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수의내과학 저자 에팅거 교수 ´언제 배움을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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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임상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수의내과학(Textbook of Veterinary Internal Medicine)」의 대표저자인 스티븐 에팅거(Stephen J. Ettinger) 교수가 10여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에팅거 UC Davies 석좌교수는 평생을 동물병원에서 임상수의사로 활동해왔습니다. 소동물내과학과 심장학 스페셜리스트(전문의)로서 1971년 미국 최초의 스페셜리스트 임상그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70을 훌쩍 넘긴 노년의 나이에도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고, 나는 이번 강연으로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에팅거 수의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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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만난 스티븐 에팅거 교수

Q. 한국에는 처음 온 것인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10여년 전 쯤에 한국에서 컨퍼런스 강의를 한 적이 있다.

Q. 1964년에 코넬대 수의대를 졸업한 후 소동물 임상수의사로서 50년을 활동하셨다. 수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나는 언제나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코넬대 수의과대학에 진학했을 당시 원래 목표는 대동물 임상수의사였다. 진학 전부터 젖소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Q. 그렇다면 수의과대학 재학 중에 반려동물 임상으로 목표가 바뀐 것인가.

그렇다. 수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 됐을 때, 내가 소동물 임상을 더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수의과대학에 들어온 것은 동물에 대한 의학적 관리를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수의과대학에서 배우다 보니 대동물 임상은 내가 꿈꾸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한정된 숫자의 질병을 다루고, 질병을 치료할 기회도 한정적이었으며, 가축의 집단적인 사양관리(Herd Management)에 보다 특화되어 있었다.

학생시절에는 소동물 임상이 보다 임상과학적인 기반을 가진 분야라고 느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내가 학생일 때는 몰랐지만, 대동물 임상도 과학에 기반한 분야다. 환축 개개에 집중하기 보단 가축군 전체의 건강상태에 집중할 뿐이다.

수의대생 개개인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수의학적 지식을 습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학생은 개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또 어떤 학생은 1마리보단 1만마리를 다루고 싶어 하는 것이다.

Q. 두 가지 분야의 전문의라고 들었다. 몇 십 년 전인 당시에는 지금보다 전문의가 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1970년대 초반, 소동물 내과학과 심장학에 대한 전문의가 됐다. 소동물 임상분야의 전문의는 당시 미국에서도 새로운 분야였고, 전문의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다.

나는 뉴욕의 애니멀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브롱크스 재향군인청 병원의 인의 심장의학 박사후 펠로우쉽을 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었다.

그 후 1971년 다른 전문의 3명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버클리 수의학 그룹(Berkeley Veterinary Medical Group)을 만들었다. 미국 최초의 전문의 그룹이었다.

Q. 「수의내과학」 책도 그 무렵 집필하신 걸로 알고 있다.

처음 집필했던 책은 「개 심장학(Canine Cardiology)」였다. 이 책이 최초의 전문의 서적(Specialty Textbook)이었다.

개 심장학을 출판한 회사는 원래 인의학 책을 주로 발간하던 곳이었다. 그 회사가 내게 ‘내과학’에 관한 책을 써볼 것을 제안했다.

그 출판사에게는 단순한 사업거리였겠지만 나에게는 무언가를 ‘최초로 해볼 기회’였다.

Q. 지금이야 ‘수의내과학’이 소동물 내과학의 바이블로 읽히고 있지만, 그럼 교수님께서 학생이셨던 1960년대에는 어떻게 내과학을 공부했나?

당시에는 주로 인의학 책이나 기초과학 책을 활용했다.

내 소동물 내과학 교수님은 로버트 커크(Robert W. Kirk)였다. ‘Kirk’s Current Veterinary Therapy’를 집필하신 분이다. 날 가르쳤던 당시에는 아직 책을 출판하진 않았지만, 그 자료들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 분은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자, 내 임상의학의 멘토였다.

