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농장 8대방역시설 의무화 재입법예고‥문제 지적 여전
농장상황별 탄력성, 인센티브 유도 형태 필요..소모성질병 관리 함께 해야
농림축산식품부가 돼지농장 8대방역시설 전국 의무화를 위한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21일 재입법예고했다.
같은 날 열린 제2축산회관에서 한돈전략포럼에서는 8대방역시설로 드러난 방역정책 문제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모든 돼지농가에 일괄적으로 8대방역시설을 의무화하는 규제가 농장 상황별로 과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다 ‘하면 좋다’는 식의 종합선물세트 방역정책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모성질병을 함께 관리하고, 생산자단체가 구체적인 방역정책을 마련해 먼저 제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8대방역시설 해도 예찰·이동제한 규제 그대로 ‘불만’
지난 1월 농식품부가 8대방역시설 의무화를 위한 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한돈협회는 크게 반발했다. 한돈협회장을 비롯한 임원이 삭발투쟁까지 했다.
이후 협의를 거쳐 재입법예고된 시행규칙안에는 일부 완화된 규정이 포함됐다. 가령 전실 설치가 어려운 농장에서는 검역본부와 협의해 전실 목적에 부합하는 대체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한돈협회가 8대방역시설 중 의무화에 반대입장을 보였던 방조망, 방충망, 폐기물보관시설도 여전히 의무설치항목으로 포함됐다.
한돈협회 관계자도 “재입법예고안이 한돈협회와 완전히 합의된 내용은 아니다.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시 반대입장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 패널로 참석한 왕영일 한돈협회 감사는 “정부는 생산자단체를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말을 들어주는 척만 하고 정부 입장으로 몰아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8대방역시설 전국 의무화가 너무 과도한 규제라는 점도 지적했다. 농가 상황에 따라 방역 인프라가 하위권인 농장은 중위권으로, 중위권 농장은 상위권으로 가기 위한 인센티브를 주는 단계적 방식이 아니라, 모든 농장이 상위권으로 가도록 강제하고 따라오지 못하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형태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8대방역시설도 따르지 않는 농가에게 사육제한, 폐쇄명령을 부과하는 형태다. 반면 8대방역시설을 설치한 농장도 좋을 게 없다는 것이 왕 감사의 지적이다.
왕영일 감사가 운영하는 농장은 이미 중점방역관리지구에 포함돼 지난해 8대방역시설을 갖췄다. “8대방역시설을 한 농장도 주변에 멧돼지 양성이 나오면 예찰, 이동제한을 똑같이 당한다. (8대방역시설을 한 농가들 사이에서) 규제는 왜 그대로인지 불만이 높다”고 꼬집었다.
김현섭 전 돼지수의사회장은 “ASF 발생 초기와 달리 농장의 인식 수준이 높아졌다. (재발한다 해도) 수평전파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중점방역관리지구 해제 기준을 비롯한 SOP를 다시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면 좋은 거 아니냐, 더 잘하자는 건데 왜 반대하느냐’
‘멧돼지 못 막은 정부 탓도 생산적이진 않다’
왕영일 감사는 8대방역시설의 일부 기준이 지자체에서 오히려 강화됐다는 점을 지목하면서 “’더 잘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논리에 막힌다”고 토로했다.
김현섭 전 돼지수의사회장도 8대방역시설 문제를 두고 “질병없는 농장을 만들자는 정부 주장이 잘못된 방향은 아니지만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의뢰로 가축질병 방역시스템 개편 연구를 진행 중인 박혁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교수는 “멧돼지 ASF의 전국 상재화는 기정사실이다. 휴전선도 뚫은 멧돼지가 광역울타리를 못 넘을 리 없다”면서 “정부가 멧돼지 ASF 확산을 막지 못하고 양돈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고 논쟁해도 생산적이지 않다. 결국 농장 발생이 확산되면 (양돈업계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방역정책국이 출범하면서 더 많은 방역정책이 생겼다. 종합선물세트식으로 할 것만 늘어난다”면서 지역별, 농장별로 방역정책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할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안까지 생산자 측이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산자가 직접 수의사, 전문가와 소통하며 실속있는 방역정책을 먼저 만들고 제안해야 정부 주도의 방역정책에 끌려 다니는 형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모성질병 막아야 악성 가축전염병도 막을 수 있다
구제역, ASF 외에도 다양한 질병이 돼지농장에서 발생한다. 실제로 돼지를 죽게 만드는 질병은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 돼지써코바이러스감염증(PCVAD), 돼지유행성설사병(PED) 등 ‘소모성질병’이다.
박혁 교수는 “소모성질병이 관리되어야 재난형 가축전염병도 조기에 감지해낼 수 있다”며 이를 위한 예찰시스템을 정비하고 정보를 확보해 공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돈협회가 발표한 2020년 한돈팜스 전산성적에 따르면 국내 돼지농가의 PSY는 21.34, MSY는 18.27을 기록했다. 한 해 모돈 1마리에서 태어난 돼지들 중 3마리가 출하되지 못하고 농장에서 죽는다는 얘기다.
국내 돼지농장에서 사육 중인 모돈은 약 100만두로 추산된다. 단순계산해도 연간 300만마리가 폐사하는 셈이다.
김현섭 전 회장도 “소모성질병이 근절되지 않은 상황에서 농장에 투자를 해봤자 높은 생산성을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