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Whale:고래연구센터 이경리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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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스물세 번째 키워드 알파벳 WWhale(고래)입니다.

고래를 연구하는 수의사는 어떤 일을 할까요?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고래연구센터에서 해양수산연구사로 근무 중인 이경리 수의사님을 만났습니다.

Q. 고래연구센터를 소개해주세요

고래연구센터는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의 소속기관입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래의 풍도, 서식 현황, 생물학적 특성을 주로 연구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이라는 기관이 사실 수의과대학 학생들에게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아요.

국립수산과학원은 우리나라 수산 자원의 관리, 양식, 기술개발, 수산물의 식품 활용 방안, 수산물의 생산 및 관리와 관계된 해양 환경, 그리고 수산물과 관련된 질병, 예를 들어 어류의 질병을 주로 연구하고 있는 국가연구기관입니다.

 

Q. 연구사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고래연구센터의 연구과제 중 하나인 고래류 수의학적 기초 연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로 혼획이나 좌초 등으로 발견된 고래류 사체를 부검하고 생물학적 특성과 감염성 질병, 해양포유류 질병의 유병률, 질병의 가능성을 조사해요.

또 구조가 필요한 개체가 발생했을 때 전문구조치료기관의 작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Q. 질병의 가능성을 조사하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질병은 전염성 질병, 대사성 질병, 환경에 의한 질병, 사고에 의한 부상 등 원인에 따라 나눌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에서는 전염성 질병과 환경에 의한 이상을 자주 볼 수 있죠.

전염성 질병은 해양동물 안에서만 퍼지는 것도 있지만 잠재적인 인수공통감염병의 가능성을 지닌 질병도 있습니다. 특히 가축과 해양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인수공통감염병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해양 포유류는 굉장히 특수한 환경에 있는 동물입니다. 고래는 수중생활에 적응한 포유류죠. 숨을 쉬러 물 표면으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전 생애를 물속에서 보냅니다.

때문에 생활환경은 물속 어류와 공유하지만, 병원체에 노출이 되었을 때의 반응은 포유류들이 공유하는 질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고래류의 인수공통감염병으로는 브루셀라, 돈단독이 있습니다.

종을 넘나드는 질병의 경우, 바이러스나 세균의 종류에 따라서 숙주의 민감성과 병원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느 동물이든 유심히 조사해야 합니다.

 

Q. 연구직 공무원으로, 그것도 고래연구센터에서 일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학생 때부터 고래를 연구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학교 부속 동물병원에서 소동물 임상을 하다가 그만두고 동물원에서 근무를 시작했어요.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도 학교에 다니면서 소동물이나 가축 외에 다른 동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다가 영국에서 야생동물의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석사를 졸업한 후 우즈베키스탄의 멸종위기종 새 번식 센터에서 1년 정도 일하다가 일본에서 야생동물 생태 및 의학 박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그만큼 제 연구의 대상 동물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전염성 질병이나 역학 같은 연구를 주로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한국에 돌아온 후 동물원에서 돌고래와 기각류 진료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도 남방큰돌고래 방류 훈련 프로젝트에 참여했죠. 그 인연으로 고래연구센터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Q. 해양생물 연구는 오랜 시간 꾸준히 관찰해야 해서 연구기간이 길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해양생물 분야 연구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해양생물뿐만 아니라 일반 야생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는 일은 기간이 길 수밖에 없어요. 어떤 생물이 살아가는 상황을 연구하려면 대부분 최소 10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해양생물은 육상에 사는 동물보다 접근이 제한적이라 투입하는 노력이나 시간, 비용이 더 들게 됩니다.

물속을 계속 볼 수가 없고 기상 상황 같은 환경의 제약이 있어 제한된 정보를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양생물 연구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연구대상의 접근성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줄 때만, 베풀 때만 얻을 수 있어요(웃음).

장점은 그만큼 블루오션입니다. 연구된 것들이 적어요. 그런데 ‘왜 안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장단점이 됩니다. 어렵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접근하기 힘들죠.

