피하기 어렵다. 항생제 사용량을 줄인 경우에는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이날 발표의 좌장을 맡은 이상원 건국대 교수는 “인의에서는 항생제 사용 가이드와 함께 건강보험 삭감 등의 제제도 있다. 반면 수의에서는 (가축에서) 항생제 사용을 판단하는 기준은 잔류뿐”이라고 지적했다.

문진산 연구관은 인의와 같은 규범 마련보다 저변의 인식 확대가 먼저라고 진단했다. 축종별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수의사와 농가 교육을 지속해 항생제 적정 사용의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진산 연구관은 “진료 초기에는 광범위 항생제를 사용하더라도, 감수성 검사를 실시해 좁은 항균범위를 갖는 항생제로 변경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백신이나 위생 등 항생제 사용 대신 질병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