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의학교육의 컨트롤타워는 존재하는가?|남상섭

등록 : 2022.01.03 11:55:21   수정 : 2022.01.03 13:38:05 데일리벳 관리자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남상섭

대학교수인 수의사들이 만든 조직이 있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한수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의사들은 이 조직을 모른다. 심지어 수의과대학 교수 중에도 아직 이 조직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어떤 존재에 대한 무관심은 그 존재의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수협의 존재 목적은 우리나라 수의과대학의 존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수협은 기존에 운영되던 수의과대학 학장협의회와 수의학교육협의회를 통합하여 수의과대학 간의 협력을 통해 수의학교육의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2014년에 설립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한수협은 회장단과 기획위원회, 교육위원회로 구성되어 있고, 회원은 모든 수의과대학의 전임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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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한수협의 교육위원회에서 수행하는 연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한수협의 연구사업으로 탄생한 일련의 교육학적 성과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수의학교육 졸업역량(2016년), 수의학교육 학습성과(2019년), 임상실기 항목설정(2020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수의대 교수들은 한수협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본인의 교육에 적용하는 교수는 극히 일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수협이라는 유령조직은 헛힘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휩싸이고 있다.

이처럼 비관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수협은 꿋꿋하게 수의학교육에 대한 연구사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수협의 이런 노력은 모든 수의대 교수들과 함께 수의학교육의 최신 이론에 근거한 교육방법을 공유하여 수의학교육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책임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우리는 학문적 이론과 실기를 갖추지 않고 경험에만 의존하여 전문가인 척하는 사람을 돌팔이라고 비하한다. 내가 한수협 연구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스스로 돌팔이는 되지 말자는 막연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수의과대학학생협회가 한수협의 존재와 연구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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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수협은 2021년에 수행한 과제인 ‘진료수행 세부항목 설정연구’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수의계 내부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이날 공청회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에 예견된 논란이 전개됐다. 이를 직설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대학교수가 모르는 이런 연구는 누가 계획하고 승인을 했나?”,

“연구진에 다양한 전공을 대표하는 교수들이 참여하지 않아 연구결과에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연구과정 중간에 의견수렴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모르는 내용이라 연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수년간 한수협 연구과제에 참여한 나로서는 특별히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공청회에서 이 같은 의견이 제시되는 근본적 원인은 아직 수의대 교수들 사이에 한수협이 전국 10개 수의대의 대표 조직으로써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수협은 조직의 기능과 성과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 나이 순으로 1년의 임기를 갖는 회장이 업무를 수행하므로 업무의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다. 회장에 따라 한수협 업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 전문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각 대학과 회원은 한수협의 정책결정사항을 이행할 의무도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난 몇 해 동안 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대학별 1명 혹은 전공별 1명의 교수를 섭외하기도 버거웠다.

필자를 비롯해 한수협 업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교수들은 서서히 체념하기 시작하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모든 사람들이 다 중요하다고 하는 수의학교육의 컨트롤타워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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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 때 교육이론에 대한 무지함을 극복하기 위해 잠시 교육학 학위과정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교육학의 여러 전공 중 교육행정에 관심이 많았는데, 조직론 관점에서 본 학교의 구조적 모순은 매우 흥미로웠다.

학교, 특히 대학 조직은 ‘조직화된 무정부 조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학장, 부학장, 학과장과 같은 행정체계는 갖추고 있으나, 교수의 연구와 수업은 행정체계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학장이라도 특정 교과목 담당 교수에게 수업 내용과 방식을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의학이나 수의학과 같이 바닥으로부터 벽돌을 쌓아 올리듯 지식을 축적하는 전문가 교육과정에서 모든 교수들이 독립적으로 강의와 실습을 운영한다면 체계적인 교육은 가능할까?

