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학조사관 운용체계, 효율적 개편 시급 – 이명헌 전 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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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구제역을 필두로 2003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2023년 럼피스킨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국가재난형질병의 국내 유입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축산현장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주지하는 대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가축전염병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관리 수단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역학조사는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확산경로를 추적하여 차단함으로써 재발을 방지하는 동시에 과학적인 방역체계를 완성하는 핵심 가치로서 그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가축방역에서 역학조사는 1999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농림축산검역본부 전신)에 전담조직인 역학조사과가 신설되면서 국가차원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초기에는 현장 탐문 중심의 추적조사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대에 들어 전국적인 구제역 대유행으로 인한 방역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IT기술을 결합한 조사기법을 도입하였고 국가가축방역통합시스템(KAHIS)의 본격 가동, 축산차량 GPS 장착 의무화를 계기로 빅데이터 기반의 공간 역학조사 시대를 맞게 되었다. 아울러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역학조사관 교육 관련 근거 조항을 반영하여 역량 강화와 전문성 확보를 도모한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하여 변이와 기원을 추적하는 분자역학조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질병발생 및 전파 위험도를 예측하는 수준까지 고도화되고 있다.

이처럼 역학조사가 방역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법령·제도, 기반기술, 조사기법 등 관련 인프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를 현장에 적용하고 실행하는 집행 주체인 역학조사관의 운용체계는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역학조사관이 중앙과 시·도로 나뉘어 운영되면서 이들 간의 업무 경계가 모호하고 책임소재가 불명확하여 업무 효율성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일선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현장 업무의 대부분이 중앙역학조사반에 집중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과도한 업무 부담에 매몰되어 있다. 지난 특별방역대책기간(25년 10월~26년 3월)에만 농림축산검역본부 중앙역학조사반의 현지출장(역학조사, 시료채취 등)이 모두 736회에 이른다는 통계는 문제의 심각성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 등 주요 전염병이 동시다발하는 경우에는 동물검역, 수의과학연구, 동물약품관리 등 타 분야 전문인력까지 불가피하게 동원되어 본연의 고유업무 수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할구역내 역학조사는 해당 시도 역학조사반이 실질적으로 전담하도록 하고 중앙기관은 현장 업무를 최소화하는 대신 선진 조사기법 개발, 현장적용 기준 수립, 국내외 위험정보 분석 등 국가업무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전면적인 시행이 어렵다면 방역여건이 양호한 시도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선행하거나 당해연도 최초발생사례만 중앙에서 담당하는 등 실행가능한 방식으로 개편 작업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또한 역학조사의 핵심이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인 만큼 중앙과 현장 간 일사불란한 명령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는 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수의역학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활동 역량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난 2020년부터 의무화된 역학조사관 교육과정과 운영체계가 현장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교육·훈련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교육시간이나 수료요건도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법시행 6년이 지난 금년 상반기 기준 역학조사관으로 지정된 인원 140명(중앙 43명, 시도 97명) 중 교육수료자는 모두 31명으로 수료율이 18.2%에 불과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는 이러한 현장 의견을 수용하여 훈련기간 삭제와 수료요건 대폭 완화를 골자로 하는 ‘역학조사관 지정 및 교육·훈련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7월 24일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교육보다는 실무교육의 비중을 높이고 현장대응, 조사기법, 사례분석 등 실행역량을 보강하는 교과목이 미흡한 지점은 아쉽다. 아울러 인공지능이나 딥러닝, 증강현실을 활용하여 다양한 가상환경을 제공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플랫폼 구축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학술세미나, 전문가 특강, 현장방문 등 다양한 형태의 학습활동도 일정한 범위 내에서 교육시수로 인정하는 등 유연한 학사관리에 대한 요구도 귀 를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순환보직이라는 행정편의주의적 인사제도가 역학조사관의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관행적으로 반복되는 전보인사로 인하여 전문화된 조사역량이나 노하우, 현장감각이 유실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연속성 확보에도 치명적일 뿐 아니라 역학조사관 전문교육시스템의 연착륙에도 부정적이다. 역학조사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교육과정을 수료한 역학조사관에 대해서는 전문직위 지정을 의무화하고 전보제한 기간을 전향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장기 근무 가산점과 승진심사 시 우선고려 등 동기부여를 위한 유인책도 시급해 보인다(終).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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