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못 채우니 기준을 낮추나” 농식품부, 가축방역관 업무 축소 추진 ‘논란’

‘처우개선 대신 대체’ 2023년 비(非)수의사 가축방역관 논란 3년 만에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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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가축방역관 업무 범위를 축소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해 시설·차량 점검이나 단순 행정 업무는 비(非)수의사 일반직 공무원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업무는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으로도 일반직 공무원에게 맡기는데 법적인 문제는 없다. 법조문에서 가축방역관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가축방역관 적정인원이나 정원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원 미달에 대한 지적이 거듭되는데, 처우개선은 지지부진하고 모집이 늘지 않으니, 채워야 할 정원 자체를 낮추려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대한수의사회는 농식품부가 제안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반대했다. 일선 수의직들도 ‘처우개선이 먼저’라고 지적한다. 우연철 집행부가 제안한 ‘3·6·9’ 해법을 먼저 관철하거나, 적어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창 창궐하는 와중에 갑자기 개정안을 꺼내 사흘 만에 의견을 요구한 행태를 두고서도 반감이 표출됐다.

3월 26일(목) 대한수의사회 이사회에서 발언하는 우연철 회장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은 3월 23일(월) 전국 광역지자체와 대한수의사회를 대상으로 가축방역관 업무 범위 축소 조정을 골자로 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안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개정안은 ▲가축 거래 기록이나 출입기록 ▲소독·방역시설 운영 ▲방역기준 준수 여부 등에 대한 점검 주체를 현행 ‘소속 공무원·가축방역관·가축방역사’에서 ‘소속 공무원’으로 변경한다.

검사·예찰·시료채취 등 동물을 직접 다루거나, 가축전염병 발생농장에서 살처분한 가축이나 오염물을 처리하는 등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업무만 가축방역관의 고유 업무로 남겨두겠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공공 수의인력이 지속 감소하고 있어 방역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축방역관 업무 범위 조정이 필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진의는 다른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축방역관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는 점을 두고 국회와 언론의 질타가 이어진데 대해, 처우를 개선해 모집을 늘리는 대신 정원 자체를 낮춰 부족분을 줄이려는 밑작업을 벌이려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가축 또는 가축의 알의 출입 또는 거래 기록을 열람·점검하는 주체를 현행 ‘소속 공무원 또는 가축방역관’에서 ‘소속 공무원’으로 변경한다. ‘소속 공무원 또는 가축방역관’이라는 조문에서 알 수 있듯 이미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도 일반직 공무원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개정안은 ‘가축방역관’이라는 주체를 법조문을 굳이 삭제한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이유다. 법 개정에 근거해 가축방역관 적정인원과 그에 따른 수의직 정원을 축소 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민간 전문인력을 방역에 활용하기는 오히려 더 까다로워진다. 개정안에서 공무원인 가축방역관은 ‘소속 공무원’에 해당하니 영향이 없지만 공무원이 아닌 가축방역관, 즉 공수의가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거는 사라진다.

우연철 회장은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에 대해) 공수의 등 민간 전문인력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수의를 늘리고 역할을 키우겠다면서, 정작 가축전염병예방법 상의 활동 근거는 도리어 축소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방역 업무현행개정비고
소독시설 및 방역시설 기록 점검소속 공무원, 가축방역관, 가축방역사소속 공무원가축방역관 삭제
출입기록 확인소속 공무원, 가축방역관, 가축방역사소속 공무원가축방역관 삭제
방역기준 준수 여부 확인가축방역관소속 공무원가축방역관 삭제
축사 등 소독소속 공무원, 가축방역관, 가축방역사소속 공무원가축방역관 삭제
정부의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 주요 변경 사항

대한수의사회는 26일(목) 센트럴파크 분당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관련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우연철 회장은 “수의사 면허를 기반으로 공무원이 된 분들이 이럴 수 있나 화가 난다”며 “중앙 정부의 수의사 공무원이 지방직 공무원과 공수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의직 공무원에 대한 처우개선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집행부가 공직 처우 개선 원칙으로 천명한 ‘3·6·9(동물위생시험소 3급 기관+수의직 6급 임용+수의사 특수업무수당 월90만원)’부터 관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공무원 가축방역관이 부족하다고 비수의사로 대체하기에 앞서 민간 수의사를 가축방역관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지목했다.

남기준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정책위원장은 “수의사는 접종, 채혈 정도만 하라는 식”이라며 공수의가 해야 하는 역할과 사회적 지위 모두 축소시키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일선 지자체 수의직 공무원에게서는 절망감마저 포착된다.

지자체 수의직 공무원 A 씨는 “가축방역관이 적다고 지적을 받으면 ‘어떻게 수의사 숫자를 늘릴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다른 직역으로 돌릴까’만 생각하는 건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수의직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미 시군의 수의직은 업무 조정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붕괴했고, 시도에서도 일반직 비중이 높아지면 수의조직이 축소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승진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얘기다. 승진이 더욱 어려워지면 신규 유입은 더 줄어들고, 신규자가 없으면 승진이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심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A 씨는 “현직에 있는 수의직에게도 ‘너희들은 왜 아직도 안 나가니?’라며 빨리 나가라고 떠미는 느낌”이라며 수의사 대체가 입법화되면 시도 동물위생시험소의 붕괴까지 머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6·9’로 제시된 실질적 처우개선을 수의사 대체 입법에 앞서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수의사회의 제안처럼 동물위생시험소를 3급 기관으로, 최초 임용직급을 6급으로 상향해 승진 환경을 개선하고, 수당을 공중방역수의사 방역활동장려금 수준인 월 9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여 임상수의사와의 소득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A 씨는 “수의직 공무원 기피·이탈이 더 심각해지면 결국 반려동물 임상의 레드오션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공직 처우개선에 대한 수의계 전반의 적극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남기준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정책위원장

의견 조회 자체가 ‘답정너’식 요식행위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농식품부가 전국 광역지자체와 대한수의사회에 의견을 조회하는데 할애한 기간은 3월 26일(목)까지 단 사흘이다. 기간 내 응답이 없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그것도 ASF와 고병원성 AI가 창궐하는 와중에서다.

남기준 농장동물정책위원장은 “사흘 만에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내게 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도 전에 농식품부 보도자료를 통해 이미 확정된 것처럼 발표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식품부는 24일(화) “수의 전문인력(가축방역관)은 검사·진단·예찰 등 수의 전문 분야를 집중 수행하도록 하고, 이외에 소독, 가축처분·매몰지 관리, 관련 예산 집행 등 방역 행정업무는 일반직 공무원과 분담할 수 있도록 한다”며 “가축전염병예방법 등 관련 제도 정비를 통해 일반 공무원이 현장 방역업무에 폭넓게 참여하도록 하여 방역 인력 부족 여건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수의사회는 공직·농장동물 임원진을 중심으로 급히 반대의견을 추려 기간 내 회신했다. 공공 수의인력이 감소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때문인 만큼 처우 개선이 먼저라는 것이다.

오는 31일(화)로 예정된 농식품부 주관 회의에서도 관련 대응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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