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아일랜드 수의사가 신부가 되어 한국에 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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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가면 ‘성이시돌목장’이 있습니다.

이 목장은 1954년 4월 콜룸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제주도에 온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가 가난한 제주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드넓은 황무지를 목초지로 개간하여 1961년 11월 성 이시돌의 이름을 따서 중앙실습목장으로 건립한 목장입니다.

창립자인 패트릭 제임스 신부님은 수의사였던 아버지가 많은 농가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어릴 때 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에, 선교사가 된 이후에도 자연스레 농가를 돕는 일에 앞장서게 되셨다고 합니다. 1973년에는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으며 ‘임피제’라는 한국이름도 받았습니다.

목장의 이름 또한 스페인의 소작농이면서 동시에 성인이었던 성 이시돌(St. Isidore)에서 따왔습니다.

패트릭 제임스 신부님이 83세가 되던 3년 전에는 마이클 리어던 신부님이 이시돌 재단의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셨는데요, 마이클 리어던 신부님은 원래 아일랜드의 수의사였습니다. 마이클 리어던 신부님은 아일랜드에서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었지만, 한국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고 합니다.

데일리벳에서 ‘공기 맑은 제주도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살 생각이 없다’는 마이클 리어던 신부님을 직접 만나 아이랜드의 수의사가 신부가 되어 한국으로 온 이유와 성이시돌목장(이시돌재단)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마이클리어던이사장_성이시돌목장1
마이클리어던 이시돌 재단법인 이사장
그는 원래 아일랜드 수의사였다.

Q. 원래 아일랜드 수의사였다. 어떻게 한국에 오게됐는지 궁금하다.

1978년에 수의사가 되자마자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래서 봉사활동도 하고 수의사로서 실습·경험도 하기 위해 이시돌 목장에 오게됐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이시돌 목장에서 근무했다. 아무래도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적다보니 자연스레 성경책도 많이 읽게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본 국에 돌아가 신학교에 입학을 한 뒤 신부가 되어 선교사로서 다시 한국에 오게됐다.

한국에 다시 온 것은 1986년이었다. 처음에는 신림동 빈민가 등에서 빈민구제 활동과 선교활동 등을 펼쳤으며, 그 뒤에도 한국 여기저기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10년 전에 다시 이시돌 목장으로 오게 됐다.

Q. 한국에 온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엄청 반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그 나라를 돕고 싶으면 차라리 돈을 보내주면 된다’면서 공항에 갈 때 까지 반대하셨다. 친구들 역시 ‘수의사가 되기 위해 5년 동안 아일랜드에서 어렵게 공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한국에 왜 가냐’ 하면서 반대했다.

사실 외국에 나갈 생각은 별로 없었다. 친구들이 ‘영국에 가서 수의사를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것도 반대했었다. 당시 나도 한국에 왜 가냐는 질문에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외국에서 선교생활을 하는 것이 어릴적부터 바라던 꿈도 아니었고, 두려움도 많았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 맞았던 것 같다. 한국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내 생각에는 자기한테 맞는 일이면 마음이 그걸 아는 것 같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음식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었는데, 한국 오니까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게 됐다. 한국에 오는 것이 나한테 맞는 일이었던 거다. 기자 분도 아직 결혼을 안하셨는데, 결혼 할 여자라면 딱 느낌이 올 것이다(웃음).

성이시돌목장3

Q. 성이시돌 목장에 대해 설명해 달라.

창립자인 패트릭 제임스 신부님이 1954년 선교사로 제주도에 왔다. 당시 제주도는 일제강점기 이후 4·3사건과 6·25전쟁을 겪으며 굉장히 척박하고 어렵게 살 던 시절이었다. 당시 제주도 주민들은 변소에서 ‘똥돼지’를 기르고 있었는데, 이 돼지를 자유롭게 먹지못하고 경조사 때 잡아먹거나 돈이 급할 때 파는 수단으로만 사용했다. 패트릭 제임스 신부님께서 그걸 안타깝게 여기고 “돼지를 제대로 길러 팔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이라며 육지에서 요크셔 품종의 임신한 암퇘지 한 마리를 가지고 왔다. 암퇘지를 데리고 인천에서 목포까지 기차로, 다시 목포에서 제주까지 배를 타고 가져온 것이다.

이 돼지가 후에 제주 양돈산업 발전의 시발점이 됐다. 지금도 제주 양돈농가의 절반 이상인 120여 농가가 한림읍에 위치해있다.

