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⑤] 유도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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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출판된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도서출판 부키)는 반려동물 임상, 산업동물 임상, 검역, 수의 축산 정책, 공중 보건, 동물약품 개발, 전염병 연구, 야생동물 진료, 수의장교, 미국 수의사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22명의 수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 받는 책입니다.

많은 수의사 및 수의대 학생들도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이 책이 출판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에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에서 당시 책에서 소개된 22명 수의사분들을 다시 인터뷰하여 10년 후 모습을 살펴보는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이하 수말수) 그 10년 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그 다섯 번째 주인공은 유도현 수의사입니다.

수말수 집필 당시 수의과대학 동물병원 인턴으로 근무했던 유도현 수의사는 현재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임상교수로 활약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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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수의사에서 수의과대학 임상교수가 되기까지

1.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집필 당시 상황을 소개해달라.

책의 앞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에 실려 있다. 대학병원 인턴으로서 처음 겪게 되는 미숙함과 당황스러움, 하지만 꿈을 가지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풋내기 수의사”로 나와 있다.

2.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10년 후 인터뷰 시리즈에 대한 소감은?

정말 흥미로운 발상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수의학 수준도, 수의사의 진출도, 수의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독자들이 바뀐 세월을 공감하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3. 책 출판 이후 1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책속의 풋내기 수의사는 수의학 박사가 되고 유학생활을 하다가, 34살에 국립대 임상교수가 되었으니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수말수와 관련지어 인상 깊은 기억은 대학 입시 면접 때 학생들로부터 수말수 얘기를 들을 때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황당한 기억은 전남대에 처음 임용되었을 때 학생들이 나를 후배학생인줄 알고 말을 계속 놓았던 일이었다.

4. 취미는 무엇인가? (수말수 책에 농구와 게임이 취미라고 하셔서 궁금…)

재미있는 질문이다. 농구와 게임은 지금도 너무나 좋아한다. NBA구장에서 맨 앞자리에 앉아 선수들 땀냄새를 맡으며 소리 지르는 것이 꿈이었다. 미국 유학시절에도 학교 체육관에서 농구를 했었다. 지금도 가끔 학생들과 농구를 하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마 10분만 뛰어도 심장이 터질지 모른다. 대신 인터넷으로 NBA를 보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

게임은… (얘기를 해야 하나) 대학원 다닐 때까지도 게임을 즐겼다. (그 당시 좌우명이 ‘게임을 끊는 순간 나는 성공한다‘ 였다.) 석사까지 게임을 미친 듯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사과정을 밟으며 게임을 갑자기 거의 하지 않았다. 거짓말 같지만, 여전히 게임에 흥미는 있었는데, 논문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한 번은 지도 교수님께서 게임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수의학에 흥미를 느낀다면 게임하는 시간에 논문을 한편이라도 더 볼 거라고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그렇게 변했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게임을 하는 수의학도가 있다면 희망을 가지라고 하고 싶다.

5. 지금 하는 일을 소개한다면.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의진단검사의학(수의임상병리학) 조교수로 있다. 담당하는 과목은 임상진단학, 수의임상병리학, 소동물내과학, 소동물피부학을 담당하고 있으며 동일분야 반려동물 임상도 함께 하고 있다.

패혈증, 전신염증반응, 조직손상, 혈액응고, 수혈의학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아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6. 원래 꿈이 교수였나? 어떤 계기로 교수가 됐는지 궁금하다.

원래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석사를 하면서도 박사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석사 논문(고양이 빈혈)을 쓰면서 내 연구에 스스로 매료되어 박사까지 하게 됐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임상 수의학에 깊이 빠져 버렸는데 이건 아마도 지도 교수님의 영향이 제일 컸다고 할 수 있다.

임상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흥미로운 현상들, 진료를 하면서 피할 수 없는 어려운 증례들을 지도 교수님과 함께 풀어 가면서 한편으로는 잠을 못 이룰 만큼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셨다(지도 교수님은 교수의 위치에 있는 내가, 꿈꾸는 교육자의 롤 모델이다).