Q. 다시 전문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한국에는 아직 전문의(스페셜리스트) 제도가 없다. 수의 임상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수의사가 전문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에서는 언제 수의학 분야에서 전문의제도가 생겼나? 한국이 전문의 제도를 만든다고 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내가 전문의가 된 1970년대 초반 무렵, 전문의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병리학이나 미생물학 등에서 시작되어 내∙외과 등 임상분야로 확대됐다.

박사(PhD)와 전문의(Specialist)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박사는 연구에, 전문의는 임상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미국 수의학 전문의의 목표는 인의학 전문의와 같다. 환자를 다루는 것이다.

박사학위와 전문의 타이틀을 모두 가질 순 있지만, 박사과정과 전문의과정을 동시에 밟을 수는 없다. 그 둘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문의제도를 도입한다면 전문의를 훈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 수의사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 해외로 건너가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 그 전문의들이 한국에 돌아와 다른 전문의를 양성하는 것이다.

한국인 수의학 전문의는 이미 있다. 나도 한국인 영상의학 전문의와 같이 일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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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여의도 63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두라문 런칭 심포지움’에서 강연하고 있는 에팅거 교수

Q. 지난 주말 ‘두라문 백신 런친 심포지움’에서 백신 관련 강의를 하셨다. 미국(3~4주 간격, 3차)과 한국(2주 간격, 5차)의 반려동물 백신 접종 프로토콜 차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5차에 걸친 접종은 너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That’s too much).

백신접종 후 면역을 형성하는데 3~4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중간에 추가로 백신을 접종하면 간섭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백신접종으로 면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횟수보다는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Q. 동물병원이 이미 일반화된 백신 접종 방식을 줄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백신 접종 횟수를 늘려 이익을 본다기 보다는, 내원 시 병행하는 검사(examination)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 보호자가 동의할 수 있도록 만족을 주면 된다. 백신을 맞으러 얼마나 많이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의학적 검사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접종을 할 때 보호자와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그러면서 동물에 대한 신체검사나 병력청취를 철저히 하고 영양학적 관리, 행동학적 관리 등 여러 수의학적 조언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면 보호자들은 더욱 만족하고, 청구할 수 있는 진료비도 줄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검사를 통한 추가적인 진료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수의사’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펫샵이나 약국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차별점이 있다.

Q. 백신 접종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수의사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소동물 임상은 ‘사람을 다루는 직업(People Profession)’이다.

많은 수의사들, 특히 젊은 수의사들은 ‘동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수의학, 특히 소동물 임상은 소아의학(pediatrics)와 노인병학(geriatrics)를 합친 것이다.

내원한 보호자와 이야기하고 교육하고 토론해라. 그렇게 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우리 수의사들이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문제의식이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의식이란 ‘수의사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판매(sell)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접종행위에 진료비를 청구할 생각만 하지 말고,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용품만 사고, 약만 살 것이라면 가격이 저렴한 마트나 약국에 가지 동물병원에 올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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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의 소유자들이 약을 구해다가 직접 진료할 수 있는 ‘자가진료’가 문제가 되고 있다. 비수의사가 수술을 한다고 쳐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오늘 (인터뷰를 진행한 여의도의) 호텔 37층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서울 시내의 아파트들을 봤지만, 거기에 사는 누가 과연 동물을 ‘수술’할 지는 의문이다. 마취제나 구할 수 있겠느냐

Q. 한국에서는 동물용 마취제를 약국에서 수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다. 물론 우리들도 비수의사가 ‘수술’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백신접종이나 심장사상충예방, 피부병에 대한 자가치료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많은 브리더(Breeder)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단미술이나 단이술 같은 수술을 직접 하기까지 한다. 그런 (자가진료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인의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프다면서 허브를 사다가 동종요법을 하는 사람도 많다.

