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그 10년 후⑥] 정태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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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여섯 번째 주인공은 정태성 수의사입니다.

수말수 집필 당시 어류/산업동물 분야 저자로 ‘미지의 세계, 물고기의 바다에 빠지다’ 편을 썼던 정태성 수의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경상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생동물질병학 교수로 근무 중입니다. 

수생동물에 대해 젊은 수의사들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에 참여했다는 정태성 교수님을 만나, 10년 전과 지금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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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책의 저자로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그 당시만 해도 수생동물에 대해 젊은 수의사들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졌으면, 그리고 절실하게 다가왔으면 해서 참여했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별로 없어서 아쉽다.

Q. 책 출판 이후 10년이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우리나라 양식장에서 수의사가 실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수의사가 고기를 아냐, 뭐를 아냐’ 등의 이야기와 함께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수의사한테 그런 얘기를 안한다. 수의사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연구, 백신개발 및 상용화 등 수의사가 뒤떨어지는 부분이 없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수의사가 전적으로 하지 못하고 시장을 만들지 못한 어정쩡한 과도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만약 우리 실험실이 없었다면, 현재 필드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들도 전부 철수했을 수도 있다.

Q. 경상대 수생동물 실험실이 특화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 같다. 그런데 경상대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수의계 전체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동물이라는 것은 척색동물부터 척추동물이다. 척색동물인 멍게, 성게부터 시작해서 그 위에 어류가 나온다. 그리고 어류, 양서류, 파충류가 수생동물에 포함된다. 그러고 나서 육상동물이고 조류가 있는 것이다. 즉, 수생동물 파트가 사실은 전체 동물의 70%정도를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수의계는 수생동물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즉, 수생동물 분야에서 수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한데, 과거부터 이어져 온 좁은 시야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젊은 수의사들에게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기초연구부터 예방까지 모두 중요한데, 현재는 임상만 너무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 수의학은 임상만 해서는 안 된다. 무턱대고 임상만 하면 절대 새로운 비전이나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

Q. 예민한 질문일 것 같다. 수생동물수의사와 수산질병관리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떠한 관계인가.

내가 수의과대학 교수가 된 지 15~16년이 지나도 제일 힘들고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건 정치적일 수도 있고 밥그릇 싸움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우선 수의사들이 반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수의사들이 동물병원, 공무원, 사료 회사 등 선배들이 터놓은 쉬운 길로만 진출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새로운 동물 분야 산업이 유행한다 해도 수의사들은 그 분야로 진출하지 않고 발도 못 맞춘다. 새로운 산업이 있으면 그에 따라 새로운 동물 질병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수의사가 직접 참여해서 역할을 하고 기여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재 수의사들과 예비 수의사들은 편한 길만 가려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7~80년대에 양식 산업이 붐을 일으켰지만 90년대까지 어느 수의사 하나도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지 않았다. 수의사들이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식업자·수산업자들이 자신들이 키우는 동물이 죽으니까 수의사들의 도움을 구한 것이다. 그 뒤에 다양한 마찰이 발생했고, 결국 수의사가 일정 부분을 내줘야 했던 거다. 물론 차이점은 수산질병관리사는 수산동물 영역밖에 치료 못하고, 수의사는 동물의학을 다루기 때문에 좀 더 넓은 범위의 처방이나 치료 가능하다는 점이다.

여하튼 이 질문은 이 질문으로만 끝나면 안되고, 수의사 전체 문제로 생각해봐야 한다. 수의사가 어떤 새로운 동물 산업이 생겨날 때 적극적으로 가지 않는 것이 제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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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좋은 말씀이다. 이건 어류 분야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수의사들이 크게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이야기 하는 거다.

결국 수의사가 편한 길을 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대가다. 물론 그렇다고 어느 수의사한테 “너 거기 가서 희생해라”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 말을 듣고 희생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이 문제가 굉장한 딜레마고 수의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다.

하나 예를 들면, 수의사는 꿀벌도 다룰 수 있지 않나. 그런데 곤충산업에 뛰어드는 수의사는 없다. 그러면서 곤충분야가 수의사 분야라고 얘기하면 지금 곤충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하겠나. 똑같은 일이 발생하는 거다.

Q. 10년 이상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실제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명감이나 자부심이 있는건가.

자부심은 내가 가질 필요가 없다. 그저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면 되고, 내가 남들을 인정해주면 되는 거다.

나는 지금도 우리 수의사들이 조금만 교육받으면 수생동물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폭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뒤 수생동물 분야에 진출하면 이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치료나 연구 등 새로운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늘 수의사들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따라올 수의사가 없어 아쉽다.

개인적으로 국제학회에서 인정받고 국내에서도 인정받고 노력하고 있지만, 혼자서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 안타깝다. 이제는 가능한 다른 일도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우리 수의학 분야에서 수생동물 분야 네트워크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

Q. 수말수 책에 ‘학부생 시절 전망이 있다는 판단이 서서 이 길을 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수생동물 분야의 비전은 무엇인가.

이 분야는 우리가 안하면 비전이 없지만, 우리가 하면 비전이 크다. 전체 지구의 4/5가 해양이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할 수록 해양 분야에 대한 개척과 연구가 더 활발해 질 것이다. 그럼 수생동물 분야도 함께 발전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의사가 참여해야만 비전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실험실에서 백신도 개발하고, 백신 접종방법도 연구하여 지금 넙치 백신 시장을 개척했다. 이런 식으로 수의사가 이 분야에서 희생하고 기여해야 비전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직도 전국에 있는 수의과대학들 중에서 수생동물을 담당하는 교수가 없는 대학도 많다. 모든 수의사를 반려동물 수의사로만 키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쉬운 부분이다.

분명하고 명확한 길은 요즘에 없다. 직접 길을 개척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해양수산부 등 정부 기관으로 진출해서 수의사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법도 있다.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그 10년 후⑥] 정태성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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