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보험 수가와 타 직종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낳은 안타까운 논란

노모 전 의협 회장 SNS에 게재된 병원·동물병원 진료비 비교 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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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서 매년 5월은 중요한 달이다. 수가협상 시기이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2017년 수가협상 체결을 위해 공급자단체 실무진들과 인사를 나눴고, 16일부터 본격적으로 단체별 수가협상을 시작한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대한약사회 등 공급자단체들도 수가협상단 구성을 완료하고 협상을 준비 중이다. 수가협상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최근 사람 진료비와 동물병원 진료비를 비교한 글이 인터넷 공간에서 큰 논란을 낳았다.

전 의협 회장 노 모씨는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는, 적어도 개나 고양이를 치료하는 행위보다는 더 큰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 의사들이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이다”라는 글과 함께, 한 2차 동물병원의 고양이 진료비 금액을 공개하고 초진료, 일반혈액검사, 뇨검사, 흉부방사선, 복부초음파 등 9개 항목에 대해 사람 진료비(본인부담금+보험공단 부담금)와 고양이 진료비를 비교하는 표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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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씨가 직접 작성한 글은 아니었고 공유한 글이었다. 하지만 노 씨의 SNS는 팔로워만 13,000명이 넘을 정도로 큰 파급력을 갖고 있었고, 해당 글은 200건 이상 공유되고 다른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지는 등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런데 표의 일부 내용이 논란이 됐다. 

사람 진료와 다른 ‘동물 진료의 특수성’과 모든 진료과목이 사실상 비급여인 ‘동물병원의 진료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해당 동물병원의 금액만으로 사람 진료비와 고양이 진료비를 숫자로 비교했기 때문이다. 노 씨가 공유한 표에 따르면 고양이 진료비는 사람 진료비에 비해 항목당 2배에서 최대 50배까지 비쌌다. 

실제로 일부 네티즌은 “의사들은 소변검사만 고양이 수가 받으면 재벌 되겠네” 등의 조롱 섞인 의견을 남겼으며, 한 언론사에는 별도의 상황 설명 없이 <동물과 사람 진료비 비교, 의사들 ‘자괴감’> 제목의 기사까지 게재했다.

하지만 표의 내용은 일반인으로 하여금 크게 2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첫 번째 오해는 모든 동물병원의 진료비가 사람 진료비보다 비싸다는 오해이며, 두 번째 오해는 동물병원이 사람 진료와 같은 의료 행위를 하고도 더 비싼 금액을 받는다는 오해이다. 수의사들은 직접 노 씨의 글에 댓글을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2차 동물병원 진료비 VS 급여항목의 사람 진료비 비교, 과연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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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사람 진료비는 두가지로 나뉜다. 보험청구 대상이 되는 ‘보험급여 진료비’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비’다.

보험급여 진료비는 입원인지 외래인지에 따라, 또한 병원 규모, 나이, 지역에 따라 본인 부담률이 차등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비급여 진료항목은 환자 본인 부담률이 100%이며, 병원별로 비용 차이가 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최근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 2만5084건을 조사한 결과, 병원별 가격 차이는 평균 7.5배였으며, 최대 17.5배까지 차이가 났다.

이번 노 씨의 글에서 비교 대상이 된 항목 중 하나인 ‘복부초음파 검사비’ 역시 급여항목으로 포함되기 전인 2011년에는 3.5만원에서 26.9만원까지 병원별로 차이가 났다.

비급여 진료비 차이에 대한 지적에 대해 의사들은 “각 병원의 가진 다양한 변수를 고려치 않은 단순 진료비 비교는 잘못된 것”, “진료비 책정은 의사의 경험과 실력, 검사장비의 수준과 감가상각, 병원의 위치와 지역별 차이, 인건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 등의 의견을 제시한다.

노 씨의 글에서 진료비 비교 대상이 된 동물병원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2차 동물병원이다.

병원의 규모, 수의사의 경험과 실력, 검사장비, 인건비 등에서 다른 동물병원보다 진료비가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차 동물병원의 진료비와 (정해진 수가가 있는)사람 진료비를 비교하면서 <초진료 : 사람/고양이 = 1/5, 뇨검사 : 사람/고양이 = 1/40> 등의 표현을 쓴 것은 오해의 소지를 제공한 것이라는 평이다.