 

Q. 해양생물 연구조사를 하며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일본에서 소형 고래류 연구회의 해부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각지에서 모은 혼획, 좌초된 사체(주로 상괭이)를 모아 해부하고 시료와 정보를 공유하는 행사였어요.

오래 공동작업을 진행한 팀이 한국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심하게 부패한 고래를 부검해 연구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팀이 많고 관련 연구자들이 많은 만큼 환경 영향, 독성, 유전자, 생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은 연구자가 모여 정보와 의견을 공유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먼 바다를 탐사하는 선상조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수산과학 조사선에 있을 때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고래연구센터에서는 우리나라 해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래 종류, 개체 수 등을 파악하기 위해 선상목시조사를 시행하며, 그 빈도와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바다부터 먼 바다까지 나가기 때문에 대형 조사선을 타고 25일간 연 2회 시행합니다. 최근에는 뜸하지만, 태평양 근처 여러 나라가 함께 국제협력연구를 시행하기도 합니다.

조사선에서는 추위와 더위, 멀미를 이기고 조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래를 보는 일은 해상 날씨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상괭이 같은 경우 등지느러미가 없고 활동을 할 때 물을 튀기지 않아서 바다가 아주 잔잔하지 않으면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대형고래가 많지 않아서 흔히 고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분기를 보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날씨가 좋지 않으면 조사가 어렵다는 점이 있겠네요.

상괭이와 점박이물범의 외형 측정

Q. 이러한 외형측정은 얼마나 자주 하나요?

측정은 부검할 때마다 합니다. 정기적으로는 많게는 일 년에 두 번, 보통 한 번 정도 하고 있습니다.

 

Q. 해양생물, 특히 고래 전문 수의사가 되려면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분야가 있을까요?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생물의 원칙을 알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생물의 종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응용력을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피부를 봉합할 때 보통 바느질을 했다면 거북이의 경우 에폭시나 나사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래는 개복했을 때 복압을 견딜 수 없으므로 개복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이런 응용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고래도 해 봤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알고 고래를 보았느냐가 내가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느냐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기초와 기본이 탄탄한 뒤에 플러스 알파로 외국이나 국내에서 특수동물을 경험해본다면 야생동물 수의사, 해양 동물 수의사로서 더 좋은 바탕이 될 수 있겠습니다.

학생 때는 외과 연구실에서 외과술을 더 공부하거나 전염병학 연구실에서 질병에 대한 접근법을 배우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병리학 연구실에서 조직에 대한 리딩을 연습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합니다.

 

Q. 고래연구센터에서 여름방학마다 시행하는 ‘해양포유류 해부 조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시행하는 ‘해양포유류 해부 조사’는 혼획이나 좌초, 표류 등으로 발견된 해양포유류 사체를 모아서 집중적으로 해부하고 생물학적 조사를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자리입니다.

학생들에게 해양포유류를 접할 기회를 제공해 해양포유류 연구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래연구센터 네이버 카페에 공지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학생들은 카페에 방문해주세요.

 

Q. ‘해양포유류 해부 조사’ 외에 수의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학생실습이 더 있나요?

수산과학원에 학생실습 제도가 있습니다. 관련 전공 학생이 실습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관련 연구자와 조율을 거쳐 학교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Q. 국내 고래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매년 죽는 고래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아요. 그만큼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바다에 고래가 있는지 묻는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종류의 고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은지 묻는다면, 아직도 있긴 하지만 그 수가 급하게 줄어들고 있죠. 때문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래에 관해서 우리는 아직 많은 것을 모릅니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수의대생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수의사는 기본적인 정상 생물학과 질병이라는 이상 상태에 대한 응용력을 갖춘 응용 생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기초를 토대로 응용력을 가진 수의사는 굉장한 전문인력이죠. 임상, 방역, 질병 연구, 백신 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우는 많은 과목 수만큼 다양하고 많은 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던 정말 흥미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영국 수의사 제임스 헤리엇이 쓴 시골 수의사의 일기에 이런 얘기가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정확한 문장은 아닙니다만).

“수의사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절대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질과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서 흥미진진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정해인 기자 hihaein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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