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관심부족·경직된 학제·변화동력 부재에 막힌 수의학교육

인증원·한수협 ‘OIE 권고 수의학교육’ 수용방안 모색..교육개선 막는 걸림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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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수의학교육 수준을 국내 수의과대학들이 달성하기 위한 변화가 시급하다.

교육개선의 걸림돌인 수의대 교수 책임강의시수, 예2-본4의 경직된 학제, 유사 교과목의 반복학습 문제 등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과 한국수의과대학협회가 공동주관한 ‘OIE 권고 수의학교육,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토론회가 9일 대전 아드리아호텔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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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E
권장 졸업역량과 국내 커리큘럼 비교..역학, 동물사양관리 등 일부 부족

한수협은 이날 토론회에서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권고하는 수의학교육 핵심역량과 국내 커리큘럼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OIE 권장 졸업역량은 비임상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OIE 자체가 가축전염병 검역과 방역, 축산물 위생 분야에 특화된 국제기구 때문이다. 수의 임상교육에 대한 권고는 각국의 상황에 따르라는 원칙 수준에 그친다.

21개 OIE 권장 졸업역량을 국내 수의과대학 커리큘럼의 전공필수 교과목과 비교한 한수협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역학, 생물통계학, 동물복지, 동물사양관리 및 축산경영, 수의윤리, 커뮤니케이션 등 일부 역량이 교과목 개설이 부족하거나 선택과목으로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OIE가 다루지 않는 임상분야의 결점을 더하면 한국 수의학교육의 내실문제는 더 커진다.

류판동 한수협 교육위원장은 “한국의 교육과정이 이미 OIE 권장사항을 대체로 반영하고 있지만, 일부 분야는 그에 맞는 교과내용의 분리와 성과평가법 개발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관심 없는 교수진, 책임시수 문제로 변화 걸림돌

이어진 각 대학 교수진의 패널토론에서는 국내 수의학교육 발전을 가로막는 여러 요인들이 총망라됐다.

먼저 제기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관심부족. 매번 관련 협의에 나서는 각 대학 학장단이나 일부 교수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수들이 아직도 수의학교육 변화에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커리큘럼 개편이 불이익을 발생시킬 때 극명히 드러난다.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것이 ‘책임시수’다.

각 교수가 일정 시간 이상의 강의를 담당하게 하고 이에 미달하면 불이익을 주는 제도인데, 커리큘럼 개편 과정에서 책임시수에 미달하게 되는 교수진은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홍범 전남대 교수는 “수의대 교수들의 책임시수가 교육개편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책임시수 문제의 해법으로는 의과대학의 방법론이 꼽힌다. 의대 교수진에 책임시수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같은 ‘의학계열’인 수의대에도 해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원대, 서울대, 제주대 등 일부 수의과대학은 이미 책임시수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

이은송 강원대 학장은 “담당과목 각각의 이해득실을 떠나 대승적인 개편에 동의하는 전면적 협조가 없다면 변화는 요원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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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과는 시간 없어 아우성인데 예과는 손도 못 대..비의도적 반복학습도 손봐야

학제의 유동성 부족도 문제다.

정주영 충남대 부학장은 “본4 로테이션을 도입하려다 보니 본1~3학년의 수업부담이 너무 증가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부 기초과목을 예과과정으로 넘겨 부족한 시간을 확보하고 싶지만, 예2와 본4를 확연히 분리한 현행 학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임상교육은 늘려야 하고, 책임시수 등의 반발을 우려해 기존 비임상 교과목을 줄일 수는 없고, 본과과목을 예과로 내릴 수도 없고, 결국 압축된 시간표에 학생들의 학업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건국대, 서울대 등 본4 로테이션을 도입한 모든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고홍범 교수는 “대부분의 수의대생들이 임상교육이 부족하다는데 불만이 많다”며 “독소적인 예과학제 조정에 10개 대학이 손잡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교과시간 부족이 화두인데도 정작 내용면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들이 비효율적인 반복학습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미생물학 교과목에서 다룬 병원체 동정을 공중보건이나 면역학에서도 또 배운다는 것이다. 중요해서 반복한다기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에 가깝다.

정주영 충남대 부학장은 “각 교수가 개별적으로 교과내용을 결정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반복학습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안동춘 전북대 교수는 “예과에 생물관련 과목 학점이 17점이나 되는데 여기서도 중복학습이 많다”며 “1~6학년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결국 교과목 중심에서 교육역량 중심으로 커리큘럼 구성의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해법으로 이어진다. 6년 교육과정을 통해 수의대생들이 어떠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를 구체화(졸업역량)한 후, 특정 역량을 언제 어떤 교과에서 다룰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교과목을 하나의 과(department)로 통합한 후 과별로 교육과정을 조정토록 하거나, 교과목별 통합실습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결국 변화동력은 국가시험
·인증..”국시 주최 대한수의사회로 이관해야”

박희명 건국대 학장은 “발전된 수의학교육 역량을 국가시험에 반영해야만 대학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상 실기교육을 강화하라고 말로만 권고하는 것보단, 가령 채혈을 못하면 수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없도록 국가시험에 실기과목을 추가하면 대학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의 효력은 의학계열에서 이미 증명됐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의사 국가시험에 모의환자 문진을 평가하는 CPX(임상수행능력평가시험)와 임상술기를 평가하는 OSCE(객관구조화진료시험)를 도입하자, 의과대학의 실기교육 강화로 이어졌다.

김옥경 대한수의사회장은 “정부가 주도하는 현행 수의사 국가시험은 무사고에만 수의학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며 “수의학 발전을 위해 국가시험의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 된 만큼 별도 조직이 담당할 수 없다면 수의사회라도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시험 변화에는 수의사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한수협 차원의 개선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흥식 인증원장은 “OIE가 권고하는 수의학교육 이행여부는 차후 국가 동물질병관리 수준의 척도로서 축산물의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OIE 권고 교육의 국내 도입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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