“평균 진료시간 더 길고, 추가 보정 및 마취·진정이 필요한 동물 진료는 사람 진료와 다르다”

또한, 동물 진료는 사람 진료와 달리 특수성이 존재한다. 방사선 촬영을 예로 들면, 사람의 경우 지시에 따라 환자가 자세를 잡고 움직이지 않지만, 동물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추가로 동물을 보정할 인력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사선 촬영을 위해 진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문진의 경우에도 동물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를 대상으로 아픈 동물의 증상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사람 진료보다 자연스레 시간이 더 오래걸리고 추가 검사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즉, 같은 항목의 진료라 하더라도 동물병원에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항목 별로 진료비를 비교한 것 역시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심초음파학회장은 한 의학전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심초음파는 심장수축력·판막협착·압력차 등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심장의 형태와 기능을 모두 확인해야 하므로 전문지식과 인력·시간이 더 소요된다”며 심초음파 급여가 일반 복부초음파 급여와 동일하게 측정된 것에 대해 “보험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료의 내용이 다르면 진료비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급여 항목에 대한 수가도 진료 내용에 따른 차등이 필요한데, 동물 진료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진료과목이 비급여인 동물병원은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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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대한의사협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재된 만평 그림

사람 진료비와 동물 진료비 비교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12월, 노 씨가 의협 회장일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료 저수가 문제를 언급하며 “캐나다에서 개 백내장수술을 시키는데 8천불(우리돈 1천만원)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고도로 숙련된 안과 전문의가 1억원의 고가장비를 들여 사람의 백내장을 수술할 때, 76만원을 받는다. 백내장 수술을 위해 6~8년의 의과대학 과정과 1년의 인턴과정, 4년의 전공의 과정을 거친 의사에게 강아지 치료보다 더 나은 대가가 주어지는 게 정당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논란이 커지자 “전국의 수의사 선생님들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의료관광 세일즈, 한국으로 오세요! 개 진료비 보다 싸요’라는 제목의 만평이 올라와 논란이 됐었다. 해당 글에는 ‘사람 진찰비보다 강아지 진찰비가 더 비싼 의료현실, 웃기지만 슬픈 우리의 현실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2014년 11월에는 한 의학전문시간 주간 웹툰에 ‘수의사가 대세다’라는 제목의 웹툰이 게재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웹툰에는 주인공이 내과 진료를 받은 뒤 3천원의 진료비를 지불하고, 주인공의 고양이가 동물병원에서 같은 진료를 받고 100만원의 진료비를 지불한 다음, 소개팅 자리에서 의사보다 수의사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웹툰의 원저작자였던 의사 서 씨는 웹툰 내용이 논란이 되자 “수의사 선생님들께 사과말씀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게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낮은 보험 수가와 타 전문직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낳은 안타까운 사건

양 직종에 대한 불신과 무분별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편, 이번 사건을 두고 “낮은 보험 수가와 타 전문직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낳은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의견이 많다. 

노 씨는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고 했느냐?”며 “우리나라의 사람의 치료비(수가)가 그만큼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제 메시지에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를 드리겠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제게 과한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정중한 사과를 요구한다”고 전했다. 

수의사 A씨는 “의료보험 수가가 터무니 없이 낮다는 점에 동의한다”며 “다만, 비교는 동등한 조건에서 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노 씨의 글 게재 목적은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낮은 우리나라 보험 수가에 대한 지적’ 이었고, 수의사들 역시 낮은 수가에는 동의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수의사·의사로 추청되는 네티즌들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남기며 서로를 헐뜯고 있다. 논점을 벗어난 채 무분별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외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급여 수가는 대부분 낮다. 일부 항목은 미국, 영국 등에 비해 수십배 이상 수가가 낮다. 게다가 ‘보장성 확대’를 앞세운 정부가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면서, 관행수가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으로 수가가 결정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급여 항목이 늘어나면서 의료인은 손해를 보고 민간보험회사만 반사이익을 본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거기에, 건강보험공단이 재정적으로 최대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것이 수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낮은 상황이라, 의료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우리나라의 낮은 의료 수가와 타 전문직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가 낳은 안타까운 해프닝이다.

노 씨는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구하는 행위를 고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의사들은 수의사들에 대해 동지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에도 “의사와 수의사는 귀한 생명을 책임지는 전문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관계”라고 밝혔다.

사람의 건강, 동물의 건강, 환경의 건강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이 각광받고 있다.

UCLA 의료센터의 심장학 전문의 바바라 네터슨(Barbara natterson)은 “수의학적 지식들이 의학계에 적용됐다면 많은 환자들이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며 “우리 의사들은 이제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수의사들과 함께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두 직종은 서로 협력할 여지가 많다.

이번 논란이, 서로가 상대방 직업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지, 상대방 직종에 대한 불신과 무분별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것이 중론이다.

낮은 보험 수가와 타 직종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낳은 안타까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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