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살해·가습기살균제 사건 밝힐 ‘수의법의학센터’ 만들어야

동물부검 수요 늘어나는데 전담인력 없어..경찰-국과수-검본 협조체계 필요

등록 : 2022.04.20 05:13:28   수정 : 2022.04.20 08:02:39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

동물학대 범죄가 늘면서 반려동물의 사인을 규명하고 학대 여부를 밝히려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질병 위주였던 국가 동물진단 서비스 체계에 사인규명을 위한 법의학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은 18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동물학대 대응을 위한 수의법의학 전문인력양성 및 전문조직 신설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수의법의학 전담조직을 신설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늘어나는 동물학대 범죄에 대응하려면 검역본부의 사인규명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경찰청, 국과수와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인력 양성과 업무환경 개선은 숙제다. 이미 국과수에는 의사 20명, 검역본부에는 수의사 40명이 결원이다.

1사분기 동물학대 의심 부검 의뢰 전년동기대비 167%

5명이 반려동물·농장동물 부검 전담..인력 부족 심각

약독물 검사에도 사각지대 우려

살인 혐의를 받는 사람을 처벌하려면, 피해자가 살인행위로 죽었다는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대표되는 법과학의 역할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을 학대해 죽인 혐의를 받는 사람을 법적으로 처벌하려면, 피해동물이 학대행위로 인해 죽었다는 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동물의 사인을 규명하는 수의법의학(Veterinary Forensic Medicine, 법수의학)의 역할이 요구된다.

최근 전부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로 의심되는 동물의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검역본부나 지자체 동물위생시험소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기존에도 동물학대가 의심되어 죽은 동물의 수의법의학적 진단은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실시하고 있다. 동물진단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다.

문제는 반려동물 학대의심 민원이 증가하면서 진단 수요는 점차 높아지는데 전담 인력이 없다는 점이다.

2019년 102건이던 부검 의뢰건수는 지난해 228건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증가 추세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1사분기 의뢰건수는 92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167%로 증가했다.

구복경 검역본부 질병진단과장은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으로 앞으로 수요는 더 폭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의법의학 진단 수요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료 : 농림축산검역본부)

반면 인력은 부족하다. 검역본부 질병진단과에서 부검을 담당하는 인력은 5명뿐이다. 이들이 개·고양이뿐만 아니라 소, 돼지, 닭 등 가축의 부검까지 전담한다.

5명마저도 인사이동으로 들쭉날쭉한데다 수의병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구 과장은 “반려동물 부검 수요가 늘어나면 본연의 농장동물 진단에도 차질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수의법의학 진단에 필수적인 약물·독극물 검사나 영상진단은 검역본부 자체적으로 실시할 수도 없다. 약물·독극물 검사는 국과수에, 영상진단은 일선 동물병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과수가 사람의 약·독물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니, 동물에서 특이적인 성분에는 사각지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구 과장은 “수의법의학 진단건의 중독사 비율은 사람(6%)보다 동물(8%)이 더 높다. 수의법의학 맞춤형 독성 분석 체계를 마련한다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목했다.

동물학대가 의심돼 부검이 의뢰된 경우에도
소유주가 없는 동물은 질병문제로 밝혀진 비율이 높았다.
(자료 : 농림축산검역본부)

원스톱 수의법의학 진단기구를 검본에 신설 제안

학대 아닌 질병사 비율이 절반 넘어..수의법의학엔 질병 진단 중요

동물질병관리부 산하 형태엔 우려도

이날 제시된 대안은 검역본부 내부 ‘수의법의학센터’ 신설이다. 부검 전담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영상진단, 맞춤형 약물·독극물 검사 기반을 갖춰 ‘원스톱 진단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력이 필요하다. 수의법의학센터 산하에 부검실, 원인체실, 독물·약품 분석실 등을 갖추고 소속 인원 20명을 두는 형태다. 현재 행안부에서 신설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학대 의심사례에 대한 수의법의학적 진단은 지자체 단속이나 경찰수사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국과수가 아닌 검역본부에 수의법의학센터를 구축하는 이유로는 ‘수의법의학의 특수성’을 꼽았다. 실제로 검사해보면 학대보단 질병 문제였던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의뢰된 동물부검사례 중 78%가 주인이 없는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다. 이들에 대한 검사 결과, 질병으로 인한 사망 비율이 55%에 달했다. 반면, 실제 학대로 규명된 비율은 34%에 그쳤다.