Q. 미국도 자가진료가 허용되어 있다는 말인가?

약에 따라 다르다. 어떤 약은 수의사처방이 필요하고, 어떤 약은 약국에서 그냥 팔기도 한다(OTC, Over The Counter).

다만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약재들이 OTC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수의사들의 수입이 위협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미국의 수의환경도 크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

수의사로서, 전문가로서 내원한 보호자에게 무엇을 더 제공해줄 수 있느냐의 물음 말이다.

Q. 미국의 수의사들도 자가진료로 인한 갈등이 있나

언제나 있다(Always).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다. 몇 년 전 병원에 찾아온 한 보호자에게 ‘백신 접종 스케쥴이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해주니, 그 보호자가 ‘내 브리더는 다르게 하라던데요’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내가 ‘당신이 아기를 낳으면 브리더는 누구냐’고 물었다. 사람으로 치면 남편이 브리더다.

그렇다면 아기가 아플 때 소아과 의사에게 갈 것인가, 아니면 남편에게 달려가서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물어볼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이런 문제를 놓고 내원객과 논쟁을 벌일 때면 나는 그냥 선택지를 던진다. “그럼 브리더에게 가시던지요. 그 브리더가 어느 수의대를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브리더가 하는 이야기 중에 맞는 것이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수의사들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진료한다.

물론 매번 그런 보호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냥 ‘다음 환자를 봐야 해서요’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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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에팅거 교수는 ‘내원 보호자가 내 병원을 추천할 것인지’의 기준이 동물병원 운영에서의 필수 불가결 요소(SINE QUA NON)라고 강조했다.

Q. 소동물 임상수의사로서 50여년을 활동해오셨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동물병원을 만들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신다면.

동물병원에 찾아오는 보호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내원객이 증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얼마나 내원객이 많은지 보다는 그 숫자가 ‘늘고 있는 상태인지’가 더 중요하다. 수의사로서 내원한 보호자의 충성심을 높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연구와 조사 결과가 있지만, 결국 동물병원장이 던져야 하는 질문은 하나다.

“보호자가 내 병원문을 나선 후, 그의 지인들에게 내 병원을 추천해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를 기준으로 동물병원 비즈니스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하루나, 한 달이나, 일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성공적인 임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나와 같이 일했던 파트너는 이 기준을 ‘SINE QUA NON’이라고 말하곤 했다. 라틴어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뜻이다.

Q. 수의과대학에 다닐 때 학생들이 ‘모르면 에팅거 찾아봐’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많은 임상수의사의 멘토로서 젊은 수의사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한국말로 ‘감사하다’고 말하며) 나를 ‘멘토’라고 호응해줘서 감사하다.

하지만 나도 수의 임상의 모든 분야를 다 알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수의내과학」도 나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집필한 책이다.

오히려 전문의로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알아가게 된다.

엊그제만 해도 두라문 런칭 심포지움에서 그랜트 배켓 박사와 같이 일하고 토론하면서, 면역학과 백신에 대해 더 배우게 됐다. 질문을 주고 받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강연에 찾아온 한국의 임상수의사로부터도 배웠다.

한국의 수의사 여러분들이, ‘수의사’라는 직업을 위해서, 전문성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셨으면 한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이번만 봐도 미국에서는 독립기념일 연휴기간이었지만, 혼자 가족의 품을 떠나 한국에 와서 강연을 했다. 물론 무엇이 옳은가는 딱 잘라 규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훌륭한 가족과 훌륭한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수의과대학을 졸업했기 때문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학위는, 면허는 그냥 다음 날을 위한 앙트레(entrée)일 뿐이다. 그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우리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당신들이 나에게 배웠다기 보다는 내가 당신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언제 배움을 멈출 것인가?”

*에팅거 교수와의 인터뷰를 주선하고 통역을 맡아 주신, 비아동물행동클리닉 김선아 원장님과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 이비함 과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인터뷰] 수의내과학 저자 에팅거 교수 ´언제 배움을 멈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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