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있는 경찰청 동물학대 매뉴얼을 기다리며

[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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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변과 함께하는 동물법] 실효성 있는 경찰청 동물학대 매뉴얼을 기다리며 : 송시현 변호사(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동변에서는 얼마 전 동물자유연대를 대리하여 불기소 처분을 받은 개 전기도살 사건에 대해 항고를 진행하였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는 다른 개가 보고 있는 가운데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개 수십 마리를 감전시키는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영상 증거까지 확보되어 있었다. 참고로 개 전기도살은 대법원에서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으며, 실제로 파기환송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다. 특히 파기환송심에서는 “무의식을 유발하지 않고 동물을 전기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은 극도로 혐오적이며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개 전기도살이 개에게 얼마나 잔인한 살해 방법인지 설시하였다.

이 사건의 원 처분 (불기소 처분)에서도 해당 피의사실이 동물보호법 위반이라는 점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피의자가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피의자의 개 전기도살행위가 동물도축세부규정(농림축산검역본부고시) 별표 1에 따른 ‘전살법’을 유추적용한 것으로 그 범의가 미약한 점, 생계형 범죄라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동물보호법 위반 죄를 인정하면서도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동변에서는 항고이유서를 통해 이 사건 행위가 명백한 동물보호법 위반 행위라는 점, 다른 동물에 대한 ‘전살법’을 개에게 유추적용하는 것이 몹시 부당하다는 점, 피의자의 행위는 개 전기도살 행위에 대해 유죄 판결이 있은 후의 행위로 범의가 미약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 피의자는 개 전기도살업자일 뿐 피항고인의 행위를 생계형 범죄라고 명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동물보호법의 입법취지를 몰각시키는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항고는 기각당했다. 항고기각 결정문에는 단순히 원 불기소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는 내용만이 설시되어 있었다. 참으로 허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처분 결과였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이 사건과 매우 유사한 다른 개 전기도살 사건에 대해 다른 수사기관에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였다(참고로 이외에도 개 전기도살 사건을 기소하고 유죄로 판결한 사건은 상당히 많다). 이렇듯 처분하는 수사기관과 수사관의 동물에 대한 감수성과 이해도에 따라 동물 사건은 처분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지만 동물 사건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수사관 또는 검사가 많지 않은 관계로 수많은 동물 사건들이 제대로 수사되거나 판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경찰청 동물학대 사건 매뉴얼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해당 매뉴얼에는 동물보호법 조항만 가득하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지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해당 매뉴얼을 보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경찰청장도 개정을 약속하였고, 현재 경찰청에서 매뉴얼 개정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단계에서의 수사와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경찰청 동물학대 매뉴얼은 동물학대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부디 이번에는 기존 매뉴얼과는 달리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매뉴얼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매뉴얼이 만들어지더라도 일선 수사관들이 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지구대 차원까지 매뉴얼이 제대로 홍보되어야 하고 교육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사건은 지역 구석구석에서 발생한다. 현장에서 정말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확산되어 경찰 전반의 동물학대 사건에 대한 역량이 강화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사건들이 수사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제대로 판단 받지 못하는 일들이 이제는 없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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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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