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청수콘서트] 대동물·소동물 임상 수의사들이 전하는 그들의 발자취
임상 분야 선배 수의사들이 전한 진로와 성장의 조언
제10회 청수콘서트가 8월 22일(토)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를 주제로 열렸다.
대동물임상 분야에서는 전은우 수의사(서울대학교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와 이희운 수의사(마리동물의학연구소)가, 소동물임상 분야에서는 엽경아 수의사(청주고려동물메디컬센터 심장센터)와 이진민 수의사(라라동물의료원)가 강연을 펼쳤다.

<내가 생각했던 대동물 수의사, 그리고 현실> – 전은우
다채로운 이력이 만든 나만의 가치관
임상 부문은 서울대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 전은우 수의사의 강연으로 포문을 열었다. 전은우 수의사는 호주와 프랑스에서 보낸 학창 시절, 한국에 돌아온 후 학원가에서 일했던 경험 등 다채로운 이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신만의 가치관을 나눴다.
‘룰아웃(Rule out)’을 통해 선택한 커리어…잘하는 것에 집중할 때 생기는 것들
어떠한 커리어를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전은우 수의사는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 것보다 못하는 것을 골라내는(Rule out) 것이 훨씬 빠르다”며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을 고를 필요는 없다. 잘하는 것을 파고들다 보면 흥미와 수익이 따라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전망과 적성을 고려해 진로를 찾아간 자신의 경험을 전하면서 “일이 자신과 맞는지도 중요하지만, 일에 따라오는 삶이 만족스러운지도 중요하다”며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동물 수의사라고 대동물만? 기초적인 소동물 진료 역량도 놓치지 말아야
대동물 수의사의 장단점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전은우 수의사는 대동물 수의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로 반려동물 임상에 비해 정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흔히 대동물을 3D 직업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런 기피 현상이 대동물 업계를 블루오션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측면을 조명했다.
그러면서, 대동물 수의사라도 소동물에 대한 기초적인 진료 역량을 갖춰야 하는 ‘mixed practice’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대동물에만 갇히지 않는 유연한 태도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축우 디지털 의료와 인공지능 기술> – 이희운
소동물 수의사는 전자차트를 쓰는데…대동물은 왜?
마리동물의학연구소 이희운 원장은 ‘축우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공지능 기술’을 주제로 진행했다.
이 원장은 국내 최초로 대동물 임상용 전자차트(EMR)를 만들었던 경험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전자차트(EMR) 체계가 잘 구축돼 있는 반려동물 임상과 달리, 몇 년 전까지 대동물 현장은 코팅지에 수기로 기록하거나 비표준화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머물렀다. 이로 인해 진료 히스토리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웠고, 데이터는 연속성을 잃었다. 착유기나 바이오캡슐 등 기존 장비에서 수집되는 데이터 역시 기기 간 데이터 연동 문제와 낮은 범용성으로 인해 실제 수의사의 진료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원장은 직접 국내 최초 대동물 전자차트 프로그램 ‘크로니클(CHRONICLE)’을 개발했다. ‘축우 진료 용어의 표준화’를 위해 국제 표준 온톨로지(Ontology) 기준을 도입해 표준화된 코드 번호를 부여하고, 정형 데이터 기반의 축우 전용 EMR 체계를 구축했다.
데이터 통합 플랫폼 ‘카우크로니클’…목장 맞춤형 진단 보조
현재는 인공지능까지 접목한 데이터 통합 플랫폼 ‘카우크로니클’까지 개발했다.
카우크로니클은 이기종 착유기 데이터와 축산 공공데이터 등을 자동으로 수집·통합해 개체별 실시간 위치를 추적하고, 유생산량 및 최적 사료 급여량 예측 알고리즘을 구동한다.
최신 버전인 카우크로니클(v3)은 축적된 농장 데이터와 자동으로 연동돼 목장의 현재 상태를 요약하거나 유방염 위험 개체를 찾아 진단 보조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분석 결과를 제공한다.
‘카우크로니클’의 큰 무기, 비정형 데이터 분석으로 정밀도 더해
비정형 데이터 분석 영역에서도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카우크로니클은 AI CCTV 분석 기술을 통해 개체별 행동 패턴을 24시간 분석할 수 있다. 또한 분변 이미지나 보행 영상을 통해 설사 유형과 파행 증상까지 정밀하게 감별해 낸다.
무엇보다 카우크로니클이 범용 AI와 비교해 갖는 강점은 ‘초음파 진단 보조 시스템’이다. 난소 초음파 영상에서 난소, 황체, 난포를 라벨링해 학습시키고, 수의사가 현장에서 초음파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AI가 번식 상태를 예측해 진단을 돕는다.

