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 졸업 후 5년 안에 30%의 수의사가 번아웃 된다

공감피로 겪는 수의사...지원프로그램 절실

등록 : 2018.09.28 09:41:23   수정 : 2018.09.28 21:28:45 이학범 기자 dvmlee@dailyv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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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의사의 자살률은 의사보다 2배 이상 높고 치과의사보다 2배 가까이 높으며, 일반 국민보다는 약 4배 높다(Stoewen 2016, Bartram&Baldwin 2008).

수의사의 삶의 질과 웰빙에 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제43차 세계소동물수의사회 콩그레스(WSAVA 콩그레스 2018)에서 수의사 웰니스 세션이 운영됐다. 강사들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수의사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하며, 대중을 대상으로 수의사 직업의 고충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리학자가 수의대에서 무슨 일을 할까?

첫 번째 강사로 나선 닝크 엔덴버그(Nienke Endenburg, 사진) 박사는 심리학자이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다.

심리학자가 수의대에서 어떤 일을 할까?

닝크 엔덴버그 박사는 수의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동물행동학’, ‘동물복지’, ‘동물학대’ 등에 대해 강의한다. 수의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특히 중요하다. 보호자·농장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동물병원의 규모가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병원 내에서 다른 수의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수의대에서 엔덴버그 박사의 역할 또한 많아지고 있다.

엔덴버그 박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바로 ‘수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의대생이 적지 않다.

참고로 현재 네덜란드에는 수의과대학이 1개(위트레흐트 대학)뿐이며, 학년당 학생 수는 225명이다. 6년제로 운영되며, 신입생의 여학생 비율은 95%에 이른다고 한다.

“1~5년 차 수의사 중 30%가 번아웃 증후군 겪는다”

“수의사는 영화배우…. 힘들어도 웃어야 하는 직업”

수의사가 겪는 어려움은 ▲긴 업무 시간 ▲힘든 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발생 ▲불충분한 휴식 등이다.

엔덴버그 박사는 “퇴근 시간 5분 전에 응급환자가 오기도 할 정도로 수의사는 근무시간 준수가 어렵다”며 “수의사는 그만큼 역동적이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보호자를 상대하면서 겪는 고충도 크다.

“가격이 비싸다. 돈 벌려고 수의사 하냐”는 말과 함께 치료를 거부하거나 “수의사는 동물을 사랑하는 직업이니까 무료로 치료해주세요” 등의 요구를 종종 받는다.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건강한 동물의 안락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엔덴버그 박사는 “보호자 편의에 의한 안락사 요구를 거부하자, 동물병원 앞에서 총 쏴서 개를 죽일 것이라고 협박한 보호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의 토끼를 입원시킨 보호자가 1시간마다 전화를 해서 토끼의 상태를 묻는 일도 있다”며 “수의사는 동물을 사랑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면 안 되고 동물 치료를 위해 개인의 삶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젊은 수의사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 힘들게 다가온다. 엔덴버그 박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 수의대 졸업 후 5년 안에 30%의 수의사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

번아웃 증후군(탈진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특히, 1년 차 수의사들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이기 때문에 동물이 죽었을 때 매우 힘들어하고, 특정 상황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엔덴버그 박사의 설명이다.

동물을 안락사할 때 겪는 스트레스도 크다.

강의에 청중으로 참여한 한 수의사는 “방금 안락사를 해서 매우 힘들고 슬프지만, 곧바로 얼굴을 씻고 나와 강아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웃어야 하는 직업이 수의사”라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또 다른 청중 역시 “수의사는 영화배우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고, 일하기 싫어도 보호자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병원 내 스텝들, 동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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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피로 느끼는 수의사

수의사는 슈퍼맨…너무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 역할 요구…그러나 정신적·신체적 고통 회복할 시간 부족

수의사의 ‘번아웃’ 예방 위해 사회적 지원과 멘토링 프로그램 필요

이처럼 수의사는 공감피로(compassion fatigue)를 겪는 직업이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에덴버그 박사는 “수의사는 아름답고 숭고한 전문가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건 매우 어려운 것”이라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자원을 많이 쓰는데 회복할 시간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번아웃되면 회복하는 데 수 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고, 아예 (임상이 아닌 다른 쪽으로) 분야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어린 수의사들이더 쉽게 번아웃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수의사는 어떻게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고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을까?

에덴버그 박사는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사회적 지원이란 친구, 가족, 동물병원 동료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고민해봤자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힘듦을 털어놓으면, 실제 문제 해결은 안 될 수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 에덴버그 박사의 주장이다.

이런 사회적 지원은 병원 안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어려웠던 케이스, 자신을 힘들게 했던 보호자에 대한 경험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이고,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수의사가 “나도 지난 주에 그 보호자를 만났었어.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될거야” 등의 실질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에덴버그 박사는 “문제가 생기면, 그 즉시 혹은 그 날이 지나기 전에 친구·동료에게 말하고 조언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에덴버그 박사는 “수의사를 대상으로 한 평생 멘토링/상담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특히 졸업 후 1~5년차 수의사들을 위한 멘토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반 대중에게 수의사의 고충 알려서, 존중을 바탕으로 수의사를 대하도록 해야”

심리학을 전공한 매시대학교 수의과대학 비키 림(Vicky Lim) 학생 역시 “수의사협회가 ‘수의사에게 맞는’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고, 성공적인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의사의 고충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비키 림 학생은 “수의사로서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말하면, ‘수의사는 돈 많이 벌잖아요’, ‘수의사는 쿨한 직업이잖아요’, ‘저도 수의사가 되고 싶어요’ 등의 대답이 돌아온다”며 “수의사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 지 보호자들이 알아야 하고, 보호자들이 존중을 바탕으로 수의사를 대하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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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AVA 설문조사에 참여해주세요

한편, 세계소동물수의사회(WSAVA)는 현재 수의사의 정신건강과 웰니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한 수의사 중 일부에게는 2019년 캐나다에서 개최되는 WSAVA콩그레스 무료 참가 기회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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