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석 “동물병원이 도매상에서 인체약 구입하면 오히려 오남용 부추겨”
동물병원 인체약 공급관리 강화 법안, 국회 법사위 통과
약국이 동물병원에 판매한 인체용 전문의약품 내역을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전산관리를 강화하는 약사법 개정안(서영석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국회에서 서영석 의원이 같은 내용으로 발의했던 개정안이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법사위까지 통과한만큼 해당 개정안은 곧 본회의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해당 인체약 공급내역을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서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까지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게 했다.
동물용의약품 사용내역을 eVET에 따로 보고하라는 현행 규제조차 일선 동물병원의 공감대를 얻지 못해 사문화되고 있는데, 종류가 더 다양한 인체용의약품까지 보고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B2B’ 도매성격의 의약품 공급을 소매점인 약국을 통해서만 하도록 강제하고, 이에 대한 관리를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도 의문이다.
어차피 일선 약국은 동물병원으로의 전문약 공급에 관심 없는데..
도매를 허용해야 할 일을 소매 규제 강화로..’거꾸로 간다’
개정안은 약국이 동물병원에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그 동물병원의 명칭, 연락처, 의약품의 명칭, 수량, 판매일 등의 판매 내역을 제출하도록 한다.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는 이를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과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다는 근거도 달았다.
명칭과 대상만 다를뿐 마약류 의약품에 대해 유통·공급·사용내역까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보고토록 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다른 점은 오히려 더 위험한 마약류는 도매상을 통한 동물병원 공급을 허용하는 반면 전문의약품은 여전히 약국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동물병원이 반려동물을 진료하는데 필요한 인체용 전문의약품은 매우 다양하다. 반려동물 진료시장이 사람의료에 비해 훨씬 작은 반면 필요한 약은 다양하다 보니 인체용 전문의약품의 허가외사용(extra-label)을 허용하는 것이다.
의약분업 과정에서 허가외사용은 허용했지만 공급처를 도매상이 아닌 약국에 한정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의 일선 약국은 근처 의원의 진료과목에 맞춰 약을 구비하다 보니 동물병원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약재를 공급하기 어렵다. 각종 주사제나 수액제가 대표적이다.
약국의 의약품 배송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진료에 바쁜 동물병원 수의사가 약국에 직접 가서 사오라는 식인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물병원은 결국 도매상처럼 운영되는 일부 약국에서 인체약을 공급받는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서영석 의원에 따르면 9개 약국이 2021년 인체약을 공급받는 동물병원의 99.4%, 공급수량의 99.6%를 담당했다. 일선 약국은 동물병원으로의 인체약 공급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하면 인체용 전문의약품 공급은 도매상이 담당하는 것이 맞다.
지난 11월 19일(화)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심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나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의사회에서 제기한 문제”라며 “동물병원 개설자들이 약국개설자한테 전문의약품을 구입할 때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냐,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그런 제안을 했다. 좀 열어 달라는 의미인 것 같다”면서 검토를 촉구했다.
하지만 서영석 의원은 “그동안 동물병원들이 임의로 약국을 개설해서 그 약국을 통해서 공급받는 형태로 했는데 ‘그것마저도 이제 귀찮다, 도매상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은 오히려 오남용을 부추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도 검토보고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전문의약품을 도매로 공급할 경우 의약품 관리의 사각지대를 더욱 확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매상에서 주든 약국에서 주든 동물병원이 달라는 의약품을 내어주는 행위 자체는 별반 다를 게 없다. 도매상이 하면 위험하고 약국이 하면 안전하다고 볼 근거도 찾기 어렵다.
약사법 개정이 마무리되면 이와 연계한 수의사법 개정도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번 개정에 따른 추가재정소요를 10억 4,600만원으로 추계했는데,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과의 연계를 상정했다.
아직 수의사법 개정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약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서영석 의원은 지난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을 함께 발의한 바 있다.
대한약사회는 28일 약사법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를 환영하면서 “수의사법 개정을 통해 동물병원이 인체용 의약품을 공급받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사용관리 체계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물 진료 과정에서 인체용 전문의약품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 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의약품 오·남용을 철저히 방지하고, 국민 건강과 동물 복지를 동시에 보호하는 데 필요한 관리 체계”라고 주장하면서다.
이에 대해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에게 쓰이는 약품을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더 중요한 문제를 선결해야 한다”면서 약사예외조항 철폐가 먼저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선 약국 대부분이 동물병원으로의 전문의약품 공급에 관심이 없다는 점도 지목했다. 약국의 공급내역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제로는 몇몇 대단위 판매처를 제외하면 해당되지도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현실성을 억지로 외면하고 정말 개별 소매약국에 수의사가 직접 가서 전문의약품을 사도록 강제하면 동물진료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사용빈도가 높지 않은 약은 전문의약품도 구하기 어려운데, 도매 형태로 공급처를 모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면 동물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의 가짓수는 줄어들 위험이 크다. 동물 건강을 오히려 저해하는 규제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