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일반인보다 평균 2.7배 더 자살 시도했다

미국 수의사 대상 조사 결과...의사보다 번아웃 지수 높아

등록 : 2021.04.09 09:14:42   수정 : 2021.04.09 11:55:09 이학범 기자 dvmlee@dailyvet.co.kr

최근 수도권의 한 동물병원 원장(여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의사의 낮은 삶의질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국내에는 관련 조사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머크애니멀헬스가 ‘미국 수의사 웰빙연구(http://vetwellbeing.com)’를 수행한다.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수의사는 미국의 일반 성인보다 2.7배 더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 대비 자살 생각, 자살 계획, 자살 시도 더 많아

자살 시도해 본 수의사, 2년전 보다 증가

머크애니멀헬스의 ‘2020 수의사 웰빙연구'(조사 참여 수의사 2871명)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수의사는 10만 명당 숫자로 환산 시 7,455명으로 미국 일반 성인(3,600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웠었던 수의사도 약 1.7배 많았으며(1,463명 vs 882명), 실제 사살을 시도했었던 수의사는 일반인보다 무려 2.7배 많았다(174명 vs 64명).

여성 수의사, 어린 수의사가 자살 생각 더 많이한다

미국 수의사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자살 생각을 더 많이 했다. 26~34세 수의사 중 11.1%가 최근 1년간 자살 생각을 해봤다고 응답했다. 35~49세는 8.9%, 50~64세는 4.3%였으며, 65세 이상에서는 2.7%였다.

여성 수의사(9.0%)도 남성 수의사(5.5%)에 비해 자살 생각을 하는 비율이 더 높았는데, 이에 대해 연구진은 “자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정신적 고통(심리적 스트레스)이다. 이 수치가 젊은 수의사와 여성 수의사에서 높게 측정됐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수의사 비율은 감소했으나, 실제 자살을 시도한 수의사 비율은 늘었다는 점이다.

자살 생각을 해 본 수의사는 2년 전 24.9%에서 21.9%로 3.0%P 감소했으나,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수의사는 1.6%에서 2.4%로 0.8%P 증가했다.

자살 생각은 여성 수의사가 더 많이 하지만, 실제 자살 시도는 남성 수의사가 더 많이 시행했다.

수의사의 번아웃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은 물론, 의사보다도 심한 수준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워라벨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수의사(39.5%), 의사(40%) 모두 일반인(61%)에 비해 낮았고, 자살 생각도 일반인보다 더 많이 했다.

그런데, 의사(2.24)의 번아웃 지수가 일반인(2)보다 평균 11.2% 정도 높은 데 비해, 수의사(3.1)는 55%나 높았다.

연구진은 “수의사는 의사와 비교했을 때 평균 근무시간이 더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번아웃 지수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수의사가 의사보다 근무시간 동안 더 큰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미국수의사회(AVMA)가 제공하는 수의사 웰빙 과정. 스트레스 관리, 직장 문화, 사회적 지원, 자살 예방 등을 다룬다.

그렇다면, 수의사는 어떻게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가족과 시간 보내기 ▲산책, 하이킹 ▲운동 ▲친구와 시간 보내기 ▲ 취미활동 하기 등의 활동과 재정 계획 수립, 정신건강 상담 등을 추천했다.

또한, 다양한 단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신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미국의 경우,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도 정신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협회의 역할도 강조했다.

연구진이 소개한 번아웃 예방 방법 중 하나는 미국수의사회(AVMA)가 제공하는 웰빙 과정이었다. 미국 수의사는 이 과정을 통해 스트레스 관리, 직장 문화, 사회적 지원, 자살 예방 등에 대한 내용을 배우고, 수료증도 받을 수 있다.

미국 수의사 웰빙 과정 : https://axon.avma.org/page/wellbeing-courses

한편, 수의사가 높은 번아웃 지수와 자살률을 보이는 이유는 다양하다.

수의사는 동물이 좋아서, 아픈 개·고양이를 치료하고 싶어서 수의대를 선택한 경우가 많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선 매우 바쁘고, 동물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요구와 항의도 경험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집에 가서도 진료 케이스를 떠올리며 푹 쉬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특히,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해 보호자의 불만 제기도 큰 스트레스다. 의료보험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불만이 더 많다.

돈에 대한 고민과 압박도 크다. 봉직 수의사일 때는 불만족스러운 보수로 고민을, 원장이 되면 병원 경영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여기에 동물의 죽음을 자주 경험하고, 직접 동물의 생을 마감(안락사)시켜야 한다는 압박도 크다. 한 외국 수의사는 “방금 안락사를 해서 매우 힘들고 슬프지만, 곧바로 얼굴을 씻고 나와 강아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웃어야 하는 직업이 수의사”라고 말한 바 있다.

안락사 약물이 가까이 있다는 점도 수의사의 높은 자살률에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