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병원은 비급여 진료 전 가격 설명 의무화‥수의사법 여파 우려

비급여 진료비 현황조사에 의원급까지 포함..의사협회 반발

등록 : 2021.01.13 05:04:05   수정 : 2021.01.13 10:12:42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동네 의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비급여 진료를 실시할 경우 그 가격을 사전에 반드시 직접 설명하도록 의무화됐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해 공표하는 비급여 진료비 현황조사 대상에 의원급까지 포함되면서 대한의사협회가 반발하고 있다.

동물병원은 사람의 비급여 진료와 마찬가지로 병원이 직접 가격을 설정한다. 동물 진료비 사전고지제, 공시제를 도입하려는 수의사법 개정 움직임에 여파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병원별로 공개되는 비급여진료비.
올해부터는 동네의원까지 조사공개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동네 의원 비급여도 사전 설명 의무화..심평원 홈페이지에 가격 공개도

대한의사협회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및 직접 설명 의무화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지 11,054장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고 11일 밝혔다.

지난달 복지부가 2021년 1월부터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조사 대상을 당초 병원급에서 의원급 의료기관까지 확대하고,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를 실시하기 전에 항목·가격을 사전에 직접 설명하도록 관련 고시를 개정한데 반발하면서다.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가격이 정해진 급여항목과 달리 비급여항목의 진료비용은 각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정한다. 동물병원 진료비와 마찬가지로 라식수술이나 치과임플란트, 체외충격파치료 등의 비용은 각 병원별로 다르다.

이 같은 사람의 비급여 진료비용은 기존에도 사전에 고지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비급여진료 항목과 가격을 적은 책자를 환자 대기공간에 비치하거나, 병의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식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의료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며 사전설명의무가 추가됐다. 비급여 진료를 실시하기 전에 항목과 가격을 직접 설명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수술, 수혈 등 지체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진료 후 설명하도록 예외를 뒀다.

정부는 “환자의 알 권리 및 진료 선택권을 높이기 위해 비급여 진료 전 설명제도를 실시한다”며 “환자가 진료의 필요성과 비용을 고려하여 해당 비급여 진료를 받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정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해 주요 비급여 항목의 비용을 의료기관별로 조사해 매년 공개하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도 확대된다. 지난해까지는 규모가 큰 병원급 의료기관만 공개했다가 올해 동네 의원급까지 포함된다.

올해 공개 대상인 비급여 항목의 개수는 615개다. 라식, 라섹, 모발이식, 치과임플란트, B형간염·일본뇌염 예방접종 등이 포함된다.

가격 사전설명이 의무화된 비급여 진료도 조사 대상 615개 항목과 동일하다. 하지만 환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공개대상 항목 외의 비급여 진료도 설명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모든 비급여를 포함하고 있다.

결국 동네 의원의 비급여 진료 상당수의 가격은 심평원 홈페이지에도 공개되고, 사전 설명도 의무화된 셈이다.

정부가 제시한 비급여 진료비 사전설명 확인서 예시

비급여 진료하기 전 동의서 작성? 의협 ‘행정부담 규제일변도’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현재도 환자가 설명을 요구하면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며 “의사에게 각종 비급여 설명의무를 추가로 부담시키는 것은 법적의무를 지나치게 많이 부과하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 행정직원 등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사전 설명을 담당할 수 있도록 했지만, 행정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급여 진료비용 설명을 진행했다는 사실에 대한 동의서 작성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설명 여부를 두고 추후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설명 의무를 어길 경우 시정명령이 부과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만큼,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문제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의서 작성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정부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확인서 서식까지 제시했다.

최대집 회장은 “사실상 이미 비급여 정보 공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설명 의무화는 영세한 의원급의 행정부담으로 진료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11일 비급여 진료 규제 강화에 반발하는 서명을 전달한 최대집 의협회장(왼쪽)

사람병원도 하는데..’ 수의사법 개정 논의 여파 우려

문제는 의료계의 이 같은 움직임이 동물 진료비를 둘러싼 수의사법 개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번 국회에서도 동물 진료비의 사전고지 의무화, 진료비 공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수의사법 개정안이 거듭 발의됐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수의사법 개정안의 정부 입법 발의를 눈앞에 두고 있다.

향후 법안 심의 과정에서 ‘사람병원도 하는데 동물병원은 왜 못 하냐’는 식의 주먹구구식 주장이 힘을 더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병원에서는 이 같은 항목별 가격공개 제도화가 시기상조란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의료계는 비급여 진료의 종류를 중·소·상세분류로 체계화해 코드화하여 공개·설명 의무화의 토대로 삼고 있지만, 동물진료의 항목은 아직 체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수의사회도 동물진료비 관련 제도 논의 전에 진료항목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올해 관련 연구용역 예산 4억원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