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犬)플란트는 없다’ 수의치과협회, 개·고양이 치아 임플란트 반대 천명
여러 번 마취 부담 큰데다 과학적 근거 미흡..임플란트 고민한다면 ‘발치가 정답’
한국수의치과협회(회장 김춘근)가 개·고양이에서의 치아 임플란트에 대해 경고장을 날렸다.
높은 성공률로 자리 잡은 사람과 달리 아직 개·고양이에서는 치아 임플란트의 안전성·효능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고, 치료부담 대비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김춘근 한국수의치과협회장은 “개·고양이에서 치아 임플란트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수의치과협회의 공식 입장”이라며 “해외 수의치과전문의들도 치아 임플란트를 권장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에선 90~95% 성공률, 개·고양이에서는 아직 근거 없어
심한 치아 손상이나 치주질환으로 인해 빠진 치아를 대체하는 임플란트는 사람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관련 장·단기 연구에 따르면 사람에서 치아 임플란트 성공률은 90~9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람 치과에서 대체로 성공하는 치료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니, 반려동물에서도 치아 임플란트가 보다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서의 성공 공식을 개·고양이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의 수의치과전문의, 사람 치과의사를 포함한 전문가 9인이 2013년 미국수의학회지(JAVMA)에 발표한 ‘개와 고양이의 치아 임플란트 사용 반대 사례’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개·고양이에게 치아 임플란트를 시술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직 개·고양이에서 치아 임플란트의 안전성·효능에 대한 연구결과가 충분치 않은데다, 임플란트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잠재적 위험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사람 임플란트 개발 과정에서 실험견에 대한 동물실험이 다수 진행됐지만, 이를 근거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했다.
실험견들은 실제 환축과 달리 치아가 손실되게 만드는 치과질환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3~6개월가량의 실험기간이 끝나면 안락사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공률을 가늠할 수도 없다.
저자들은 “구강 위생 상태가 좋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저작이나 과도한 교합 하중이 있는 반려견에 대한 치아 임플란트의 효능·안전성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낮다”며 “고양이에서도 치아 임플란트에 대한 장기 효능 및 안전성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6년과 2017년 수의치과학회지(Journal of Veterinary Dentistry)에 개 1마리·고양이 2마리에 치아 임플란트를 시술한 증례가 각각 발표된 정도다.
4~5번 전신마취하면서 임플란트?
수의치과협회 ‘현재 단계에서 동물에 이롭지 않은 치아 임플란트 적용은 반대’
23일 본지와 만난 한국수의치과협회 김춘근 회장은 “지금도 한 달에 1~2회는 (개·고양이에게) 치아 임플란트가 가능한지 문의가 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아 임플란트는) 보호자가 보기에 좋을 수 있고, 수의사가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치료를 받는 동물에게는 이로울 게 별로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개·고양이에 치과 시술을 하려면 반드시 전신마취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목했다. 임플란트를 실제로 시도하려면 적어도 4~5차례에 걸쳐 마취를 동반한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술상의 부작용 위험이나 치료비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람에서 높은 성공률이 동물에게 그대로 적용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사람에서도 임플란트 시술부위 주변에 염증 부작용이 흔한 만큼 시술 후 잘 관리하는 것이 핵심인데, 임플란트가 필요할 정도로 치아건강에 문제가 있던 개·고양이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춘근 회장은 “동물에게 치아 임플란트 적용할 때 여러 번의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처럼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관리할 수 있어서 임플란트주위염증(perimplantitis)의 발생 빈도도 낮은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된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임플란트를 할 과학적인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고 잘라 말했다.
개·고양이는 일부 혹은 전체 이빨이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고, 사람과 달리 심미적인 요인을 크게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김춘근 회장은 “최근 사람 치아 임플란트 제조사들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동물치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동물에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일부 동물병원에서 치아 임플란트를 이미 실시하거나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가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이제껏 힘들게 쌓아 올린 한국수의치과 저변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 한국수의치과협회가 선제적으로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수의치과협회는 일선 동물병원과 보호자들이 치아 임플란트에 대한 오해를 덜 수 있도록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하고, 추후 보호자 세미나 등을 통해 인식을 높일 계획이다.
한국수의치과협회 저널클럽이 번역한 ‘개와 고양이의 치아 임플란트 사용 반대 사례(JAVMA, 2013)’는 수의치과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