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간의 동물에 대한 착취는 언제까지 용인되어져야 하는가? <上> – 박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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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를 돌아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불평등과 차별과 폭력과 수탈과 착취가 있었다. 이러한 불평등과 폭력과 착취는 너무나도 많은 영역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백인들의 흑인 노예제도, 유럽인들의 신대륙 원주민 말살정책, 제국주의의 식민지수탈, 중국의 티벳을 포함한 소수민족 차별정책, 독일에서 벌어진 유태인학살, 자본가의 노동자착취, 남성들의 여성차별,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아동착취, 인도 등에서 아직도 변하지 않는 계급제도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많은 문제들은 노예해방운동, 여성해방운동, 티벳해방운동, 노동해방운동 등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있었고 그러한 노력으로 그나마 조금씩 개선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갈수록 더욱 더 폭력과 수탈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이다. 이는 다른 부분과 달리 피해를 당하는 대상들이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지킬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착취를 당하는 집단 스스로가 자신들이 받는 처우에 반대해서 조직적으로 항의할 수 없다. 한 집단이 억압에 대항하고 조직을 이루는 능력이 떨어질수록 그 집단은 그만큼 쉽게 착취당하게 된다. 또 인종차별을 당하거나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성차별을 당하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물에 대해서는 이익을 얻는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생명이 착취당하는 것에 대하여 외면하거나 자신의 이익실현을 위하여 적극 가담한다. 

이런 인간의 동물에 대한 심각한 착취를 여러 관점에서 심도 깊게 다룬 책이 있다. 그 책은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환경운동을 꽃 피웠듯이 세계적으로 동물해방 운동의 성전(聖典)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이다. 『동물해방』에는 인간의 동물에 대한 차별과 착취가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논의와 그다지 실질적인 이득도 없으면서 자행되는 동물실험 그리고 농장에서 동물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사육되는지 적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의 건강과 미래를 위한 먹거리 방식으로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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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다르다고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우리는 많은 차별과 착취를 접한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러한 차별과 착취를 완화하려고 애쓴다.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서 노동해방을 주장하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 여성해방을 이야기한다. 또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착취당하는 제3세계 민중들의 민족해방을 이야기한다.

노동자나 여성이나 아동이나 제3세계민중 등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인 자본가나 남성이나 제국주의자들에게 무엇을 근거로 차별 철폐를 요구할 수 있을까?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구호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는 구호로? 아동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구호로? 그러한 구호들로 가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관념적인 구호로 가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겠지만 자본가들은 자본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또 남성은 남성의 우위성을 내세우며 여성을 하녀처럼 부리려한다. 또 모든 강한 것들은 자신의 강함을 내세워 약한 것들을 착취하려고 한다. 이럴 때 약한 존재들은 무엇을 근거로 강한 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입장이 다른 그들을 어떤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까?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종차별주의자들은 다양한 논리로 자신들의 종차별을 합리화한다. 강한 종이 약한 종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이야기부터 기독교라는 종교의 영향을 받은 종차별주의자들은 신에 의해서 인간이 다른 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도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간단하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과 동물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종이 자신의 우월하고 강한 힘을 바탕으로 약한 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나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는 것, 군부독재가 민중을 압제하는 것, 성인이 아동을 착취하는 것 또한 용인되어져야 한다. 스스로 우월한 종족이라고 믿는 백인이 흑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도 용인되어져야 한다.

만약 용인되어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모든 경우에 적용되어질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는 노동해방을 주장하지만 집에 들어가서는 가부장적인 이익을 누리려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동물과 관련해서는 그들을 이익의 주체로 고려하고 논의하는 것 자체를 회피한다. 지금까지 누렸던 것을 계속 누리고 싶을 뿐인 것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는 인간이기 때문에 평등해져야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인간과 동물이 종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종차별주의자임을 내세우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레미벤담은 자신의 『도덕과 입법 원리에 대한 서설』에서 “문제는 그들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라며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한 통치라기보다는 학정이라고 말했다. 

피터싱어는 『동물해방』에서 한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고통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길 거부하는 자세를 옹호할 수 있는 도덕적인 논증은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 또한 고통을 느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고통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대우도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정신이상자 등 고통에 대한 반응이 일반인들과 다른 경우 그들을 동물들과 같은 대우를 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한다. 

존재의 본성이 어떠하든, 평등의 원리는 그 존재의 고통을 다른 존재의 동일한 고통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 만약 여러 특징들이 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못하며, 평등은 어떤 특징을 소유하는 데 기초하기보다는 이익 동등 고려의 도덕 원리에 기초해야 하며 평등의 영역으로부터 동물을 배제하는 어떤 근거를 발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동물들이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은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며, 자기 스스로의 이익을 갖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익을 갖는 모든 존재들은 그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명확한 윤리원리에 따라서 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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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

동물에 대한 고문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1986년 미국 의회 기술 평가국 (OTA)은 「연구, 실험, 그리고 교육에서의 동물사용 대체 방안」에서 미국에서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의 숫자는 매년 1천만에서 1억 마리 사이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어지는 것일까? 『동물해방』에는 동물에게 행해진 많은 잔혹한 실험들을 실고 있다. 

