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임상 분야에 종사하는 수의사들과 이들 분야가 궁금한 수의대생이 한자리에 모이는 ‘비임상 수의사 진로 세미나’가 6회째를 맞이했다.
8월 22일(토) 동탄 콜마바이오텍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프로 이직러’를 주제로 ‘이직’에 초점을 맞췄다. 공직과 기업, 창업을 오간 선배 수의사들의 경험을 생동감 있게 전했다.

“경험이든, 사람이든, 배제의 기준이든..이직할 때마다 하나는 남았다”
2017년 동물방역기관의 연구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김연하 수의사는 이후 반려동물 임상과 공직(수의직) 복귀, 대학원 학위 과정과 바이오 기업 소속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부산대학교에서 실험동물센터 전임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10년간 5번의 이직, 그것도 같은 분야에서 소속만 바꾼 것이 아니라 활동 영역 자체를 옮기는 선택을 반복한 ‘프로 이직러’다.
김연하 수의사는 “이직 자체에는 거의 후회가 없다. 이직할 때마다 그래도 하나는 남았다”면서 “경험이든, 기술이든, 사람이든, 배제의 기준이든 하나라도 얻으면 다음 선택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사·수의직을 거치면서는 공공조직에서의 현장 수의 업무 경험과 함께 ‘수의사로서의 전문성과 관계없는 일을 하기 싫다’는 기준을 얻었다. 동물병원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소통한 경험은 얻고, 임상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좋은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를 만들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면서 의과대학 대학원에서의 임상약리학 석사 학위 과정을 회고했다.
현재의 전임수의사 자리에는 수의학적 판단과 공직에서의 행정 경험, 데이터를 보는 법, 바이오 기업 경력까지 그간의 이직에서 얻은 ‘점’들이 ‘선’으로 이어졌다. 육아를 병행하기 위한 워라밸로 자신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경험을 기록으로, 그다음의 ‘자신’으로
에이앤바이오 김명주 수의사는 2년여 안팎마다 자리를 옮겼다. 대한수의사회 중앙회 사무처와 제일바이오를 거쳤다.
김명주 수의사도 지나간 둥지마다 점을 얻었다. 민원 대응과 회의를 반복했던 대수 사무처에서는 수의사 네트워크와 기본적인 사회생활 능력,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역량을 갖췄다. 제일바이오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으로 쏟아지는 업무량에 대응하는 능력과 수출·해외 박람회 업무 경력을 얻었다.
김명주 수의사는 “제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 인정하고 나서야 만족할 만한 직장을 고를 수 있었다”며 “첫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배워서 점프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금의 경험이 쓸모없어 보이더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다음의 ‘자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언도 함께 전했다.

‘덕업일치’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동력
곧 오리엔트제니아에 합류하게 된 신수민 수의사는 업계 8년 차다.
청소년기부터 과학자를 꿈꾼 신 수의사는 “동물실험을 많이 하니 수의대가 좋겠다”고 생각해 수의사가 됐다. 수의대생 시절에도 임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4년 내내 조직학 실험실에서 실험동물 마우스 관리부터 여러 실험 경험을 쌓았다.
2018년 포항공대 최초의 수의사로 입사하면서 생물안전·실험동물 관련 업무를 전담한 것을 시작으로, 양산부산대병원 실험동물 전임수의사를 거쳐 디티앤씨알오(DT&CRO)의 병리 책임자로 일했다.
디티앤씨알오에서는 병리 책임자로 일하면서 4.5만 장에 달하는 89건의 병리 보고서를 발행하면서 ‘덕업일치’를 이뤘다.
실험동물과 병리 분야에서 커리어를 이어온 신수민 수의사는 “덕업일치가 중요하다. 최소한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동력이 될 수 있다”면서 “수의사 면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에 기여하는 수의사’ 병리 전문가 양성 체계 강화해야
벳플럭스 윤상우 대표는 반려동물 임상 수의사에서 스타트업 창업으로 전직했다. 동물병원 관련 인공지능 ‘늘펫’을 서비스하고 있다.
임상 수의사 시절 보호자와 이야기하기를 즐겼던 윤상우 대표는 ‘보호자가 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 두고 싶다’는 바람에서 늘펫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수의대 진학부터 미국 수의사 준비, 창업 후 200여 동물병원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기까지 이어진 고민과 방황의 경험을 전하면서 “방향만 맞다면 언젠가 도달한다는 믿음으로 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강연의 마지막은 독성·병리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아산병원 손우찬 교수가 장식했다.
수의대 졸업 후 제약회사 경력을 거쳐 2011년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에 임용된 손우찬 교수는 비교병리학을 의과대학 병리학 교실에 학문적으로 정착시켰다. 서울아산병원이 신약 개발의 독성·병리의 중심 허브가 될 수 있도록 활약했다.
병리 분야의 국제 학술 교류와 후학 양성 노력을 다양하게 소개한 손 교수는 수의 분야의 병리 전문가 양성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학원 학위 과정에서 벗어나 직무 교육에만 초점을 맞춘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수의학은 신약 개발에 너무 좋은 학문적 배경이 된다. 의지와 관심만 있다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요구되는 여러 중요한 결정들에 합리적·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며 소수지만 수의사가 반드시 응해야 하는 직무라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