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사람 오가며 암·치매 잡는다, 중개의학 주목

정밀의료·인공지능 등 사람 기술 반려동물 적용도..임상시험 관리할 수의임상연구위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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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며 암, 치매 등 난치성 질환을 함께 겪는 반려동물에 대한 중개의학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반려동물에서 검증한 신약후보물질을 임상시험에 적용하고, 사람에서 발전한 최신 치료전략을 반려동물 환자에 도입하는 등 둘 사이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반려동물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윤리적인 시험환경을 담보하기 위한 관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실험동물학회가 28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2021년도 동계심포지움에서는 반려동물 중개의학 세션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2021 실험동물학회 동계심포지움, 최경철 교수 발표자료)

반려동물에서 사람으로, 신약 개발 확률 높일 중개의학 주목

조제열 서울대 교수는 “반려견은 사람과 환경을 공유하면서 수명이 짧아 환경적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개에서 사람과 동일한 경향성이 있는지 관찰해 사람에서의 질병발생을 예측할 수 있다”고 지목했다.

반려견 10만 마리 당 800여마리에서 암이 발생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유선암, 흑색종, 방광암 등 사람과 유사한 암종이 다양하게 발병한다.

반려견 환자가 실험동물에 비해 사람에서의 임상시험을 더 잘 예측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실험동물에서는 유전자 변형 등으로 인위적으로 암을 일으키는 것과 달리, 사람과 함께 살며 자연적으로 발생한 암이기 때문이다.

2017년 설립된 충북대 반려동물 중개의학 암센터는 이 같은 접근법을 구체화하고 있다.

최경철 충북대 교수는 “반려견의 종양모델은 자연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사람과 비슷한 종양도 많다”며 “사람에서의 임상시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수의과대학 대부분이 참여하는 비교종양학임상시험 컨소시엄(COTC)가 운영되고 있다. 동물병원과 수의과대학이 반려동물 종양환자의 조직병리학적 자료와 유전정보 등을 공유한다.

충북대 반려동물 중개의학 암센터도 종양환자로부터 조직을 받아 병리분석과 유전자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 교수는 “아직 청주·대구 등지에서 연간 100여 케이스를 확보하는 수준”이라며 “종양 샘플 수집을 체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약 개발을 위한 반려동물 중개의학 연구는 암뿐만 아니라 치매와 같은 난치성 질환에도 적용된다.

지앤티파마가 개발 중인 치매치료제 신약후보물질 크리스데살라진은 반려견에서 임상시험을 거쳤다.

사람의 치매와 유사한 인지장애증후군(CDS)을 앓는 반려견 6마리를 대상으로 크리스데살라진을 투약한 결과 인지기능과 행동학적 변화가 크게 개선됐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를 소개한 문재봉 한국수의정보 대표는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가족 모두가 고생하듯 반려견의 CDS는 가족들의 삶의 질을 낮춘다. 새벽에 짖는 등의 행동으로 이웃과의 분쟁까지 초래되는데 임상시험을 통해 증상이 개선되어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전했다.

 

사람에서 반려동물로, 암 표적치료·영상진단 인공지능 등 신기술 도입

이와 반대로 사람에서의 치료전략을 반려동물에 도입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이날 실험동물학회에서는 건국대 수의대가 시도하고 있는 종양 표적치료와 인공지능 영상진단 연구를 소개했다.

윤경아 건국대 교수는 건국대 동물병원에서 시도하고 있는 종양 표적치료를 소개했다.

윤 교수는 “사람에서는 이미 항암치료에서 표적치료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관련 바이오마커 개발도 활발하다. 원발 종양의 유전적 변이를 임상적으로 반영해 치료 방향을 정하는 정밀의료”라며 “수의 분야에서도 이 같은 성과를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에서 연구된 종양의 바이오마커나 표적치료제는 적지만, 개체별로 종양조직을 분석해 보다 효능이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항암제를 선택하는 방식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 후지 방사선 사진에서 무릎관절과 슬개골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개발
(실험동물학회 2021 동계심포지움, 엄기동 교수 발표자료)

엄기동 건국대 교수는 건대 수의대와 공대가 함께 개발 중인 반려견 무릎관절 진단을 위한 인공지능 개발 연구 경과를 소개했다.

사람에서는 이미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영상진단 AI 개발이 수의분야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개 흉부 방사선 사진을 활용해 심장질환 증상을 잡아내는 연구결과가 이미 보고되고 있다.

엄기동 교수팀은 개의 후지 방사선 사진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켜 무릎관절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 10종을 구분해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무릎을 구성하는 뼈의 모양과 상대적 위치를 분석해 형태학적 이상을 잡아내는 방식이다.

이미 후지 방사선 사진에서 96% 정확도로 슬개골을 구분하고, 슬개골 탈구 환자의 진단 정확도를 86%까지 끌어올렸다.

엄기동 교수는 “수의과대학은 인공지능 학습과 테스트에 쓰이는 영상자료를 검증하고, 공과대학이 AI 개발을 담당하는 식으로 협업하고 있다”며 “올해 중반이면 10대 증상에 대한 AI 개발이 완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려동물 환자 임상시험 늘어날 것..관리체계 확립해야

실제 반려동물 환자를 통한 연구가 점차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윤주 서정대 교수는 “국내에서는 소유주가 있는 반려동물의 임상시험이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의 심의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지 아직 불명확하다”면서 임상연구를 심의할 수의임상연구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질병에 걸린 반려동물은 사람이나 동물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다. 건강한 반려동물도 사료나 기능성식품 개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날 조윤주 교수에 따르면, 미국수의사회는 수의임상연구위원회(VCSC)를 두고 임상연구를 감독하고 있다. 임상시험 참여를 결정하기 전 반려동물 소유주에게 관련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반려동물에게 아직 효과가 분명치 않은 신약후보물질을 투약하는 등 기존에 확립된 표준적인 임상치료를 벗어나는 내용의 연구라면 IACUC 심의도 받아야 한다.

조윤주 교수는 “반려동물 임상시험은 적절한 수의학적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환자의 복지수준을 저해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소유주에게만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지목했다. 참여를 결정하는 것은 소유주이지만, 정작 실험대상이 되는 것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질병치료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동물에게도 도움이 되는 형태의 혜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윤주 교수는 “반려동물 임상연구가 윤리적이고 적절히 수행할 수 있도록 모범사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연구의 질을 입증하고 연구수행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수의임상연구위를 만들어 IACUC와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 사람 오가며 암·치매 잡는다, 중개의학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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