메릴랜드, 포레데릭에 있는 포트 데트릭 미군 생체 의학 연구개발 실험실에서는 60마리의 비글 개에게 다양한 함량의 폭발성 TNT를 먹였다. 개들은 매일 6개월 동안 캡슐에 넣어진 TNT를 먹고 탈수증, 쇠약증, 빈혈, 황달, 저체온, 설사, 식욕 감퇴, 체중저하, 간·콩팥·비장의 확장 증상을 보였고 근육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14째 주에 한 마리가 죽어갔고 16번째 주에 또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이 실험에 참가한 개들에서 최소한의 TNT를 먹인 개에서도 부작용이 관찰되었기 때문에 TNT의 최소 안전용량을 확립하지 못했다. 

아이오와 대학의 리처드 비켄과 존 넛슨은 160마리의 쥐를 집단으로 나누어 그들을 전기가 통하는 바닥의 스테인레스 강 우리 안에서 “훈련시켰다.” 짝을 이룬 쥐들에게는 정면으로 서로를 마주할 경우 다른 쥐에게 덤비거나 물어뜯는 싸움을 학습할 때까지 전기 충격이 주어졌다. 이 훈련 후 연구자들은 훈련되지 않은 쥐들이 있는 우리에 충격 훈련을 받은 쥐들을 집어넣고 그들의 행위를 기록했다. 하루가 지난 후 실험자들은 모든 쥐들을 죽여서 털을 깎아 상처를 검사하였다. 실험자들은 쥐들이 보여준 “결과는 충격으로 야기된 공격적 또는 방어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결론 맺고 있다. 

영국에서는 거대 기업 ICI와 헌팅던 연구소가 제초제 패러콰트(paraquat)로 40마리의 원숭이를 중독시키는 실험을 하였다. 원숭이들은 몹시 쇠약해져서 토하고, 호흡 곤란을 느꼈으며, 저체온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며칠에 걸쳐서 서서히 죽어갔다. 패러콰트 중독이 인간에게 완만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외에도 변태성욕자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가학적인 실험들이 동물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코끼리를 쇠사슬에 묶어 놓고 얼마만큼의 코카인에 죽는지 치사량 검사는 왜 하는 것일까? 진공에서 동물이 어떻게 죽는지, 뜨거운 불판에서 동물이 어떻게 죽는지와 같은 실험은 왜 하는 것일까? 또 도대체 동물실험을 통하지 않고도 예측이 가능한 실험들을 왜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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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동물실험금지를 위한 글로벌 캠페인 ‘Be Cruelty-Free’

동물학자들은 한 종(species)에서의 사실로 다른 종의 사실을 추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이라고 이야기 한다.

오프렌(Opren)이란 약물은 여러 동물실험에서 위험하지 않다고 통과했지만 영국에서 관절염에 대한 특효약으로 사용한 환자 중 61명이 사망하고 3,500건의 부작용이 보고된 후에 사용이 중지되었다. 또 심장약인 프랙토콜(Practocol)은 동물 실험에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에 반해 동물에게는 유해한 반응을 나타내지만 인간에게는 유해한 반응이 없는 제품들도 있다. 당뇨병 치료에 사용되는 인슐린은 토끼와 쥐에 장애를 유발하지만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미국 의학 협회(AMA)의 한 대표는 의약품 실험에 대한 의회 공청회에서 “동물 실험이 증명하고 있는 바는 거의 또는 전혀 없으며, 이를 인간과 상호 관련시키는 것도 매우 어렵다.”고 증언했다. 일반인들은 동물실험을 행하는 과학자들이 인간에게 유익하고 꼭 필요한 실험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동물실험을 통해 인간에게 유익한 실험은 실험에 희생되는 헤아릴 수 없는 동물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과 이권이 관련된 과학·의학·수의학 집단들에 의해서 동물실험의 효과는 과대포장 되고 미화되어 홍보되고 있다. 그로 인해 일반인들은 동물실험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며 막대한 세금이 쓰여지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동물실험을 실시하며 동물은 그저 소모품으로 소비될 뿐이다. 그래서 유태인 작가 아이삭 바셰비스 싱어는 “생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나치다”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은 인간의 이윤이나 이익을 위해서 동물들을 잔혹하게 다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물들을 잔혹하게 다루면서 잔혹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이지 하찮은 동물이 어찌되든 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식이다.

이것은 일제의 731부대가 조선과 중국 포로를 대상으로 줄을 세워 놓고 총을 쏘면 몇 명이나 죽는지, 폭탄 위에 사람을 쌓아놓고 터뜨리면 몇 겹이나 죽는지 등을 실험하며 스스로 잔혹함을 느끼지 못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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