구 과장은 “소유주가 없어 케어를 받지 못한 동물이 (질병에 걸렸는데) 학대로 의심되어 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수의법의학에는 질병 진단에 대한 높은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에 동물질병 진단의 전문성을 갖춘 검역본부가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 산하에 과 단위 조직으로 신설하자는 안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동물질병관리부 산하에 두면 ASF,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현장에 끌려나갈 수밖에 없다. 제대로된 연구나 수의법의학 업무를 할 수 없다”면서 “검본 내에 두더라도 독립된 조직으로, 수의법의학만 담당하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검역본부가 제안한 수의법의학센터 도입안
(자료 : 검역본부)

경찰-국과수-검역본부 공조 강화해야

이날 토론자들은 동물학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과 국과수, 검역본부가 긴밀히 협력하는 공조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선춘 국과수 법독성학과장은 “동물부검의 전문 조직은 검역본부에 마련하면서 (수사와 관련해서는) 국과수와 협업을 강화하는 형태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체계를 잡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동물의 부검을 통한 사인규명만으로는 동물학대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과학적 증거를 모두 만들어낼 수 없다.

학대에 사용된 흉기의 정밀 감식이나 관련 영상분석 등 국과수가 기존에 담당하고 있는 다른 법과학 분야의 전문성도 필요하다. 이는 검역본부가 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김선춘 과장은 “사람에서도 사인이 규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검에서 스모킹건이 나오는 사례는 많지 않다”면서 “법과학은 수사의 일부일 뿐, 수의법의학센터가 만들어진다고 모든 동물학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선에서 동물학대범죄에 대응하고 있는 동물자유연대에서도 수의법의학센터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일선 수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동 수사와 일선 경찰의 적극성에 따라 대응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지성 동자연 위기동물대응팀장은 “(동물학대) 신고자가 입수한 사진·영상과 참고인 조사에만 의존하는 것이 국내 동물학대 수사의 현 주소”라며 과학적 사인규명을 기관 신설 필요성에 공감했다.

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 김순영 경감은 “연간 1천건의 동물학대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올해 내부교육을 통해 경찰 전반의 대응역량을 상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왼쪽 위부터) 김순영 경찰청 경감, 구복경 검본 질병진단과장,
송지성 동자연 위기동물대응팀장, 우연철 대수 사무총장,
김선춘 국과수 법독성학과장, 한민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사무관

수의법의학 체계 있었다면..가습기 살균제 피해 줄일 수 있었을까

이은주 의원 ‘수의법의학 전담기구 필요’

수의법의학센터로 대표되는 국가기반 구축된다면 반려동물 질병 대응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법의학과 마찬가지로 수의법의학의 부검은 질병부검과 사법부검으로 구분된다. 동물학대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사법부검 기반은 결국 질병부검에도 활용될 수 있다.

현재는 일반적인 반려동물 부검 의뢰도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근거한 전염병 의심신고 형식을 띄고 있다. 향후 범죄나 전염병 관련이 아닌 동물의 사인규명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선춘 과장은 “질병부검은 인간 질병의 예측·예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며 “이타이이타이병,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상황에서 동물 부검은 보다 초기에 원인을 밝혀내어 차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지목했다.

동물학대 범죄 대응뿐만 아니라 좀더 큰 시각에서 수의법의학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은주 의원은 “말 못하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입증하기 어렵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범인을 잡지 못하거나 사건이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동물학대자가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수의법의학 전담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과수 의사 결원 20명, 검본 수의사 결원 40명

전문인력 부족·외면 문제는 숙제

전문인력 확보 문제는 숙제다. 이날 토론회에서 국과수의 의사 결원은 20명, 검역본부의 수의사 결원은 40명으로 지목됐다.

전문가가 되긴 어려운데 임상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처우가 나을 것이 없다 보니 전문직이 점점 외면하고 있다.

국과수에도 이미 의사 결원이 있는 상황에서, 검역본부에 수의법의학센터가 신설된다 한들 전문인력이 곧장 늘어날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구복경 과장은 “국내 수의병리학 전공자가 크게 줄었다. 교수가 되는 것 외에는 높은 퀄리티의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며 “결국 검역본부가 (수의법의학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스스로 교육에 나서야 한다. 수의법의학센터를 통해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선춘 과장은 법의학 인력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지목하면서도 양성문제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의사들도 국과수에 오면 7~8년은 더 배워야 한다. (대학의 전공교육 확대를 기대하기에는) 어차피 많은 사람이 필요한 분야도 아니다”라며 “의지가 있는 분들을 모아 해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국과수에도 이미 2010년부터 일한 수의사가 있다. 개물림사고나 학대 사건 등에서의 개체 식별 등 과학수사업무를 10년 이상 진행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항 서울대 명예교수는 “사명감을 가진 학생은 있다. 미국에서는 본과생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하면서 관심을 높이려는 시도도 한다”면서 양성 환경 개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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