수의사 부상 위험 줄일 대동물 의료의 미래, 피지컬 AI
이처럼 현재의 축우 AI 기술은 진단 영역에서 수의사를 보조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 원장은 향후 축우 의료가 나아갈 다음 단계로 ‘피지컬 AI’ 기술을 제시했다.
피지컬 AI는 진단을 넘어 물리적인 진료 업무를 돕는 기술로, 진료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대동물 수의사의 신체적 부상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희운 원장은 “기술과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일수록 수의사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일을 선택하길 바란다”는 당부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정말 그때는 틀렸던 걸까?> – 엽경아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가치 판단의 중심은 결국 ‘내 안’에
엽경아 수의사(청주고려동물메디컬센터 심장센터)는 ‘정말 그때는 틀렸던 걸까?’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삶의 가치관과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공유했다.
특히, 이번 행사의 대주제였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에 대해 “그땐 그때대로 맞았을 테고, 지금도 지금대로 맞다”고 답하며 가치 판단의 중심을 내 안에 둘 것을 강조했다.
좋은 삶을 완성해 주는 ‘좋은 등장인물’, 벗(朋)
엽 수의사는 ‘나는 왜 사는가’, 즉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좋은 삶의 조건을 정의했다. 그러면서, 멘토나 좋은 친구와 같은 ‘좋은 등장인물’이 함께할 때 비로소 좋은 삶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정한 인연의 의미를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정신적 가치를 나누는 동류인 ‘벗 붕(朋)’으로 정의했다. 지향점과 지양점이 비슷해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말이 통하고, 침묵마저 통하는 관계를 강조하며 “진짜 인연은 서로를 소비하지 않고 서로를 자라게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자신의 벗과의 관계를 소개한 엽경아 수의사는 “이러한 동류를 만나 우정을 쌓아갈 때 세상에 휘둘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내면이 단단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강연의 끝에서 남겨진 여운, 나를 향한 세 가지 질문
엽경아 수의사는 마지막으로 ‘나의 묘비명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나는 중년이 되어 어떤 친구를 만나고 싶은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청중에게 제시하며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지금 이 순간)> – 이진민
병원장·브랜드 론칭·유튜버까지, 다재다능 수의사의 진로 이야기
제10회 청수콘서트의 마지막 강의는 이진민 수의사(라라동물의료원 원장)가 장식했다. 이 수의사는 라라동물의료원 원장이자 반려동물 스킨케어 및 덴탈 전문 브랜드 ‘닥터라라’의 대표 및 유튜브 ‘룰루라라 음진민’을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진민 수의사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선택’들을 되짚어가며 우연이 쌓여 만들어진 독특한 커리어 여정을 공유했다.
“수의학의 꽃은 소동물”, 확신으로 출발한 현실 개원기
이진민 원장이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언니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였다. 동네 동물병원 원장을 보며 “너 수의학과 가는 거 어때?”라고 한 언니의 말에 여유롭고 평화로운 수의사의 삶을 꿈꾸게 됐고, 수의대 입학으로 이어졌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은 “수의학의 꽃은 소동물 임상”이라는 선배의 한마디가 진로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자신이 꿈꾸던 수의사로서의 삶을 그대로 밀고 나가도 좋다는 신호탄과 같았다.
하지만, 동물병원을 개원한 뒤 고민이 시작됐다. 대출을 갚고 차를 사기도 했지만, 장비와 인테리어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경영을 배운 수의사, 전략적 병원 운영의 시작
병원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의료경영대학원 모집 광고를 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경영은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명확한 비전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실제로 운영 중인 병원에 다양한 경영 전략을 적용했다.
‘하기 싫은 것’을 지우다 만난 피부·치과 전문 진료
이 원장은 대형병원, 전문병원, 주치의병원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 속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전문화를 택했다. 병원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재정적 부담을 늘리는 것을 꺼렸기에 대형병원은 배제했고, 현재의 역량으로 집중할 수 있는 피부와 치과 분야에 집중했다.
피부·치과 분야를 깊이 파고든 그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보다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후 반려동물 스킨케어 및 덴탈 전문 브랜드 ‘닥터라라’를 론칭했다.

목표는 “저기 어딘가”로…조바심을 내려놓을 때 보이는 길
이진민 원장은 자신의 커리어가 여러 우연과 순간의 필요가 겹쳐 만들어졌다며 진로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이번 강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최고로 높은 산보다 적당한 높이의 쉬어갈 수 있는 산이 좋다”고 말한 이 원장은 진로 목표는 거창할 필요 없이 그저 “저기 어딘가”로 정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인의 가벼운 제안으로 시작한 유튜브가 휴가를 떠날 때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또 하나의 안식처가 된 경험도 공유했다.
이 원장은 마지막으로 “목표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기에 언제든 수정하면 된다”며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따뜻한 조언을 후배들에게 건넸다.
기현빈 기자 gusqlsrl@naver.com
이무림 기자 moorhimlee@gmail.com
최제현 기자 Choijehyeon0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