몇 해전 수의교육학회가 개최한 신임교수 워크샵에서 강연을 하신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학에서 교수의 연구는 독립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의학교육이라는 체계 안에서 개별 교수의 기능은 교육과정 내에 하나의 톱니바퀴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나는 그 의견에 매우 공감한다. 잘 짜인 수의학교육과정 안에서 개별 교수의 역할을 정확히 정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수협 이외에 대학교수들이 만든 크고 작은 수많은 조직들은 이 ‘조직화된 무정부 조직’을 더 깊은 카오스에 빠뜨린다. 우리에게는 자생적으로 설립된 각종 교과목별 교수협의회가 있다. 이 교수협의회는 독립적인 조직으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한편 임상전공에는 특별히 임상교수협의회라는 조직도 있다. 그런데 임상교수협의회는 내과나 외과교수협의회와 같은 임상교과목 관련 교수협의회의 상위조직은 더욱이 아니다.

게다가 한수협은 각 교과목 교수협의회나 임상교수협의회와는 아무런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무슨 교수협의회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도 되지 않는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기초교수협의회나 예방교수협의회는 없다는 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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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뱃사공의 존재는 공청회에서 보았던 예견된 논란을 초래한다. 이런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의학교육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의학교육계에는 1996년에 설립된 한국의학교육협의회라는 조직이 있다. 의학교육에 관한 정책의 입안과 조정, 대안 개발 등에 필요한 의학계·의료계·의학교육계 사이의 의견 조정과 결정을 위해 설립되었다. 이 조직은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통해 의료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학교육협의회는 총 13개의 회원기관이 참여하고 있는데 나열된 순서를 보니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한국의과대학 · 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한국의학교육학회 순으로 되어 있다. 설립 목적과 참여 기관을 꼼꼼히 읽어보면 현재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그들은 이미 경험했던 것 같다.

국외 수의과대학협회 중에는 미국수의과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Veterinary Medical Colleges, AAVMC)라는 기관이 있다. AAVMC 역시 미국 수의과대학 학장협의회로부터 발전한 기관으로 미국수의사회(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의 인증을 받은 수의과대학 교육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AAVMC는 신입생 선발, 졸업역량 설정, 교육과정 개발, 교수자 교육 등과 같은 핵심적인 수의과대학 기능에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의학교육계와 국외 수의학교육계에는 이런 조율 기관이 있어서인지 그들은 우리보다 항상 교육과 관련된 많은 부분을 앞서가고 있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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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에게 교육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한지부터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컨트롤타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그 역할을 어느 조직이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검토해야 한다.

수의사 양성과정에 가장 핵심적인 조직은 수의과대학협회, 수의학교육인증원, 수의교육학회, 수의사국가시험위원회 그리고 수의사회다. 각 조직의 역할은 명확하다.

앞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수협은 논란의 여지없이 수의사 양성기관의 대표 조직으로서 수의학교육의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한수협이 한국 수의학교육을 통합하고 선도하는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큰 폭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수협 조직은 회장단과 기획위원회, 교육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기획위원회 활동은 중단된 지 오래되었고, 교육위원회의 활동만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수협이 AAVMC와 같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상시 활동 기관 체제로 확대 개편되어야 한다.

우선 회장 업무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규정 보완이 필요하다.

조직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각 대학 별로 실질적으로 한수협 업무에 참여할 수 있든 담당 교수가 지정되어 의무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예산 확보를 위해 대학별 부담금도 증액해야 한다.

유관 조직 또는 기관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담당한 하부 조직도 필요하다. 특히 교육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각 전공별 교수협의회와 공식적인 협의체를 조직하여 보다 광범위한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한수협의 정책결정사항을 효율적으로 반영하려면 수의학교육 인증평가와 수의사 국가시험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증원과 국가시험위원회는 한수협과 적극 협력하여 실질적인 수의학교육 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성된 수의사의 수혜자인 정부 그리고 수의사 권익을 대변하는 수의사회는 이러한 사안들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수의학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조직은 수의학교육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톱니다. 우리의 세계는 서로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결코 자재의 탓이 아니라 ‘시계장이’의 탓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시계장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