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필 칼럼] 펫로스 앞에서 수의사가 할 수 있는 것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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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가장 무거운 순간이 있다.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보호자가 그 작은 몸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순간. 수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자리에 서봤을 것이다.

그리고 알 것이다. 어떤 의학 지식도, 어떤 매끄러운 설명도 그 순간엔 거의 무력하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 보호자가 무너질 때 수의사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무언가 ‘제대로 된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의학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 같고, 경과를 설명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것 같다.

정신과 의사 나종호는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옆을 지켜주면서 말없이 있어주는 것이 천 마디의 말보다 나을 때도 있다.”

그렇다. 보호자가 가족을 잃은 그 순간, 수의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매끄러운 설명이 아니다. 옆에 잠시 서 있어주는 일이다. 티슈 한 장을 건네고, 한 박자 기다리는 일이다.

말은 그다음이다. 그리고 그때 건네는 말은 짧을수록 좋다. 마지막까지 사랑받았어요.” “충분히 잘 보살피셨어요.” 이 짧은 한 마디가 어떤 긴 설명보다 보호자를 오래 지탱한다.

펫로스를 겪는 보호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책한다. 좀 더 일찍 데려올걸.” “그때 수술을 했어야 했나.” “마지막에 옆에 있어주지 못했어.” 이 자책은 슬픔보다 깊고 오래 간다. 그리고 그 자책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마지막까지 그 환자를 함께 본 수의사다.

수의사는 안다. 대부분의 보호자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다 해도 그때의 보호자가 그것을 미리 알 수는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결과를 알고 난 뒤에야 “그때 이렇게 할걸” 하고 말한다.

그 ‘뒤늦게 알게 된 것들’로 보호자가 스스로를 벌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 그 한마디를 남겨주는 일은 수의사만이 할 수 있다.

“보호자님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어요.” 이 한마디로 평생 짊어졌을지도 모를 죄책감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진료실 안에 있다.

장례를 마치고 며칠이 지나면 보호자는 또 한 번 무너진다.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때 보호자는 비로소 그 빈자리를 마주한다. 그 시점에 수의사가 짧은 메시지 한 통을 보내본 적이 있는가. “○○ 보호자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많이 힘드실 텐데 마음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길 바랍니다.” 단지 그뿐인 한 줄.

이 한 줄이 보호자에겐 ‘내 슬픔이 잊히지 않았다’는 작은 증거가 된다. 펫로스에는 공식적인 애도 기간이 없다. “또 키우면 되지”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던져지는 사회에서 보호자는 슬픔을 마음껏 꺼낼 자리를 잃는다. 그때 수의사의 짧은 안부 한 통이 그 잃어버린 자리를 잠시나마 되찾아준다.

나종호는 같은 책에서 “고인과의 이별이 영원하듯 애도 또한 실은 영원한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애도는 끝나는 지점이 정해진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반려동물과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끝낼 수 없는 길이라면, 그 길을 처음 걸어가는 보호자에게 길벗 한 명이 되어주는 것도 수의사의 일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 수의사도 펫로스를 겪는다. 그것도 매우 자주, 매우 깊게.

특히 안락사는 어떤 횟수를 거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 손으로 한 생명을 보내드리는 일은 매번 마음의 한 자락을 떼어놓는 일이다.

미국 CDC와 미국수의학회지(JAVMA)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에서 398명의 수의사가 자살로 사망했으며, 남녀 수의사 모두 일반 인구에 비해 자살 위험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통계 뒤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안다.

그러니 보호자만 위로받아야 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수의사도, 짧게라도 자기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료에게 한마디 털어놓는 것, 잠시 진료실을 벗어나 숨을 고르는 것, 글로 써서 흘려보내는 것. 무엇이든 좋다. 우리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다음 환자 앞에서 다시 단단해질 수 있다.

미치 앨봄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의 말을 이렇게 옮겼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는 건 아니다.”

펫로스 앞에 선 보호자에게도, 그리고 그 옆에 선 수의사에게도 이 문장은 그대로 남는다. 환자는 떠났지만 그가 사랑받았던 시간, 보호자가 쏟아부은 마음, 수의사가 마지막까지 다한 노력, 그 관계는 어딘가에 남는다. 마음속에 남고, 기억 속에 남고, 다음번에 마주할 또 다른 환자를 대하는 태도 속에 남는다.

수의사가 펫로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옆에 잠시 서 있어주는 것. 자책의 사슬을 풀어주는 한마디를 남기는 것. 며칠 뒤 짧은 안부 한 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자기 마음도 잊지 않고 챙기는 것.

결국 진료실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동물을 치료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다. 그 두 가지를 함께 붙들고 가는 사람. 그게 우리가 되고 싶은 수의사의 모습이 아닐까.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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