그렇게 가져온 돼지를 기르고, 분양하면서 돼지를 직접 기르기 시작한 것이 ‘성 이시돌목장’의 시초다. 돼지를 번식시켜서 분양해주고, 돼지 기르는 방법도 같이 공부하면서 알려주고 했다. 원래 농장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지역 주민들을 위해 실습농장이 탄생해 버린 것이다. 지역 주민의 자립을 돕고자 실습을 시키고, 실습이 끝나면 축사를 만들어주고 20마리의 돼지를 무상으로 빌려줘 키우게 했다.

1961년에는 이시돌 협회가 만들어졌고, 이후 사료공장도 지었으며, 지금은 목장 이외에 어린이집, 청소년 교육센터인 ‘젊음의 집’, 성인 교육시설 ‘피정센터’, 수녀원, 요양원, 호스피스 병원 등이 있다. 호스피스 병원은 100%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목장에는 말 130두(소유 70두, 위탁 60두)와 비육소 350두, 낙농 900두 정도 있다. 돼지는 지역 주민들에게 모두 분양하고 지금은 키우지 않는다.

상주하는 수의사는 없으며, 육지에 있는 2명의 수의사 분들이 번식/발굽치료 등을 위해 정기적으로 우리 목장을 방문하고 있다.

Q. 호스피스 병원을 무료로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목장과 사료 공장을 통해 얻은 수익과 후원금 등으로 호스피스 병원을 비롯한 다른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사실 쉽지가 않다.

무료로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목장, 공장 등에서 수익이 잘 나와야 한다. 후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무료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잘 나와야 하는데, 농업법인이 아니라 재단법인으로 등록되어 국가지원사업을 잘 못받는 등 어려움이 많다.

또한, 젊은 사람들도 점차 목장에서 일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 재단이 비영리법인이고, 다른 복지 시설들도 많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목장도 잘 되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직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현재 목장 직원은 30명 정도 있고, 전체 재단에는 120명 이상의 직원들이 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마이클리어돈유투브
마이클 리어던 이사장님을 소개한 유투브 동영상.
`6000 miles from home`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국제학교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Q. 수의사 출신인데 직접 진료를 보지는 않나?

이사장으로서 너무 바쁘다(웃음).

목장 외에도 이시돌 법인 내에 시설이 많다보니 이사장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단, 수의학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고, 이게 제대로 된 치료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도 있고, 사양관리 등에도 조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직접 치료는 못한다. 외부에서 수의사 분이 왔을 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안다는 장점도 있다.

Q. 수의과대학을 포함해, 학생들의 실습도 많은 편인가?

학교를 통해서 실습 요청이 오는 경우도 있고, 미국 수의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의사가 실기 시험 대비를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방학 기간에 실습을 온 학생도 있었다. 사실 실습생을 받으려면 우리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하고, 실습비도 줘야하고, 적응시켜야 하는 등 고민이 많지만, 재단법인으로써 사람을 교육시키고, 누군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방문한 실습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돕고 있다.

Q. 앞으로 이시돌 재단의 계획은?

제주도의 모습을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자연생태는 줄어들고 높은 건물이 많이 늘었다. 따라서 할 수 있다면 자연·생태를 유지하는 일을 하고 싶다. 목장을 운영하면서 자연도 보호하고,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힐링’되게 하고 싶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이시돌목장을 ‘교육·생태목장’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목장 안에 테쉬폰 건물이 남아있는데, 작은 건물이지만 거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또 이 주변을 산책하면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아마 손대지 않는 그런 부분에 사람들이 감명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한 힐링메카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여러가지 계획을 몇 년전부터 세우고 있다.

성이시돌목장4_테쉬폰
이시돌 목장에 있는 테쉬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으며,
최근에는 웨딩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Q. 끝으로 한국 수의계에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한국 수의학 교육은 실습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실습기회가 부족하다 보니 우리 목장으로 실습을 요청하는 수의사/학생들도 많은 것 같다.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필드에서 많은 경험을 쌓길 바란다. 또한, 경험을 해야 내 적성을 알 수 있다. 수의사들 중 3개월 일해보고 진로를 바꾸거나, 1년 정도 해보고 분야를 바꾸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실습이 중요하다. 또 실습을 할 때 대충대충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장 실습을 나왔을 때도 직접 똥 치우고 사료 주는 일부터 해서 적극적으로 나서 경험해보길 바란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따라가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또 학생일 때 공부만하지 말고 시간있을 때 조금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수의사라고 수의학 공부만 하지말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라. 그러면 더 좋은 수의사 될 수 있다. 그리고 돈만 쫓지 마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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