한 번은 진료를 하다가 전신염증(SIRS, systemic inflammatory response syndrome)이 너무 심해 간과 신장이 손상된 개를 마주쳤는데, 그 당시 나는 이 현상이 너무 신기했다. 그런 나를 보시고 다음날 지도 교수님께서 조용히 논문을 한편 던져 주셨는데 그 논문이 패혈증과 전신 염증 반응이라는 주제였다. 당시 내과 책에도 없는 생소한 부분이었는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몇 주 동안 이 분야 논문만 수십 편 보게 되었고, 결국은 박사 논문까지 쓰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무언가를 얻는다고 믿고 있다. 그 무언가를 얻을 때까지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지금의 내 자리는,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 라는 걸 우연히 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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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내 이야기를 해달라니 어떻게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과 그 결과가 다른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다고 학생들이 궁금해 한다. 그러나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요즘 표현으로 “흙수저”였다. 홀어머니가 당시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6년제 대학까지 졸업시켜 주셨다. 결혼 전까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었고, 가난이 부끄러워 친구도 집에 데려와 본 적이 없었다. 운이 좋게 지도 교수님을 잘 만나 전북대학교 수의내과학실에서 졸업 후 5년 반 만에 박사까지 마치게 되었다. 박사 마칠 때도 돈이 없어 논문을 몇 부 못 찍었던 기억도 난다.

당시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인데, 가난했지만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고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시카고 의과대학에 포닥으로 계약한 상태였지만, 수의대에 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러나 미국 임상수의학은 연구를 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수의대로 포닥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잡는 다는 말을 굳게 믿고 더 준비 했고, 그러는 와중에 나와 마찬가지로 패혈증에 관심이 있는 미국 교수와 연락이 닿았다. 만나기 전에 내가 그동안 했던 연구를 메일로 보냈고, 미국 수의내과학회(ACVIM forum)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학회장 복도에서 나란히 앉아 한 시간 가량을 노트북을 보면서 내 상품가치를 어필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교수로부터 너를 위해 조그만 funding을 만들어 둘 테니 일을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미국으로 가서 내 이름을 걸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임상 연구였기 때문에 매일 응급중환자(ECC, emergency and critical care)실에 출근하여 환자를 보게 되었다.

임상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라운드를 통해 처음으로 미국 임상을 접했을 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라운드 증례의 정답을 꽤 많이 맞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점은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기초 수의학을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질병을 설명해 나가는 부분은 정말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결론만 이끌어내는 교육을 받고 있었고, 기초 수의학을 응용해서 의학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학생들과 북클럽을 통해 공부하는 것이 있다면 생리, 생화학, 해부조직병리학 등의 기초 수의학이다. 진단과 치료는 경험에 의해 실력이 늘 수 있지만 폭넓은 발전을 하려면 넓게 공부해야 한다.

미국에서 임상과 연구 외에 한 일도 꽤 많았다. 소동물내과, 종양, 말 내과 등 4-5명의 교수와 레지던트, 인턴을 위주로 sepsis/SIRS모임을 조직해서 1개월에 한 번씩 교수 집에서 정기적인 토론회를 가졌다. Phi-zeta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인턴과 함께 말의 패혈증에 대해서 발표도 했다. Research scholar프로그램의 mentor가 되어 학생과 함께 패혈증에 관한 새로운 과제도 진행했고 발표도 했다. 주말에도 ECC로 출근했다.

그렇게 수의대에서 24개월을 하고 나니 패혈증에 대한 연구 욕심이 더 생겼다. 그러다가 하버드의대와 뉴저지의대에서 함께 일을 해보자는 연락이 왔고, 고심 끝에 그 쪽으로 지원하게 됐다. 이 후 개 실험을 하기 위해 뉴멕시코 주의 호흡기 연구소로 옮겨 실험을 준비했고, 보스턴에 있는 지도 교수와 하루에도 2-3번씩 전화로 미팅을 하면서 과제를 기획했다. 그러나 2013년도에 갑작스레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개 실험을 준비했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조금 미안했었다.

나는 비록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긴 했지만, 6년의 학부시절, 5년 반의 학위 과정과 4년 반의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며 쉬운 길도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욕심을 내서 한 가지를 더 하려고 했던 노력이 내 삶을 살찌웠던 것 같다. 아마 교수가 되지 않았어도 나는 뭔가를 계속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꿈이 있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구나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 기사를 통해 학생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8. 대학 부속 동물병원 (2차 진료 동물병원)의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중환자와 응급이라고 생각한다. 상위 의료기관으로서 일반적인 대학병원의 역할은 대부분 많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많은 기능 중 많은 임상가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가 바로 응급중환자관리 분야이다. 1차 병원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간과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남대에서 조금씩 그 역할을 넓혀가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대학 병원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몸은 힘들지만 환자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너무 즐겁다. 나와 학생, 병원 그리고 대학의 역량을 올릴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최선을 다해 생명을 살리는 10년 후의 대학 동물병원을 그리며 묵묵히 일한다면 목적지에 가깝게 다가 갈 거라고 믿고 있다.

