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지예 “미국수의사로 한국 바이오 기업 돕는 일 하죠”

자녀 교육을 위해 34세에 미국수의사 도전한 안지예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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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수의사에 대한 수의사·수의대생의 관심이 높습니다. 흔히, 미국수의사 하면,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만 생각하기 십상인데요, 미국수의사지만 동물병원에서 근무하지 않고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과 일을 하는 한국 수의사가 있습니다.

데일리벳에서 자녀들의 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안지예 수의사(사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수의사 공통질문입니다. 어떻게 수의사가 되셨나요?

이과 전문직 중 하나로 전공을 택하고 싶었는데, 서울대 수의대에 수시 합격해서 수의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수의대 진학이 저에게는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지금 수의사로서 저에게 딱 맞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Q. 수의대 다닐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인라인스케이트 동아리와 봉사동아리(팔라스)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발생학 교실에서 봉사장학생을 했었는데 그때 연구와 실험을 많이 했었어요. 성제경 교수님(서울대 수의대 수의발생유전학)께서 워낙 리서치를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전체에서 하는 연구 프로그램, 포항공대 여름 리서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제가 했던 실험을 바탕으로 제 이름이 제1 저자로 올라간 논문이 나오기도 했었죠.

그때 basic research를 많이 했던 게 지금 하는 일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답니다.

Q. 수의대를 졸업한 뒤에 의과대학 기초 분야 대학원에 진학하셨네요. 원래 임상수의사는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수의대 졸업 후 서울대 의과대학 대학원(병리면역학 전공)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공부할 때는 임상과 기초를 똑같이 좋아했어요. 임상 중에서는 특히 외과가 좋았습니다. 방학 때 마취과 실습을 했었는데, 그 이유가 마취과에서 실습을 하면 일반외과, 안과, 정형외과 수술을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임상은 나중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기초연구는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수의대 발생학교실에서 했던 연구들을 바로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고, 한 번 임상을 시작하면 기초연구는 다시 못할 것 같아서 기초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Q. 대학원 졸업 후에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글로벌 연구소에서 신약개발 연구를 하다가 바이오벤처 기업인 큐리언트(Qurient)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어요. 대표님과 저를 포함해 총 5명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열정이 가득 차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왜 작은 벤처회사에 들어가냐?”는 주변의 반대도 있었지만, “아직 젊은 데 뭐 어때~!”라고 생각했고 재밌게 일했습니다.

회사가 2016년에 상장했는데요, 5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상장할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내가 키운 자식이 잘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무엇보다 ‘제가 받은 스톡옵션’이 종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웃음).

Q. 그렇게 한국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계셨는데, 미국으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사에 다니면서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를 낳아서 워킹맘으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영어를 쓸 일이 많았는데, 아이가 영어만 잘해도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어유치원에 한 달에 몇백만 원을 쓸 바에는 아예 미국에 가서 아이를 키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2017년부터 준비해서 2018년에 미국에 갔는데요, 그때 제 나이가 34살이었습니다. 더 이상 늦으면 도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했죠.

회사를 퇴사하고 미국으로 갔는데 많은 분들이 “무모하다”고 했어요. 그 당시가 바이오벤처 붐이 불던 시기인데 “이 좋은 기회를 버리고 왜 떠나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제가 어디에 꽂히면 그걸 꼭 해야 하는 스타일이랍니다(웃음).

남편과 상의를 하고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미국에 갔어요. 여행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여행은 돈을 벌려고 가는 게 아니라 돈을 쓰면서 경험을 하는 거잖아요. 미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실패하는 여행은 없다는 생각으로 떠났습니다.

Q. 미국수의사 면허를 취득하셨는데요, 수의대 졸업 후 바로 준비한 것도 아니고, 임상수의사도 아니었는데 미국수의사 면허를 따는 게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ECFVG 시험으로 면허를 취득했는데, 한국에서 임상 경험이 없다 보니 모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학교(서울대 수의대) 동물병원에서 외과, 마취과 로테이션을 돌면서 경험을 쌓았어요.

미국 루이지애나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 외국 학생을 위한 로테이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도 지원해서 6개월간 로테이션을 돌았습니다. 이때 미국과 한국의 임상시스템 차이를 배우게 됐죠.

미국수의사 시험의 경우 실습 시험에 한 번에 붙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인형 교수님(서울대 수의대 마취통증의학과)께서 한 번에 미국수의사 실습시험에 합격한 분을 소개해주셨는데, 그분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필기시험, 실습시험 모두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죠. 만나는 사람마다 많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Q. 미국수의사로서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게 일반적일 것 같은데,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네요.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회사를 설립하고 신약개발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일을 합니다. 초기임상까지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기업들과 일을 하는데, 원래 다니던 회사(큐리언트)의 미국업무가 주된 업무죠. DABT(미국독성전문가자격, Diplomate of American Board of Toxicology)도 취득했기 때문에 독성시험 결과 나오면 해석 및 판단도 가능합니다. PMP(Project Management Professional) 자격도 있답니다.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종종 미국의 병원 및 CRO회사에 방문하기도 해요. 한국과 시차가 있어서 (한국 기업과) 일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요, 밤에 아이들이 자는 시간이 한국의 업무시간이기 때문에 한국과 소통도 잘 되는 편입니다. 오히려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재 미국에서 임상수의사를 할 생각은 없답니다.

Q. 얘기를 나눠보니, 미국에 간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커리어보다 가족(자녀 교육) 때문인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미국에 와서 아이 둘을 더 낳아서 현재 세 명의 자녀를 둔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데요, 만족스럽고 좋습니다. 삶이 자유롭고 편하다고 할까요? 자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았는데,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죠.

얼마 전 첫째 아이가 발표수업을 하고 왔는데요, 제가 “누가 제일 잘했어?”라고 물었는데 “우리 다 같이 잘했어”라고 답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나 이번 시험에서 누구 이겼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한국은 어릴 때부터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아이가 성장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많은 여자 수의대생, 여자 수의사분들이 결혼·출산과 수의사로서의 삶을 놓고 고민이 많습니다. 워킹맘으로서 삶의 질도 유지하면서 훌륭하게 커리어를 쌓고 계신 것 같은데, 고민이 많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수의대생들에게는 많은 경험을 해보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동물병원 실습도 해보고, 실험실에도 나가보길 바랍니다. 그런 게 전부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학부생 때 많이 노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물론 노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졸업하고도 충분히 잘 놀 수 있습니다(웃음).

워킹맘과 워라밸에 대해서는 2가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우선,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 그리고 거절할 때는 거절할 것.

먼저, 제가 능력이 있다면 제 상황과 환경에 일을 맞출 수 있습니다. 퇴사를 하고 미국에 왔지만, 원래 다녔던 회사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일하면서도 높은 페이를 받죠. 그래서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워라밸을 유지하려면 거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절히 거절하지 못하면 워라밸이 무너지게 되겠죠. 거절을 하다 보면 일이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데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첫 번째 조건(능력 있는 사람이 되자)이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롱런을 하려면 저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제가 정한 시간에 집중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그 외의 시간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골고루 시간을 쓰길 바랄게요. 너무 욕심을 부리면 롱런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인터뷰] 안지예 “미국수의사로 한국 바이오 기업 돕는 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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