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금, 수의대 실기교육 개선 논의 앞서 `진료권 붕괴 심각`

임상현장에서 바라본 실기교육 논의에 축종별 온도차..소·고양이 ‘동물 잘 다뤄야’

등록 : 2020.11.16 13:10:40   수정 : 2020.11.16 13:10:45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한국수의교육학회 연구진이 수의과대학 재학생이 익혀야 할 기본 임상실기(clinical skill) 54개 항목 초안을 발표했다.

12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 공청회에서는 소, 돼지, 가금, 반려동물, 공직 등 분야별 현장 수의사들이 의견을 내놨다.

소·반려동물 등 개체치료 분야에서는 동물을 다루는 방법 등 구체적인 사항을 지목한 반면, 돼지·가금 분야에서는 진료권 붕괴 문제를 먼저 지목했다. 제대로 일할 환경이 되지 않고서는 실기 교육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 일단 동물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국소임상수의사회 김영찬 전 회장(파주 유우진료소장)은 “클리닉에 온 6년제 출신 수의사들을 보면 공부를 참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낀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소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령 다리를 많이 움직이는 등 예민한 소의 징후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일에만 집중하다가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다.

축주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소통 능력도 강조했다. 농장동물의 특성상 수의사가 치료를 고집해 결과가 좋더라도, 경제성을 감안한 도태 여부만 파악하고 싶었던 농장주는 오히려 불만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고양이수의사회 김지헌 회장은 고양이의 핸들링 실기 필요성을 지목했다. 고양이 보호자는 수의사가 고양이를 다루는 모습만 보고 실력을 예단하는 경향이 있는만큼,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지헌 회장은 “최근 임상의 키워드가 노견과 자묘일 정도로 고양이 임상의 성장세가 높고, 학생들의 관심도 크다”면서도 “학생들은 사나운 고양이의 보정과 예민한 보호자의 대응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연구진이 발표한) 기본 임상실기 초안에도 ‘동물 보정’이 있다.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 종별로 어떻게 보정해야 하는지 세밀하게 규정해야 한다”면서 “요도 카테터 장착이나 경구 투약 등 다양한 실기에 고양이의 특징이 적용된다면 학생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료만 하면 굶어 죽을 판인데..진료여건 만드는 문제도 강력히 고민해달라

반면, 돼지·가금 임상분야의 분위기는 달랐다.

졸업생들이 진료에 임할 때 필요한 임상실기가 무엇인지 따지기 전에, 진료 자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김현섭 양돈수의사회장은 “양돈수의사회 회원은 200여명이지만, 진료를 업으로 하는 분들은 20여명에 불과하다. 약품 판매에 병행하는 형태를 포함해도 4~50명에 그친다”며 “(양돈업계에서) 수의사들이 진료만 하면 굶어 죽을 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섭 회장은 “반려동물이나 소처럼 개체진료가 가능한 분야에서는 그나마 진료권이 확립되어 있고, 졸업생들이 곧장 진료에 임할 수 있는 역량이 그만큼 중요시된다. 하지만 돼지·가금 분야에서는 여전히 진료권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도 “저부터도 진료보다 방제 업무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가금수의사가 진료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며 “실력 있는 수의사가 가금 분야를 외면한 지 오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의과대학에서도 점차 농장 진료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도 지목했다. 윤 회장은 “정부의 교통정책(방역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교수님들이 직접 운전(진료)을 하면서 현실적인 지적을 해 주셔야 한다”면서 미흡함이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임상교육 개선을 논의하는 공청회에서 이 같은 지적이 나온 것은 그만큼 돼지·가금 분야의 수의사 진료권 붕괴가 심각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동물병원이 없어도 농장은 사료, 약품업체 등 주변 서비스에서 조언을 받거나 자체적인 경험에 기반해 병성감정을 의뢰하고 약품을 주문해 사용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종웅 회장은 “현장에선 수의사와 약품판매업자가 무슨 차이인지 확실히 답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김현섭 회장도 “진료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수의사는 약품회사, 사료회사 직원과 경쟁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수의대생들에게 임상실기를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문제에도 대학이 강력히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상실기 교육 개선에 대해서는 선택적인 접근법을 제안했다.

김현섭 회장은 “양돈 임상을 모든 학생이 다 배우는 시스템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라며 “평창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을 활용하는 등 관심 있는 학생이나 졸업한 수의사들이 더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