9.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혹은 전남대학교 동물병원)에서 요구되는 역량이나, 향후 전망에 대한 견해는?

내부적인 문제가 없는 곳은 세상에 없으니 100점이 아닌 우리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단점보다 우리 대학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최근 우리 병원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재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임상 교수들의 협진이 이끌어 낸 시너지 효과의 결과이다.

또한 학생들도 단합이 잘 되고 생각이 깊다. 단언컨대 향후 유능한 임상 교수가 몇 명 더 충원된다면 최고의 수의과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와 목포, 여수, 순천과 같은 전남 대도시들 사이에 호남 거점대학인 전남대가 중심에 서 있다. 대학 본부가 얼마나 도와주고 임상 교원이 언제, 얼마나 충원되느냐는 단지 그 시점만 다르게 할 뿐이다.

10. 학부생시절에 생각했던 미래와 현재를 비교해본다면?

내가 임상을 할 줄은 몰랐었다. 뭔가 학술적 흥밋거리를 찾으며 살 것 같다는 생각은 했으나 학교에 이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을 줄도 몰랐다.

임상 수의학이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이렇게 멀리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성이 요구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로 수의학 수준이 계속 올라간다면 결국은 전문성이 더 강하게 요구될 것이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당연히 변해야 하겠지만 학문적 전문성은 멈추지 말고 향상 되어야 한다.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는 ‘수의학’이라는 길에 선구자가 되느냐 남의 뒤를 따라가느냐는 자신이 행동하기 나름이다.

11.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빨리 자아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수의학의 넓은 영역 중 내가 좋아할만 한 것이 무엇인가를 빨리 찾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 네이버에 물어봐서는 절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부딪혀야 한다. 그 때 찾는 것이 전문가이고 선배이다.

학생들은 방학 때마다 쉬지 말고 무언가를 경험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정체성을 찾았으면 재미있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과 걱정은 재미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당 분야 최고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12. 교수, 혹은 수의사로서의 자신의 사명감과 신념은 무엇인가?

대학원 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내 신념은 “모든 대답은 pubmed에 있다”이다. 임상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내 과학적 배경 지식이 생명을 살릴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경험에 의존하는 진료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과학적 배경 지식에 근거한 임상은 본인만의 귀중한 “자산”이다.

13.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이나 계획이 있으신지?

전국 최고 수준의 반려동물 중환자 센터를 만들고 싶다. 많은 중환자를 보고 싶다. 더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대학병원 시스템에 들어오면 누구나 자연스레 전문가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응급중환자 분야에서 실력 있는 수의사들이 하나씩 생길 것이고 우리 수의학은 좀 더 발전할 것 같다.

14. 본인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수의학 전망은?

앞서 말한 대로 임상수의학이 보다 전문화 될 것이다. 청진기 하나로 진료했던 예전과 달리 분야별 전문성이 훨씬 강해졌다. 자연스레 전문가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수의학을 배우는 학생은 임상을 단순 진료로 생각하면 성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임상 분야 중 수의 응급중환자의학은 아직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응급중환자학회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아주 인기가 많아졌다. 죽어가는 생명이 내 노력으로 살아 돌아간다면 임상가로서 그보다 더한 보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임상 수의학이 앞으로 좀 더 전문화가 된다면 응급중환자 분야는 전문화의 핵심 분야중 하나가 될 것이다.

15. 끝으로, 교수님과 같은 임상과목 교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 임상을 과학적으로 접하라. 절대 근거 없는 의학을 하지 말라.

2. 임상의 전문성은 의외로 의학적 기초 지식에서 나온다. 임상이라고 해서 임상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응용과학의 진정한 힘은 기초 의학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3. 인생의 장기목표, 단기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달려가라. 그리고 단계별 목표를 하나씩 체크해 가면서 반드시 이루어라. 작심삼일이면 삼일마다 한 번씩 작심하자.

4.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는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라.

5. 마지막으로 ‘외유내강’해라. 임상을 하다보면 자칫 권위주위에 빠지거나 까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은 아주 단단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라. 전문성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결과물이지 밖으로 표출되는 모습에서 나오지 않는다.

김지후 기자 seezchlos@dailyvet.co.kr

[수의사가 말하는 수의사, 그 10년 후⑤] 유도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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