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 새로운 환자 안전 문제 유발 우려..신중한 접근 필요”
한국동물보건학회 담화문 발표
한국동물보건학회(회장 이신호)가 동물진료부 공개를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에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진료 기록이 개별 환자 치료 과정의 맥락을 떠나 단편적으로 활용되고, 자가 투약이나 임의적 약물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섣부른 규제가 새로운 환자 안전 문제를 만들지 않도록 제도 변경 이후의 영향을 정책적으로 평가하고, 현장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다학제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래는 한국동물보건학회 담화문 전문.

동물병원 진료 기록 공개 의무화 논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동물보건학회 담화문
최근 동물병원 진료 기록의 열람 및 사본 제공을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반려동물 보호자의 알 권리와 동물 의료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본 학회는 이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구도로 단순화하기보다, 제도가 실제 현장에 미칠 영향을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진료 기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치료 과정 그 자체의 일부다. 진단과 처방, 처치에 관한 내용은 환자의 상태와 치료 목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생성된 것으로, 그 맥락을 떠나 단편적으로 활용될 경우 오히려 다른 판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국내 동물용 의약품 관리 체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 현행 약사법상 처방 대상 동물용 의약품이라도 일부 품목은 수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예외가 존재한다. 이런 구조 위에서 진료 기록 공개 범위가 넓어지면, 과거 처방 이력에 근거한 자가 투약이나 임의적 약물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개별 환자의 문제를 넘어 항생제 내성(AMR) 관리와도 직결된다. 정부가 「제3차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26~2030)」을 통해 동물 분야의 항생제 신중 사용을 강조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논의는 그 정책 방향과의 정합성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제도 시행에 앞서 정책 영향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보호자의 진료 정보 활용 방식, 공개 이후 의약품 이용 행태의 변화 가능성, 동물 환자의 안전과 진료 연속성, 수의사·동물보건사의 업무 변화 등에 대한 객관적 자료 없이 제도만 앞서 나갈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현장의 수의사들은 병원마다 진료 기록의 서식과 표기 방식이 달라, 맥락 없이 열람될 경우 오독이나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또한 진료 기록이 향후 법적 분쟁의 근거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면 진료가 방어적으로 위축되거나, 환자 개별 상태에 맞춘 임상적 판단이 오히려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원(轉院) 과정에서도 이전 병원의 기록이 충분한 맥락 없이 전달될 경우, 치료 연속성에 도움이 되기보다 혼선을 키울 수 있다.
연구자들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짚는다. 국내 동물 의료 데이터는 병원 간 표준화된 코드 체계나 비식별화 절차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정책의 근거 자료로 삼기에는 데이터의 질과 일관성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의료 데이터 활용에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와 비식별화 기준이 자리 잡혀 있는 반면, 동물 의료 데이터에는 이에 준하는 연구 윤리 및 개인정보 보호 체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산업체 관계자들은 유통·관리 측면의 우려를 제기한다. 처방 이력이 폭넓게 공개될 경우 병행 수입이나 유사 의약품 거래 등 회색 지대 유통이 자극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진료 데이터가 원래 목적을 벗어나 마케팅이나 보험 등 상업적 용도로 유출·활용될 위험도 함께 관리되어야 할 사안으로 지적된다.
이에 본 학회는 수의학·동물보건학·약학·공중보건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와 수의사, 동물보건사, 보호자를 포함한 현장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적 검토를 제안한다. 동물 의료 정책은 좋은 의도만으로 평가될 수 없으며, 그 의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까지 살피는 것이 근거 기반 정책(evidence-informed policy)의 출발점이다.
본 학회는 진료 기록 공개 제도가 동물 의료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환자 안전 문제를 만들지 않도록, 충분한 근거 축적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설계되기를 촉구한다.
한국동물보건학회장 이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